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불빛, 우치코
꺼지지 않는 불빛, 우치코
  • 신은정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4.01.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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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히메현 소도시 우치코内子

우치코는 뒤를 돌아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우치코 사람들이 지켜낸 것은 마을 곳곳에 남아 꺼지지 않는 정체성을 만든다.




독서에 한창 재미를 붙였던 시절, 작은 양초를 피워놓고 그게 다 사라질 때까지 책을 읽었다. 조용하고 은근하게 시간이 흘러갔음을 알려주는 그 묵묵함이 좋았다. 모든 게 숫자와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일상과는 다른 시간임을 구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여유가 사라진 요즘은 그조차도 잊고 산다. 양초 마을로 불리는 우치코가 반가웠던 이유는 그 시간이 그리웠기 때문일까. 마츠야마를 떠돌다 우치코에 당도한 날은 유난히 흐렸지만, 오히려 흐린 편이 어울릴 만큼 마을은 선명해 보였다.


우치코 산책 코스는 고쇼지 신사에서 시작해 JR우치코역까지 이어진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JR우치코역에서 출발하는 코스가 가깝지만, 고쇼지 신사에서 출발하면 전통적인 거리를 먼저 만날 수 있어 추천한다. 고쇼지 신사에서부터 이어지는 약 600m의 거리는 1982년 중요 전통 건물 보존 지구로 지정된 요카이치·고코쿠 거리로, 에도시대 후기부터 다이쇼시대의 모습이 오롯이 남아 있다.


우치코는 1750년부터 1920년까지 양초를 만드는 재료인 목랍木蠟 생산으로 번창했던 마을이다. 거먕옻나무 열매의 지방으로 만드는 목랍은 왁스나 양초, 화장품, 의약품 등 많은 제품을 만드는 데 쓰였고, 당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재료였다. 목랍은 열매 가루를 삶아 짜낸 생랍과 생랍을 표백한 백랍으로 나뉘는데, 생랍은 양초·이발제, 백랍은 비누나 광택제 등으로 사용됐다. 우치코의 목랍은 예부터 품질이 좋기로 유명했다. 오즈에 가류산장을 지었던 무역상 코우치 토라지로도 목랍 수출에 성공해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었다.
우치코가 목랍 생산으로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우치코의 혼하가 가문에서 독자적인 목랍 표백 기술인 ‘이요(에히메의 옛 이름)식 목랍 상자 표백법’을 개발해 생산량이 높아지고, 품질 또한 향상했다. 당시 우치코에서 목랍 제조업을 하던 23곳의 생산량을 합치면 일본 전체의 약 1/3을 차지할 정도였다고. 20세기에 들어서 전기가 보급되고, 목랍은 석유에서 추출하는 파라핀으로 대체되며 목랍 생산업체는 점점 사라졌다. 현재는 ‘가미하가(혼하가 가문를 포함하는 하가 가문의 통칭) 저택’만이 남았다. 가미하가 저택 내부에는 목랍 제조업의 흔적을 전시하고 있는 목랍 자료관이 있고, 그 옆에는 목랍의 원료인 거먕옻나무가 심겨 있다. 저택 또한 잘 보존하고 있다.



일본의 장인 정신이 인정받는 이유는 오랜 세월 갈고닦은 기술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키려는 마음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옻나무로 만드는 식물성 목랍을 이용해 전통적인 방법으로 일본 수제 양초를 만드는 가게도 현재 우치코에 단 하나만 남았다. 7대째 변함없는 방식으로 양초를 생산하는 오모리 와소로쿠大森和蝋燭屋다. 가게 안쪽에서 분주하게 양초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일본 전통방식으로 제조하는 양초는 다음의 수고로운 과정을 거친다. 먼저 대나무 꼬챙이에 일본 종이와 심지풀을 꼬아서 비단 실로 고정한다. 이렇게 심지를 완성하면 40-45도에서 녹인 왁스에 여러 개의 심지를 굴리고 손으로 바르며 몸통이 두꺼워질 때까지 반복한다. 완성된 양초의 잘린 단면이 나이테처럼 보이는 이유가 이 과정에 있다. 이후 손바닥으로 마찰시켜 적당한 광택을 주고, 상단에 심지를 내기 위해 숯불로 가열한다. 각기 다른 길이로 만들어진 양초를 동일하게 자르면 완성이다. 전통방식으로 만든 양초는 공장에서 대규모로 생산되는 양초와 모양은 엇비슷할지 몰라도 실제로 사용해 보면 확연히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정교하게 만들어지는 수제 양초는 불꽃이 높게 일며, 그을음이 거의 없을 뿐더러 촛농이 떨어지지 않고 오래 지속된다.


