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조 루트’ 등 4개 코스 약 7.2㎞ 서울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김신조 루트’ 등 4개 코스 약 7.2㎞ 서울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 진우석 출판팀장
  • 승인 2011.04.2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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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 길 | ⑮ 서울 북악하늘길

▲ 북악하늘길의 최고 절경인 하늘전망대. 북한산 보현봉에서 비봉능선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장관이다

북악산은 서울의 주산이다. 예로부터 서울 시민의 친구였지만, 1968년 1월 이후로 통행이 금지됐다.   1·21사태, 즉 북한의 무장간첩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 때문이다. 그 후로 북악산은 군인들의 산이 됐다. 서울 한복판에 비무장지대가 존재했던 것이다. 하지만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감하게 북악산 일부를 개방했고, 2009~2010년에 걸쳐 북악하늘길이 만들어지면서 북악산은 완전히 열렸다.

서울 속 비무장지대가 열리다
▲ 성북천 발원지에서 숙정문안내소로 내려오는 길은 미끈한 소나무들이 일품이다
북악산 완전 개방은 서울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서울둘레길’에도 희소식이다. 서울둘레길은 서울의 외사산(북한산ㆍ관악산ㆍ용마산ㆍ덕양산)과 내사산(남산ㆍ인왕산ㆍ북악산ㆍ낙산)을 잇는 장거리 트레일로 총 거리가 무려 178km에 이른다. 외사산과 내사산은 서로 연결되는데, 그것을 북악하늘길이 담당하게 된다. 북한산 보현봉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형제봉을 지나 북악산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북악하늘길 답사는 대개 성북구민회관을 들머리로 하지만, 북한산 둘레길 5구간 명상길 입구인 정릉탐방안내소로 잡았다. 형제봉 능선에 올라 북한산과 북악산이 연결되는 지점을 확인하고, 북한산의 기운을 따라 북악산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다.

정릉탐방안내소 뒤편 주차장에서 명상길이 시작된다.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지만, 둘레길은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르면 호젓한 계곡을 지나고, 은근슬쩍 형제봉 능선에 올라선다. 여기서 북악하늘길을 알리는 이정표를 따르면 호젓하고 걷기 좋은 능선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긴 철조망을 만난다. 철조망 한편이 대문처럼 활짝 열려 있다. 1?21사태 이후 40여 년 만에 열린 것이다.

그 안으로 들어서면 능선길은 막힌다. 그곳에 군부대가 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왼쪽 계곡으로 내려서 여래사 앞을 지난다. 여래사는 호국사찰로 극락전 안에 이준 열사를 비롯한 순국 선열 373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잠시 극락전에 들러 절을 올리고 출발하면,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오른다. 북악 스카이웨이를 만나는 지점에서 다시 능선에 올라서면 하늘마루 정자를 만난다. 군부대 때문에 500m쯤 되는 거리를 빙 둘러 온 것이다.

▲ 북한산 보현봉 근처에서 본 서울 도심과 내사산. 왼쪽 두 개 뿔처럼 솟은 것이 형제봉, 그 오른쪽 길게 뻗은 능선이 북악산, 그 오른쪽이 인왕산이다. 가운데 남산과 그 너머 관악산도 잘 보인다.

하늘마루에서 본격적으로 북악하늘길(2코스, 김신조 루트)이 시작된다. 정자 앞에 하늘교가 걸려 있다. 북악 스카이웨이를 건너는 도보 전용다리다.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 크고 튼튼하다. 다리를 지나면 노천 북카페로 도서가 비치되어 있고, 넓은 평상 여러 개가 놓여 있다. 날이 따뜻해지면 햇살을 즐기며 책 읽기에 그만이다. 북카페 앞에서 2코스와 3코스가 갈린다. 왼쪽 3코스는 가장 최근에 생긴 길로 북악 스카이웨이 다모정까지 640m쯤 이어진다.

2코스 방향으로 언덕을 오르면 북악하늘길의 최고 절경인 하늘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전망대에 서자 “우와” 하는 감탄이 터져 나온다. 송곳처럼 하늘을 찌르는 보현봉이 왼쪽으로 비봉능선, 오른쪽으로 칼바위능선을 거느리고 있다. 칼바위능선 너머로 인수봉이 빼꼼  머리를 내민 모습이 귀엽다. 하늘전망대는 서울을 통틀어 북한산 보현봉이 가장 멋진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현봉은 조선시대에는 북한산의 정상이었다. 당시 백운대는 도성에서 먼 경기도 땅이었기 때문이다. 보현봉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수락산과 불암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강북 시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 아파트 숲 속에서 숨은그림찾기처럼 초안산ㆍ개운산ㆍ용마산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북한산과 북악산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하늘교

▲ 1·21사태 때 총격전의 흔적이 남아 있는 호경암
남마루서 펼쳐진 600년 고도의 정취

전망대를 지나면 호경암이다. 바위에 올라서면 서울 도심과 남산, 멀리 관악산과 청계산이 거침없이 펼쳐진다. 이곳은 1?21사태 때 총격전이 벌어졌던 곳으로 50여 개의 탄흔이 바위에 박혀 있다. 호경암에서 능선을 따라 작은 봉우리를 넘으면 팔각정이지만, 역시 군부대가 있는 관계로 우회다. 따라서 호경암부터 북악산의 주능선에서 벗어나 지릉을 타고 내려가게 된다. 길게 이어진 나무데크를 따르면 남마루다.

