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위에 지친 자들아, 모두 내게로 오라!
늦더위에 지친 자들아, 모두 내게로 오라!
  • 글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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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스포츠웨어>와 함께 하는 우리 강산 걷기 ⑥ 포항 내연산 청하골

▲ “앗! 차가워!” 물줄기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첨벙!

어째 올 여름은 더위가 더디다 했다. 늦바람이 무섭다 했던가? 아닌 게 아니라 늦더위가 정말 모질다. 한낮이면 수은주가 35℃를 넘나드는 시절에 <컬럼비아스포츠웨어> 부산 고객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바라만 보아도 더위가 사라지는 그곳, 12폭포가 시원스레 쏟아지는 황홀한 계곡 속으로….


종남산으로 불리던 내연산(710m)은 신라 진성여왕이 견훤의 난을 피한 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동해로 뻗은 낙동정맥이 빚어낸 내연산은 청하골을 중심으로 연산폭포, 관음폭포, 상생폭포 등 12개의 폭포를 간직하고 있어 여름산행지로 인기 있는 곳이다. 웅장한 소리와 함께 알알이 부서지는 폭포의 거센 물살은 더위에 지친 이들을 한 숨 고르게 하기 때문이다.

▲ 보경사를 지나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트레킹에서 만난 물줄기. 숲과 물이 있으니 아직은 더위를 견딜 만하다.

천년고찰, 보경사를 품은 길
경북 포항시 송라면 중산리에 자리한 보경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 후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식당가를 거쳐 10분 정도 걸어가면 보경사 매표소가 나오는데 내연산은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문화재 관람료(어른 2000원)를 내야 한다.

이번 내연산 트레킹은 <컬럼비아스포츠웨어(대표 조성래)>의 부산 고객들과 함께 문수봉(622m)에 오른후 수리더미로 빠져 청하골로 하산할 예정이다. 삼지봉(710m)과 최고봉인 향로봉(930m)을 오르지 않는다고 의아할 필요는 없다. 내연산의 백미는 무엇보다 청하골에 자리한 폭포이니. 수리더미로 빠져도 12폭포의 백미인 연산폭포와 관음폭포를 감상할 수 있으니 행여 섭섭한 마음이 들어도 잠시 접어두시길.

매표소를 지나면 곧 보경사와 마주한다. 종남산을 등에 업고 좌우로 뻗은 내연산 연봉에 둘러싸인 보경사에는 절 이름에 관한 전설이 전해온다. 602년(신라 진평왕 25), 진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지명법사는 진평왕에게 ‘동해안 명산의 명당을 찾아 진나라 도인에게서 받은 팔면보경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이웃나라의 침략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후 내연산 아래에서 큰 못을 발견하자 왕은 못 속에 팔면보경을 묻게 한 후 그 위에 금당을 세운다. 그러면서 ‘보배로운 거울을 품은 절’이라고 해 보경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 문수암을 지나 문수봉으로 향하는 길에 만나는 뷰포인트. 저 멀리 상생폭포가 내려다보인다.

보경사 왼쪽으로 난 흙길로 들어서 한참 오르막을 오르면 문수암이 보인다. 문수암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작은 샘터가 있는데 날이 너무 뜨거워서인지 물이 말랐다. 샘줄기만 마른 것이 아니다. 찜통더위에 참가자들의 물통도 마른 지 오래다. 얼마 걷지 않았건만 더위와 오르막에 벌써부터 쉬어가기 시작한다. 누군가 씹어대는 아삭한 오이향에 침이 꿀꺽 넘어간다. 문수암 입구를 지나서도 계속 오르막이다. 초록빛 그늘도 8월의 태양 아래에서는 별 효과가 없다.

1km만 더 가면 문수봉임을 알리는 표지석에 기운이 난다. 오늘 트레킹 코스의 최고봉(?)이다. 이제 문수봉에 오른 후 수리더미로 빠져 청하골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청하골에는 시원한 계류와 멋진 폭포들이 자리하고 있으리라. 목줄기를 타고 청하골의 폭포인 양 마른침이 자꾸만 넘어간다.