수제 양초의 매력에서 겨우 벗어나 남은 산책코스를 따라 걷는다. 집집마다 대문 앞에 감을 담은 봉지를 여럿 내놨다. 가격이 적혀 있고 돈을 담는 통도 있다. 에히메의 자랑인 죽공예 제품도 보인다. 한 장면이라도 놓칠 새라 거리를 빠짐없이 훑다 보니, 우치코 역사민속박물관内子町歴史民俗資料館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다이쇼시대 낡은 간판과 약국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두었는데, 사람 인형 두 개가 앉아 있 어 언뜻 보면 아직도 영업 중인 가게처럼 보인다. 박물관은 실제 사노약국佐野薬局을 운영했던 상인의 가옥을 개조해 만든 것으로, 내부에는 식사하는 모습 등 시간이 멈춘 듯한 삶의 장면들을 재현해두어 당 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게 했다. 부엌에서 혼자 일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지쳐 보여, 마치 지금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고 느껴지니 퍽 웃음이 난다.


공연이 없는 날에 관람이 가능한 극장, 우치코자内子座가 이번 코스의 마지막 목적지다. 1916년 다이쇼천황의 즉위를 축하하는 의미로 세워진 이 가부키 극장은 2층 목조 건물에 기와를 쓴 팔작지붕 구조로 지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먹고사는 문제가 치열했던 지난한 시간 동안 예술은 부유층만 누릴 수 있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현재에 와서야 일부 계층만의 특권이라는 고정관념을 벗고 모든 이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대중화됐다. 이 지점에서만 봐도 당시 우치코가 얼마나 번성했던 동네였는지 가늠이 된다. 게다가 우치코자는 302평의 부지에 1층은 177평, 2층은 74평으로 지어져 총 650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작지 않은 규모다. 또한 가부키 공연에서 장면 전환을 할 때 무대 중앙 바닥이 돌아가는 회전 무대도 도입했다. 지금과는 다르게 기계로 돌아가지 않고 사람들이 지하로 들어가서 직접 돌렸는데, 그 지하가 마치 지옥과도 같이 덥다고 해서 ‘나라쿠(나락奈落)’라고 불렸다고 한다. 우치코자는 흐른 세월만큼 노후되어 헐릴 뻔했지만, 마을 주민들이 철거를 반대하며 이곳을 계속 보존하고자 했다. 이후 복원 공사를 하고 1985년 문을 열어 지금까지도 현역 극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미하가 저택木蠟資料館上芳我邸
〒791-3301 愛媛県喜多郡内子町内子2696
+81893442771

오모리 와소로쿠大森和蝋燭屋
〒791-3301 愛媛県喜多郡内子町内子2214
+81893430385

우치코 역사민속자료관内子町歴史民俗資料館
〒791-3301 愛媛県喜多郡内子町内子1938
+81893445220

우치코자内子座
〒791-3301 愛媛県喜多郡内子町内子2102
+81893442840


▶근처 일몰 명소
시모나다역下灘駅
일본에서 바다와 가장 가깝다는 열차 간이역으로, 노을이 질 때 더욱 아름답다. 역 너머로 펼쳐지는 절경 덕에 영화와 광고 촬영지로 등장하기도 했다. 시모나다역을 거쳐가는 해변 관광열차 ‘이요나다 모노가타리’를 타면 시모나다역에서 10분 정도 정차해 맛있는 식사를 즐기면서 느긋하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799-3311 愛媛県伊予市双海町大久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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