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바다, 갈매기 그리고 섬
여름, 바다, 갈매기 그리고 섬
  • 이슬기 기자|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6.07.3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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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무의도~실미도 백패킹

덥다. 며칠 간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더니 기다렸다는 듯 불볕더위가 기승이다. 뜨거운 태양의 혓바닥이 머리께에서 날름대는 기분. 아쉬운 대로 손부채를 부쳐보지만, 이마에 맺힌 땀을 식히기에는 역부족이다. 이가 얼얼할 정도로 찬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달큼한 냉면 한 사발도 한 때뿐. 이 심술궂은 여름나기에는 정공법이 제일이다. 이열치열이라고.

 

 

 

 

 
여름의 절정 속으로
대개 ‘섬으로의 여행’이라고 하면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인천광역시 중구에 속한 무의도는 도심에서 1시간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곳이다. 그렇다고 섬 특유의 매력이 덜한 것도 아니어서, 어딘가 가깝고도 운치 있는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 하기 좋다. 주말이면 잠진도 선착장 인근의 용유역까지 인천공항발 자기부상열차가 운행돼 대중교통으로 찾기도 편하다.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말고 섬 여행은 처음이야.” 잠진도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는데 동행인 아르미가 눈을 반짝인다. 오랜 친구인 아르미는 이 여름 도시탈출을 꿈꾸는 기자와 의기투합해 흔쾌히 여정에 함께했다. 갑판에 오르자 멀리 보이는 녹음과 푸르게 넘실대는 바다 위로 햇빛을 흠씬 머금은 한여름의 하늘이 빛난다. 우리는 어느새 이 계절의 절정 한가운데에 와 있었다.

 

 

 

 

 

 

▲ 배 여행의 낭만은 뭐니뭐니해도 새우 과자. 갈매기 떼의 격렬한 환영을 받았다.

“짜잔! 배 여행에서 새우 과자가 빠질 수 없지! 섬 여행의 낭만을 느껴보자.” 빨간 봉지를 품에서 꺼내들자 머리 위로 갈매기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더 요란한 환대에 들뜬 것도 잠시, 무섭게 달려드는 갈매기 떼에 겁을 먹고 말았다. 결국 아르미는 굶주린 갈매기에게 손가락을 쪼여 피를 보고 소리쳤다. “전혀 낭만적이지 않아!” 우리는 이들에게 비둘기화된 갈매기, 갈둘기라고 이름 붙여줬다.

여의도 면적과 비슷한 크기의 무의도(舞衣島)는 ‘섬 밖에서 보면 말 탄 장군이 옷깃을 휘날리며 달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춤추는 무희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배 위에서 섬의 모양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뱃머리를 돌려 출발한 지 5분도 안 돼 무의도에 도착했다. 큰무리선착장에서 하나개 해수욕장까지는 마을버스 1번을 타고 15분이면 도착한다.

 

 

 

▲ 도심에서 1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무의도.
▲ 소형 화롯대로도 캠프파이어 분위기는 충분히 낼 수 있다.


여기가 바로 서해의 알프스
무의도에는 남북으로 호룡곡산(245.6m)과 국사봉(236m), 두 개의 봉우리가 부드럽게 이어져 있다. 두 산을 잇는 등산코스는 서해의 알프스로 불리며 공항철도가 개통된 이후 꾸준히 알려져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명소가 됐다. 큰무리선착장 반대편 광명항에서 다리를 건너면 무의바다누리길이 조성된 소무의도에 갈 수 있다.

하나개 해수욕장을 기점으로 호룡곡산 등반을 시작했다. 후끈한 한낮의 더위에 자외선 차단제를 온몸에 찍어 발랐다. 호랑이와 용이 싸운 전설에서 유래됐다는 호룡곡산을 올라가는 코스에서는 바다를 바라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곳곳에 자리한 계곡 소리가 땀을 식혀준다. 우거진 나뭇가지가 뜨거운 한낮의 햇빛을 가려줘 수월하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길 중간중간에는 호랑바위와 마당바위, 부처바위, 수직절벽 등 기암괴석이 많아 눈이 즐겁다.

