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웃도어씬의 역사
한국 아웃도어씬의 역사
  • 김경선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4.03.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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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호상사 대표

한국 아웃도어씬의 살아있는 역사를 논할 때 호상사를 빼놓을 수 없다. MSR, 랩, 날진 등 오랜 시간 아웃도어인들에게 사랑 받는 브랜드를 선보이며 국내 아웃도어 산업을 이끌고 있는 호상사 김인호 대표를 만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호상사의 저력을 들어봤다.




호상사를 처음 창립한 해가 1978년입니다. 5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아웃도어 회사를 이끌고 있는데요. 긴 시간 변치 않고 아웃도어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특별한 비결이랄 건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니 지금껏 왔네요. 50년 가까이 사업을 해온 것이 자랑스럽다기 보다는 ‘이것 밖에 못 키웠나’ 싶어요.(웃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어려운 시간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산을 좋아하고, 아웃도어를 사랑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보니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호상사를 설립한 계기가 있다면.
1970년대 후반의 대한민국은 지금과는 아주 많이 달랐습니다. 우리나라가 한창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할 시기이긴 했지만 지금에 비하면 산업 규모가 무척 작았고, 평면적이었어요. 취업이 쉽지 않다 보니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해외로 노동자들이 많이 나가는 시기이기도 했죠. 고등학교 때부터 산악부 활동을 하며 산을 워낙 좋아했고, 쉽지 않은 취업 대신 내 사업을 시작해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내가 직접 사용해보고 인정하는 장비를 수입해서 팔아 봐야겠다’는 구상을 하게 됐습니다. 당시에 한국에서 아웃도어는 등산이 전부였죠.

1970년대 후반이면 인터넷도 없고, 해외와의 연결도 쉽지 않은 시기였을 것 같은데, 구상처럼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됐나요.
전혀요.(웃음) 쉽지 않았습니다. 산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직접 써본 장비들이 많아 어떤 게 좋은지는 물론 잘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브랜드와 접촉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제품 포장지에 나와 있는 주소를 발견하고 직접 편지를 썼습니다. 지금처럼 이메일도 없던 시기라 편지 한 번 보내면 빨라야 보름 후에 답신이 왔죠. 물론 이런 경우는 아주 빠른 편이었고, 보통은 한두 달 이 걸리거나 답신이 안 오는 경우도 허다했어요. 제품 포장지를 못 구하거나 연락처를 찾지 못하면 코트라에 찾아가 외국 회사 디렉토리를 찾아보고 연락처를 구해 편지를 보내곤 했어요.

지금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아날로그 방식입니다. 어떤 제품을 처음으로 수입하게 됐나요.
당시 수입자유화라지만 수입 품목이 무척 한정적이었어요.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플라스틱 스키부츠는 수입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당시 에스키인들이 많지 않았고, 스키 용품도 일본에서 보따리로 들여와 판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스키숍은 서울에만 5곳 정도 있었죠. 소규모의 영세한 시장이었지만 당시 자본이 부족했던 저와는 잘 맞는 품목이었습니다.

힘들게 시작한 사업인데 예상처럼 매출이 잘 나왔나요.
잘 안 됐습니다. 시장을 잘 몰랐죠. 수입한 물건이 잘 팔릴지, 안 팔릴지 몰랐어요. 혹은 팔리더라도 얼마나 팔릴지 수요적인 부분도 고려하지 않았죠. 초창기에는 수입해 온 물건을 못 팔거나, 혹은 과도하게 수입해 재고가 쌓이거나 하는 시행착오가 정말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자본이 부족하다 보니 시행 착오의 결과를 고스란히 감당해야했죠. 들여온 건 무조건 팔아야하니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시장에 대해 파악하고, 사업에 대한 감을 잡은 기간이 10년 정도 됩니다. 긴 시간이죠. 그 때부터는 어떤 제품을 소비자가 원하는지, 또 얼마만큼의 수요로 제품을 들여와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호상사가 걸어온 시간 동안 한국의 아웃도어 시장도 많은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호상사는 처음부터 장비를 수입했습니다. 당시에는 아웃도어 의류나, 배낭, 텐트 같은 것들은 국산이었어요. 1970년대 후반에는 의류나 등산화 수입이 금지됐으니까요. 어쩔 수 없이 장비 위주로 수입해야했는데, 사실 용품은 예나 지금이나 아웃도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적습니다. 그 시절 아웃도어 의류는 파카 정도가 전부였어요. 장비점에 가서 아웃도어 의류를 산다고 하면 파카를 사는 거죠. 나머지 속옷이나 티셔츠, 바지 등은 평상복을 그대로 입었어요. 지금처럼 아웃도어 전용 속옷, 셔츠, 바지 등을 갖춰 입을 수 없는 시기였죠. 경제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아웃도어 의류가 지금처럼 다양하고 화려하게 세분화되지 못했던 시기입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아웃도어 산업에서 의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70% 가까이 됩니다. 압도적이죠. 과거와 현재, 아웃도어 시장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이런 점이 아닐까요.

