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오형근
사진작가 오형근
  • 글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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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들의 새로운 해석

<접속> <스캔들> <장화홍련> <친절한 금자씨> <추격자>를 기억하는가? 흥행에 성공했기에 영화를 기억하는 것이겠지만, 영화제목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것은 영화의 한 장면이라기보다는 한 컷으로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포스터가 아닐까 싶다. 영화광이거나 사진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들어봤을 이름. 바로 사진작가 오형근(46·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의 작품이다.

영화포스터 얘기를 먼저 꺼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오형근의 주된 작업은 영화포스터가 아니다. 아무래도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매체인 영화와 연결하면 ‘아, 그 사람!’이라고 알기 쉽기에 그가 활동하는 ‘사진’의 다양한 영역 중 가장 다수에게 열려있는 부분을 소개하는 것이다.

흔히들 사진은 시, 영화는 소설이라고 얘기한다. 그는 사진 한 장에 몇 권짜리 소설이 들어갈 수 있는 이미지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인물을 유형별로 나누는 ‘유형적 작업’을 주로 해온 작가다운 말이다. 사진 한 장으로도 충분한 얘깃거리가 있지만 각각의 인물들이 모여 서로 다른 ‘군’을 만들기 위해 각기 나름의 규칙으로 나뉜다.

여기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서사(narrative)의 힘은 이미지 한 장 보다 더 강한 임팩트를 갖는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를 일약 스타작가로 발돋움하게 해 준 <아줌마>(1999)가 그랬고, <소녀연기>(2004)와 <소녀들의 화장법>(2008)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어진다. 1999년 발표한 <아줌마>는 당시로는 흔치 않은 ‘아줌마’를 소재로 한 개인전으로 아줌마 신드롬을 일으켰다.

커다란 진주목걸이를 하거나, 인위적인 눈썹을 그리거나 아니면 요란한 꽃무늬 스카프를 걸친 아줌마들을 정면에 세워두고 플래시를 쳐 기름진 피부를 그대로 드러냈다. 각종 매체들은 아줌마를 통해 한국 사회를 들여다봤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그는 유명해졌다. 이후 그의 시선은 아줌마에서 소녀들로 옮겨진다.
 
2004년 <소녀연기>란 주제로 교복 입은 여고생 사진을 걸었다. 대상이 대상인지라 성적인 시선을 피할 수는 없었을 터. 여기가 일본인 줄 아느냐, 관음증 환자 아니냐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더니 2008년에는 <소녀들의 화장법>이란 제목으로 더 어린 소녀들을 카메라 앞에 세운다. 이번엔 숫제 “변태 아니냐”는 공격도 받았다.

왜 이런 공격을 받을 여지가 다분한 사진을 찍는 것일까. 그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보여준 명백한 슬픔, 사회적인 소외문제를 담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며 “나의 관심은 경계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것은 당연하게 여겨서 도무지 생각할 여지가 없던 대상의 틈새를 벌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구도에 이야기를 담는 대신 사진 자체의 디테일을 살려 스스로 말하게 한다.

<아줌마> 시리즈에서 플래시를 쳐 배경을 어둡게 한 것은 아줌마들의 고립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고, 이마 윗부분을 잘라낸 것도 일부러 불편함을 준 것이라고.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아줌마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해석 혹은 의미부여가 아닐까.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진작가로서의 꿈은 어느 정도 이룬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요. 야망보다는 추억거리가 많은 인생이고 싶어요. 아, 죽기 전에 어릴 때 꿈이던 영화 한편 만들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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