남마루에서 바라본 서울은 제법 멋지다. 넘실거리는 북악의 산자락 위로 서울 성곽이 출렁인다. 성곽 너머로는 빌딩숲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내사산이 숲을 이루는 도심, 성곽이 전해주는 600년 고도의 정취가 어울린 모습이 근사하다.



▲ 삼청각과 도심이 잘 보이는 삼청각 쉼터.
사실 서울은 풍수지리에 따라 디자인된 아름다운 계획 도시다. 조선 개국 당시 정도전ㆍ하륜ㆍ무악대사 등 풍수지리를 겸비한 당대 최고 학자와 승려들의 치열한 논쟁을 거쳐 지금의 북악산 아래에 경복궁이 들어섰다. 그 결과 내사산으로 주산 북악산, 좌청룡 낙산, 우백호 인왕산, 안산으로 남산이 배치됐다. 맏형인 북악산을 중심으로 4개의 산이 빚어내는 멋과 조화는 가히 일품이다.

남마루부터 시작되는 가파른 길은 계곡 바닥을 찍고 다시 올라가게 된다. 그 바닥을 계곡마루라고 하고, 약수터가 있다. 시원하게 약수를 들이켜고 다시 가파른 봉우리를 오르면 서마루다. 서울 도심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서마루에서 내려서면 성북천 발원지다. 성북천은 서울 성곽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곳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성북동을 지나 청계천까지 약 7.7km 이어진다.

발원지 앞으로 길게 이어진 다리는 ‘수고해’다. 가재가 물에서 물장구친다는 뜻. 다리를 내려오면 삼청각 쉼터로 웅장한 한옥 건물과 도심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곳 의자에 잠시 쉬었다가 미끈한 소나무 사이를 내려오면 숙정문 안내소다. 여기서 숙정문으로 오르면 서울 성곽을 탈 수 있다. 숙정문안내소 아래 삼청터널 앞에서 북악하늘길을 마무리하고, 성북올레길로 길을 잇는다.

▲ 북악하늘길 2코스가 계곡 바닥을 찍는 지점인 계곡마루. 이 구간은 나무데크가 깔려 있다.북악하늘길 정보

심우장과 길상사 등 둘러보는 ‘성북올레’

성북올레길은 성북구의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길이다. 우선 삼청각을 먼저 들른다. 한때 요정이었던 삼청각은 여야 고위급 인사들 회동은 물론 남북적십자회담, 한일회담 막후협상이 이루어진 장소로 더 유명하다. 지난 2000년 서울시가 부지와 건물을 문화시설로 지정, 전통문화공연장으로 새로 단장했다. 우아한 곡선을 그리고 천주당, 청천당을 구경하면 삼청각에서 가장 큰 건물인 일화당 마당으로 들어선다. 일화당은 카페와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야외 테라스에서 조망이 시원하다.

삼청각 정문 앞에서 도로를 건너면 성북우정공원과 서울명수학교 방향으로 내려간다. 이곳에 비양도라는 식당이 있는데, 맞은편 골목길 앞에 심우장 안내판이 서 있다. 달동네 골목길(심우장길)을 100m쯤 오르면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말년(1933~1944)에 기거하던 아담한 한옥 심우장(尋牛莊)이다.

심우장은 한옥에서 보기 드문 북향집인데 남향으로 지을 경우 조선총독부를 마주 보기 때문에 선생이 부러 산비탈로 방향을 틀었단다. 만해가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둔 뒤 외동딸 한영숙씨가 살았는데 일본 대사관저가 건너편에 자리 잡게 되자 아버지가 그랬듯 ‘일제를 마주할 수 없다’며 떠났다고 한다. 지금은 성북구에서 만해의 글과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을 전시하고 있다.

툇마루에 앉으니 마당 너머로 성북동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낮은 지붕이 마주칠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주변의 작은 집은 서민 가옥. 멀리 산자락에는 성북동을 유명하게 했던 재벌가가 몰려 있다. 심우장을 나와 길상사로 발길을 옮긴다. 북악 스카이웨이를 지루하게 따라야 한다.

▲ 성북구의 명물 길상사. 열반한 법정 스님이 주지로 있어 더욱 유명해졌다.

길상사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고급요정 대원각이었다. ‘마담’인 김영한(법명 길상화)이 1987년 1000억 원대에 달하는 부지와 건물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 1995년 송광사 말사로 등록했다. 새로 지은 건물을 제외하고는 요정 시절 그대로라 단청이 없는 법당과 스님들 처소로 바뀐 별실 등 여느 절과 다른 모습이 눈에 띈다.

성북동이 내려다보이는 야외 찻집,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는 쉼터 등이 고요하다. 느티나무 아래 앉아 고단한 발걸음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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