1970~80년대 사람들이 많이 찾던 장비는 무엇이었나요.
그 시기에 등산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장비는 버너였어요.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버너를 못 만들었죠. 미제 군용 버너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게 코펠이죠. 지금이야 다양한 코펠이 출시되지만 당시에는 반합을 주로 사용했어요. 군인들도 사용하던 장비죠. 국산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품질면에서 미제 군용 반합이 인기였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한국에도 아웃도어 붐이 불면서 국산 알코올 버너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등산 마니아들은 여전히 휘발유 버너를 사용했는데, 산을 자주 가지 않거나 초보자들이 알코올 버너를 많이들 썼어요. 문제는 알코올 버너는 불꽃이 잘 안 보여요. 불이 붙어도 잘 보이지 않으니 연료가 부족한가 싶었던 사람들이 버너에 알코올을 부으면서 폭발 사고가 종종 나기도 했습니다.

현재 호상사에서 취급하는 브랜드는 몇 개나 되나요.
지금은 14개 정도 됩니다. 주력은 영국의 프리미엄 다운 브랜드 랩과 이탈리아 명품 슈즈 브랜드 잠발란, 백패커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MSR, 등산인들의 영원한 스테디셀러 날진 등이죠.

브랜드마다 특징이 무척 강한데요. 이 브랜드들은 어떤 식으로 선택하는지 궁금합니다.
결국은 사용해 보면서 ‘꼭 필요한 제품이다’라고 생각한 것도 있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선택한 브랜드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브랜드를 버렸죠. 잘못된 선택도 있었고, 잘하지 못했던 브랜드도 있었습니다. 지금 남은 브랜드들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선별한 브랜드라고 보면 됩니다.

수없이 많은 브랜드를 취급해 오면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브랜드가 있다면.
음... 아무래도 콜맨이네요. 많은 사람들이 콜맨하면 오토캠핑을 떠올리는데, 또 다른 섹션으로 휘발유 스토브도 있죠. 피크 원 버너는 백패커, 등산인들에게 적합한 아이템입니다. 이쪽 카테고리를 많이 팔기도 했고, 더 이상 전개하지 못하면서 아쉬움도 컸습니다. 물론 버너 카테고리가 매출적인 부분에서 크지 않았지만 피크 원 스토브는 여전히 다시 한 번 전개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애착이 가는 분야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아웃도어 시장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결국 밀폐된 공간에서 벗어나 아웃도어로 나갈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었죠. 이러한 환경적인 영향으로 아웃도어 시장이 자연스럽게 커졌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죠. 코로나19는 큰 재난이었지만 많은 이들이 아웃도어를 접하고 자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적인 측면에서 보면 코로나19는 명암이 확실합니다. 갑자기 아웃도어 인구가 늘어나고 덩달아 시장이 팽창하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수요를 감당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완만하고 꾸준하게 성장하지 않고 급격하게 성장하다 보니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부작용도 많았죠. 물론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이 늘었지만 막상 코로나19가 사그라들면서 아웃도어 수요도 급작스럽게 줄어들었죠. 늘어난 재고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례가 너무 많습니다. 갑작스러운 위축이 가져온 폐해죠.

호상사를 이끌어오면서 중시하는 경영철학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시장의 요구에 잘 부응할 수 있을까를 많이 생각합니다. 나를 비롯해 호상사의 모든 임직원들이 열심히 아웃도어를 즐기며 시장의 요구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현장을 직접 느끼는 것이야 말로 소비자들의 심리를 가장 정확하고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지름길이죠.

호상사에서는 다양한 이벤트는 물론 사회공헌 활동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아웃도어 지식이 많지 않은 이들이 무분별하게 등산을 하면서 안전사고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웃도어 안전지식을 익히고, 장비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다 보면 좀 더 안전한 아웃도어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등산학교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내가 등산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내가 좋아하는 걸 후진에게 잘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호상사에서는 다양한 이벤트도 많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컴패션 지원, See the Sunrise 산행 행사, See down the World 인수봉 체험 행사 등이 있습니다. 나를 비롯해 임직원 모두가 아웃도어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벤트를 진행함에 있어서 부담 보다는 즐거움이 앞섭니다. 이러한 이벤트들로 인해서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알릴 수도 있죠.

급변하는 아웃도어 시장에서 호상사의 향후 계획이 있다면.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지금처럼 꾸준하게 좋은 아이템을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소박한 회사를 꿈꿉니다. 급격한 성장 보다는 꾸준하게 성장하는 회사로 국내 시장에 자리매김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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