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를 감싸는 낭만적인 길
저수지를 감싸는 낭만적인 길
  • 신은정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2.09.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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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저수지 둘레길

짧은 둘레길이지만, 어느 길보다 다양한 얼굴을 지녔다. 이 매력에 빠져 저수지에 온몸을 맡긴 버드나무를 따라 걸어 본다.

우리나라 대표 명산 중 하나로 꼽히는 공주 계룡산. 그 자락, 계룡산 갑사로 연결되는 초입에 계룡저수지가 있다. 지난 2013년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처음으로 계룡저수지 둘레길 조성을 시작한 이후, 지역민은 물론 다른 지역 방문객까지 늘어나면서 공주시는 2018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수변산책로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약 300m의 구간이 올해 초 공사를 마치고 연결되면서, 마침내 계룡저수지를 아우르는 완전한 둘레길이 완성됐다.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관개용 저수지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저수지 너머의 풍경을 감상하기 위한 관광객들의 발길이 분주하게 이어진다.


식사를 마친 후 소화도 시킬 겸, 계룡저수지 둘레길로 향했다. 가볍게 걸어도 1시간 30분 정도면 저수지를 모두 돌아볼 수 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는 곳이다. 주말에는 비교적 사람 들이 붐비지만, 평일 낮에는 길을 통째로 빌린 듯 한적하게 걸을 수 있다.
계룡저수지 제2주차장에 도착해 제방에 오르면 계룡저수지 둘레 길이 시작된다. 천천히 저수지 너머를 감상하며 걸으면 동그란 모양의 취수탑을 만나는데, 옆에는 연애바위가 숨어있다. 취수탑을 기점으로 짧은 데크길이 시작된다. 이곳에서도 저수지가 한눈에 담긴다. 제방길이 탁 트인 뷰를 선물했다면, 데크길이 끝난 후부터는 아늑한 숲길이 우리를 안아준다. 발밑 곳곳에 떨어진 초록색 밤송이들이 가을의 문턱에 와있음을 알린다.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 덕분에 더욱 시원하게 느껴지는 바람이 가을의 냄새도 실어 온다. 밤송이를 세며 길을 훑다 보면 숲속으로 이끄는 듯한 계단이 등장한다. 이 계단을 오르면 하대정이 나온다. 숲의 그늘을 빌려 잠시 쉬었다 가기 좋은 정자다. 벌써 하대정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호탕한 웃음소리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힘이 난다. 나는 아직 쉴 때가 아니라며 하대정을 뒤로 한 채 발길을 재촉해 앞으로 향한다.


지난 새벽 힘차게 내린 비 때문인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습도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영화 속을 산책하는 기분이 느껴지는 찰나, 저수지의 걸작을 마주쳤다. 물속에서 피어오른 버드나무의 잎들이 저수지에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어떤 버드나무는 드러누워 금방이라도 물속으로 뛰어들 것처럼 수면 위를 향하고 있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몸을 내던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예 물속으로 푹 잠겨버린 버드나무가 부러운 듯 주위를 서성이는 다른 나무들이 나처럼 느껴진다. 버드나무숲을 지나면 소나무들이 둘레길을 차지하고 있다. 분명 같은 길인데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청정하고 깨끗한 느낌이 든다. 고개를 들어보니 둘레길에 막 오를 때만 해도 구름이 가득 끼어있던 하늘이 파랗게 변해있다. 이렇게 풍경마다 어울리는 하늘을 선물받다니,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다. 걷다 보니 두 번째 정자인 석양정에 닿았다. 마른 목을 축이며 정자에 앉았다. 걸어온 길이 반대편에 머물러있다. 이곳에 앉아서 바라보는 석양이 예술이라는데, 해가 지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오늘은 석양을 보진 못해도 수면에 비친 산의 능선이 충분히 아름다워 아쉬운 마음이 화창하게 갠 하늘의 구름처럼 줄었다.


저수지를 빙 둘러 드디어 이곳의 하이라이트에 도착했다. 저수지 위를 걷는 듯 수변에 세워진 데크길이다. 데크길이 전체 둘레길의 1/3 정도 되는데,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는 쉼터도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걱정 없이 올라도 좋다. 나무 그늘이 많은 숲길을 해쳐온 탓인지, 저수지 너머의 풍경이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퍼지는 발걸음 소리가 경쾌하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각 지역의 둘레길을 걸어봤지만, 그중에서 만족스러운 곳은 찾기 어려웠다. 자연을 누리기 위해 조성해둔 둘레길은 사람들의 발소리를 듣고 다듬어지는 길이기에 찾아오는 발길이 뜸해지면 둘레길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걷기 어려운 길이 된다. 계룡저수지 둘레길은 이때까지 걸었던 모든 길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만족도가 높은 산책로였다. 저수지 너머로 보이는 산의 자태, 저수지와 닿아 있는 자연, 걷기 좋게 잘 다듬어진 길. 약 4km 정도의 짧은 길이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길의 풍경들이 충분히 공주의 자연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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