문수봉, 표지석이 없었더라면 정말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최고봉은 아니기에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오르막을 타고 622m를 오른 것이 조금은 허무하다. 대신 그늘에 앉아 허기를 채우는 것으로 마음을 달랜다.

▲ 추모비를 바라보는 참가자들.

자연이 들려주는 매력적인 바리톤 음색
삼거리를 지나 흙길위에 오르자 곧 문수샘이다. 모두들 빈 물통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다. 목젖을 축일 수 있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능선을 걷다가 수리더미로 빠지는 샛길에서 산길을 내려선다. 내연산은 문수봉에서 삼지봉, 향로봉으로 향하는 주등산로 외의 산길이 가파른 편이니 무릎이 좋지 않은 이들은 이 코스를 피하는 것이 좋다.

얼마나 걸었을까? 가파른 내리막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물줄기가 나온다. 가뿐히 징검다리를 건너자 본격적인 계곡트레킹이 시작된다. 내연산 자락을 굽이돌아 내연골이라고도 부르는 청하골은 가느다란 속꺼풀이 진 여인의 눈에 짙은 회색 아이섀도를 정성껏 바른 듯 깊고 그윽하다.

“쏴아아!”

▲ 내연산 12폭포의 대모. 연산폭포. 30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바라만 봐도 아찔하다.

거대한 물살이 수직으로 내리꽂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흑백 공포영화의 ‘사건’이 시작되기 직전의 효과음 같다. 왠지 모를 두려움에 걸음을 재촉한다. 몇 개의 계단 같은 돌을 밟고 오르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문수봉에서의 서운함은 계곡 물살에 씻긴 지 오래다. 관음폭포의 물살은 아까의 소리와는 달리 어느새 다소곳해 지고 폭포 주변에 몰려있는 사람들은 손톱만하다. 높고 뾰족한 기암과 그 사이를 파고들어 흐르는 폭포에 잠시 숙연해진다. 인간의 어떤 기술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힘에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이다.

풍광에 취해 몽롱해진 정신을 비집고 비석이 들어온다. 추모비다. ‘산이 좋아 산으로 간…’으로 시작하는 추모비와 주변의 절경이 뒤섞여 가슴 한켠이 아릿하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던 참가자들도 이내 숙연해진다. 어쩌면 이곳에 잠들어 있는 이들이 지난 어떤 순간 참가자들과 함께 산 위를 오르던 이는 아닐지.

▲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관음폭포.

시큰거리는 마음 한 자락 바위에 남겨두고 관음폭포로 다가간다.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암벽 아래쪽에 자리한 커다란 관음굴에는 지금도 어느 도인 하나가 숨어 남몰래 수련중일 것만 같다. 폭포 앞에는 기념사진 찍으랴, 더위에 지친 몸을 식히랴 바쁜 등산객들이 가득하다. 관음폭을 지나 ‘구름다리’라고도 부르는 연산적교를 건너자 내연산 최대의 폭포, 연산폭포가 30미터의 높이에서 쉴 새 없이 떨어지고 있다. 비단결 같이 이어지는 물살 위로 발을 디딜 수만 있다면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으리라. 굵고 거센 물줄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언제 더웠던가 싶다.

▲ 관음폭포 근처 바위에 올라 주변을 조망하는 참가자들.

내연산 12폭포의 대표 미녀 관음폭포와 연산폭포 자락에 더위를 씻기자 기운이 난다. 계속되는 계류와 폭포가 담긴 청하골은 무더위에 내연산을 찾은 이들을 다독인다. 참가자들 중에 몇몇은 물살이 약한 계곡에 온몸을 풍덩 적신다. 또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또래들의 물장난은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청하골을 지나 보경사로 되돌아가는 시간. 보경사를 지나면 잠시 접어두고 온 현실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래도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자연이 있는 들려준 폭포소리를 기억하는 한 늦더위쯤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 “치이즈!” 내연산 청하골 트레킹에 함께한 <컬럼비아스포츠웨어> 부산 고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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