인내하라, 그리하면 기암을 얻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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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김경선 기자 |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6.2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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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PARK TRAVEL 03 장군봉 트레킹

▲ 장군봉 하산 길에 보이는 기암의 힘 있는 자태.

달기폭포~너구마을~금은광이~장군봉~대전사 코스 5시간 소요

주왕산 마지막 오지 너구마을을 지나 금은광이로 오르는 분지골, 사람의 인적이 뜸하다. 주왕산의 얼굴 마담격인 기암괴석을 볼 수 없는 코스이기에 사람들은 그저 달기약수로 목을 축이고 서둘러 돌아간다. 그래서 분지골을 오르는 등산객들은 오랜만에 인적 없는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이 코스는 아름다운 풍광을 얄미울 정도로 꽁꽁 감춰둔다. 그리고는 땀을 잔뜩 흘렸을 때쯤 병풍처럼 장쾌한 기암을 눈앞에 펼쳐 놓는다.


청송(靑松)에는 정말 소나무가 많다. 특히 주왕산에는 능선 따라 고고한 소나무의 행렬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래서인지 아직은 이른 봄, 푸릇한 생명의 기운보다 잔설의 싸늘함이 당연한 산중임에도 주왕산은 푸른 소나무의 기운으로 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푸른 소나무의 고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슬픈 전설이 주왕산 자락에 전해진다. 산명의 유래가 되었다는 주왕은 중국 당나라 시대의 주도라는 인물로 망한 진나라를 재건하고자 스스로 후주천왕임을 자처해 반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당나라 군사에게 크게 대패한 주도는 신라 땅까지 쫓겨 내려왔고 이곳 주왕산 자락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주도는 당나라의 사주를 받은 신라 마일성 장군에게 죽임을 당한다.

후주천왕의 꿈을 이루지 못한 주왕의 한이 서렸을까? 그 피가 흘러든 주방천은 봄이면 붉은 수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나 주왕의 한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 전설의 주인공이 억울하게 왕권을 빼앗긴 신라의 김주원이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어떤 것이 진짜든지 이런 전설로 인해 주왕산은 더욱 애틋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 이른 봄임에도 꽁꽁 얼어붙어 있는 달기폭포. 3월 하순 무렵에나 녹는다.

150년 간 효능 인정받은 달기약수
달기폭포와 분지골을 지나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트레킹은 월외리의 명물 달기약수를 지난다. 조선 철종 때 발견된 달기약수탕은 상탕ㆍ중탕ㆍ원탕(하탕)ㆍ옥탕ㆍ신탕 등 현재 10여 곳에서 탄산수가 샘솟는다. 그중에서도 처음 발견된 원탕은 인기가 가장 많아 평일 주말할 것 없이 긴 줄이 이어진다. 아니나 다를까. 이른 아침임에도 원탕 앞은 약수맛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약수는 여느 탄산수처럼 톡 쏘는 맛이 일품인데, 철분 맛이 덜해 마시기가 한결 수월했다.

▲ 월미기에서 장군봉으로 향하는 능선길. 푸른 소나무의 고장처럼 능선을 따라 울창한 송림이 이어진다.
약수로 목을 축이고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오늘 산행을 함께할 주왕산 국립공원의 김선동, 곽은주 씨를 만나 월외공원지킴터로 이동했다. 공원지킴터에서 너구마을까지는 약 3km의 포장도로가 이어지는데 겨울에 내린 눈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군데군데 빙판길이 남아있었다.

1시간쯤 지났을까. 문득 달기폭포가 눈앞에 나타났다.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지는 폭포를 기대했건만 달기폭포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아마도 3월 말이 되어야 몸을 풀 것이다. 주왕산 북서쪽 들머리인 월외리의 봄은 늦지만, 그만큼 아름답다고 한다. 맑은 월외계곡이 협곡 사이를 흘러 노루용추·달기폭포 같은 수려한 풍광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달기폭포에서 다시 30여 분을 산책하듯 걸으면 너구동마을이다. 너구동이라는 지명은 네 곳의 산줄기와 네 곳의 물줄기가 만난다는 의미의 사이동(四耳洞)에서 유래했다. 사실 너구마을은 내원동의 내원마을처럼 심산오지는 아니다. 10여 채 남짓한 집들 사이사이로 전신주가 들어서 있어 여느 시골 마을 풍경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지난해 겨울 주방계곡 상류의 내원마을이 철거된 이후로 너구마을은 주왕산의 마지막 오지로 남게 되었다.