 

 

 

 

▲ 호룡곡산 중턱에서 만난 게. 신기하게도 꽤 많은 수가 산에 서식하고 있었다.

 

 

 

 

▲ 정상에서의 막걸리 한 잔. 모히토에서 몰디브 한 잔이 부럽지 않다.

“이것 봐!” 아르미가 돌 위를 지나가던 게 한 마리를 들어 올렸다. 산속에서 게라니. 생경하면서도 신기하다. 잠시 땅을 가만히 바라보니 사슴벌레와 사슴풍뎅이, 거미 등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 전에 내린 비로 등산로는 희미해져 있었지만, 호룡곡산의 동식물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차게 생동하고 있었다. 이윽고 만난 호랑나비는 깨끗하고 선명한 노란색 날개를 저으며 원추리 꽃에 앉았다.

출발한 지 3시간여 만에 정상에 다다랐다. 땀으로 온몸이 젖었지만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 산에도 올랐으니 올여름 더위는 우습게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다. 호룡곡산 정상에서는 하나개 해수욕장은 물론 서해의 관문인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이 손에 닿을 듯하다. 2018년이면 무의도와 잠진도를 잇는 연륙교가 개통된다고 하니 무의도에 들어가는 배를 타는 일도 머지않아 없어질 터다. 오롯이 섬으로 남아있는 무의도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 서해의 알프스라 불리는 호룡곡산에 오르니 탁 트인 서해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번 여정의 야영지로 정한 하나개 해수욕장은 무의도에서 가장 큰 갯벌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다. “2007년에는 전국 20대 해수욕장으로 뽑힌 적도 있어.” 매표소 아주머니가 넉살 좋게 한마디 건넨다. 하나개 해수욕장의 명물은 바로 섬과 해안을 아름다운 붉은 색으로 물들이는 낙조. 운 좋게도 해가 넘어가기 전에 해변에 도착했다. 바닷물 위로 발간 해가 반사돼 꼬리처럼 길게 늘어졌다. “오늘 중에 가장 좋았어.” 그래, 정말이지 황홀하구나.

 

 

 

▲ 수평선 너머 바다와 하늘이 하나의 색으로 합쳐진다.

 

 

▲ 실미도 해변의 무시무시한 표지판.
“비겁한 변명입니다!”
큰무리선착장에서 마을버스로 5분이면 실미유원지다. 유원지 안쪽의 실미해수욕장을 지나면 실미도에 들어갈 수 있는데, 밀물 때는 길이 잠겨 썰물 시간을 맞춰 들어가야 한다. 실미도 해변 왼쪽 끝에 산으로 올라가는 작은 길이 나 있고, 이 길을 따라 10여 분 가면 북파공작원들이 훈련받던 섬 뒤편의 작은 해변에 이른다. “비겁한 변명입니다!” “내가 너 그거 왜 안 하나 했어.”

“황량하고 쓸쓸해.” 실미도의 인상은 딱 그랬다. 영화 세트장은 훈련장을 폭파하는 마지막 신을 촬영하며 모두 없어졌고, 과거 북파 부대원들이 고된 훈련을 마치고 목을 축였을 우물과 막사 흔적만이 섬을 지키고 있었다. 해안을 따라 크고 작은 바위 위를 걷는 동안 삭막한 우리의 현대사를 떠올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이렇게 도시와 가까운 곳에서 그런 비극이 일어나고 있었다니.”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야.”

여름이 매력적인 것은 이 계절의 후끈함이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들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일 거다. 숨 가쁜 열기와 휴가철의 달뜬 분위기, 그리고 나른한 밤의 공기에 가슴부터 뜨거운 사람들이 더해져 비로소 여름이라는 그림이 완성된다. 그래서 여름은 열렬할수록 완전하고, 더울수록 제맛이다.

 

 

 

 

 

▲ 크고 작은 돌들이 가득한 실미도 해변.

 

 

 

 

▲ 실미도를 오갈 수 있는 바닷길은 밀물 때는 잠기므로 미리 썰물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 실미도를 한 바퀴 둘러보는 데는 1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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