▲ 주왕산 북서쪽 들머리인 분지골은 해가 잘 비치지 않는 지역이라 이른 봄에도 한겨울처럼 눈이 소복하다.

겨울은 여전히 봄을 시샘하고
너구마을을 지나면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금은광이 삼거리까지는 계속된 오르막 길.

“봄이라고 하기에는 눈이 너무 많네요. 이쪽은 음지라 눈이 녹으려면 3월 말이나 돼야 해요.”

계절은 한겨울을 지나 봄을 향해 달려가는데 산 속은 여전히 겨울이다. 게다가 사람의 발길까지 뜸한 분지골은 푹푹 빠지는 눈을 고스란히 헤치고 올라야한다. 인적 드문 이 골짜기에 살아있는 존재의 흔적이라고는 눈밭 위에 살포시 찍혀있는 고라니와 토끼 발자국뿐이다.

▲ 인적이 뜸한 분지골에는 탐방객의 흔적 대신 고라니나 토끼의 발자국이 자주 눈에 띈다.
완만하고 넓은 외길 등산로를 따라 1시간가량 걸었을까? 길은 계곡을 벗어나면서 가팔라진다. 이곳부터는 산사면을 따라 좁은 등산로가 이어지고 가파른 경사를 30분 정도 오르면 금은광이(812.4m) 삼거리다.
“금은광이는 예전에 세밭목이라고 불리던 곳이에요. 일제강점기를 전후로 이곳에 금은 광산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금은광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됐다고 해요.”

주왕산 국립공원의 자연해설가인 김선동 씨가 지명의 유래를 설명한다. 금은광이는 현재 탐방로가 통제돼 있어 금은광이 삼거리에서 우회해야 한다. 이곳부터 장군봉까지는 능선 길. 그러나 능선 따라 쭉쭉 뻗은 소나무는 탁 트인 조망을 기대하기 힘들 만큼 주왕산의 산세를 꽁꽁 숨겨버렸다.

장군봉으로 가는 길은 녹록치가 않았다. 평소라면 가볍게 오르내릴 길이지만 눈이 무릎까지 차올라 위험천만했다. 다져진 눈이 아닌 탓에 아이젠도 잘 먹혀들지가 않았다.

“월미기까지만 조심하시면 되요. 장군봉 쪽은 해가 잘 비춰서 눈이 다 녹았거든요.”

1시간이 넘게 걸려 월미기에 도착했다. 김선동 씨의 말처럼 월미기로 들어서니 정오의 햇살이 긴장으로 팽팽해진 몸을 따뜻하게 감싸준다. 월미기~장군봉~대전사 구간은 이번 트레킹의 백미. 지금까지 꽁꽁 감춰두었던 주왕산 기암괴석의 절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구간이다.

▲ 검푸른 바위 사이로 병풍 같은 기암이 펼쳐진다.

기암괴석 한눈에 담는 월미기~장군봉~대전사 구간
조용한 숲길을 따라 장군봉으로 향했다. 삼거리 안부에서 장군봉까지는 20여 분. 제법 가파른 길을 오르면 장군봉 정상에 다다른다. 그러나 막상 장군봉 표지석이 있는 자리에서는 정상의 맛을 느끼기 힘들만큼 조망이 좋지 않다.

표지석에서 5분 정도 내려서면 절벽 위로 튀어나온 암봉이 있는데 기막힌 조망이 한 눈에 들어와 전망대 구실을 한다. 병풍처럼 펼쳐진 기암의 서쪽 얼굴과 주왕산의 산군 일대, 더 멀리는 낙동정맥의 마루금까지 눈앞에 펼쳐져 그간의 답답했던 속내를 시원하게 풀어준다.

▲ 코르크 마개의 원료로 쓰이는 굴참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주왕산 국립공원의 김선동 씨.

전망대에서 실컷 눈요기를 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대전사까지는 약 40분. 경사가 급하고 길이 험하지만 내려서는 내내 기암과 혈암, 주왕산의 산세가 어우러져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선물한다. 게다가 그 속살 사이사이를 파고든 노간주나무며 회양목의 생명력 또한 인상적이다.

월외리를 들머리 삼아 시작한 장군봉 트레킹 코스는 주왕산의 겉과 속을 아우른다. 밋밋한 겉핥기가 지겨워질 때쯤 자신의 속살을 살짝살짝 보여주는 센스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살풋한 보여주기가 애타 포기할 때쯤 속내를 활짝 열어젖히는 주왕산. 그 기기묘묘한 암봉의 향연과 수정처럼 맑은 계곡이 앙상블을 이루는 그곳에 지금 봄이 찾아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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