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보다 사막 한가운데가 더 평화로워요”
“도시보다 사막 한가운데가 더 평화로워요”
  • 임효진 기자|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5.06.0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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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PINIST’S DINING | 남영호 대장

아웃도어에 인생을 건 사람들과 매달 특별한 한 끼 식사를 나누고자 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들의 업적과도 같은 일대기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으로의 소소한 삶을 나누고 싶어서다. 이번 달은 10대 무동력 사막 횡단을 이어가고 있는 탐험가, 남영호 대장을 만났다.

오늘 인터뷰 장소로 주류를 시음해 볼 수 있는 장소를 골랐어요. 마음에 드세요?
아주 마음에 드는데요.(웃음) 제가 2년 전부터 각국 특산주를 모으고 있거든요. 최근에는 멕시코 치와와 사막을 다녀오면서 백합과 식물에서 뽑아낸 재료로 만들어진 소똘을 사왔어요. 테킬라와 싱글몰트를 섞은 느낌인데 아주 좋아요.

대장님을 탐험가라고 소개했더니, 직원분이 남성스럽고, 맛이 강한 와인을 주로 추천해 주셨어요.
바롤로라고 남성적인 스타일의 와인이에요. 강하고 강직한 사람에게 어울린대요. 굉장히 센 느낌이었고요. 무조건 직진해야 할 것 같았어요. (웃음) 저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와인을 좋아해요. 두 번째로 맛본 와인이 부드럽고 달콤한 과일 향이 강해서 아내와 함께 마시면 좋을 거 같아요. 세 번째로 맛본 건 와~ 풍미가 정말 좋더라고요. 어머니가 좋아하실 거 같은 맛이었어요. 푸루티하고 생기발랄한 느낌 있죠? 여성들이 좋아할 거 같은 맛이에요.

마지막으로 맛본 지브리 샹베르땡은 나폴레옹과 관련이 있는데, 나폴레옹이 탐험을 즐기며 세계 정복을 꿈꿀 때 즐겨 마시던 와인이래요. 저의 탐험 성공을 빌어주면서 추천해 줬어요. 굉장히 독특하고 복잡 미묘한 맛이었고요. 다음 원정 때 왠지 챙겨가야 할 거 같아요. (웃음)

지난달에 멕시코 치와와 사막 횡단에 성공하셨어요.
아쉬움이 많은 여정이었어요. 마음가짐과 장비에서 준비가 안 된 대원을 중간에 돌려보내야 했고요. 행동에 제약이 따라서 힘들었죠.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다 보니 멕시코 관광청과 치와와 주 정부에서 원정에 동행했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탐험의 진정한 의미를 살리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다시 간다면 후원자 없이 혼자 가고 싶어요.

처음부터 사막을 가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아니요. 처음 원정은 2006년의 유라시아 원정이었어요. 탐험은 아니었고요. 8개월 동안 다양한 구간을 지나면서 저에게 맞는 지형을 찾는 과정이었어요. 그 뒤에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면서 사막이 저와 잘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고요.

10대 사막 무동력 횡단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유가 있나요?
모험가가 도전할 가치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10대 사막은 규모가 큰 사막을 가리켜요. 지금까지 6개 성공했고, 올해 말에 파타고니아 사막에 갈 생각이에요. 그 밖에 칼라하리와 사하라, 시리아 사막이 남았어요. 그런데 사하라와 시리아는 내전 지역이라서 갈 수 있을지 불투명해요.

10대 사막 횡단은 남들한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저 자신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데 까지 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하지는 않을 거예요. 위험한 상황에서도 강행한다면 그건 성과에 대한 집착이고, 밖으로 보이는 것에 더 신경 쓰고 있는 거예요. 향후 2~3년 내로 상황이 좋아지면 가는 거지만,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걸 찾으면 그만이에요.

한국은 여전히 탐험가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면이 있어요. 목숨을 걸고 위험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죠.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고요. 탐험을 목숨 걸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목숨을 걸 만큼 위험한 일을 하는 건 아닙니다. 목숨이 위태롭지 않은 정도의 확신이 들었을 때,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쳐 탐험하는 거죠. 위험한 부분이 분명 있죠. 하지만 우리가 사는 도시는 항상 안전할까요? 사실 사막 한가운데가 더 평화로워요. 혹독한 기후라는 자연 요소 빼고는 도시보다 나를 헤칠 수 있는 요소가 적어요. 철저히 준비하고, 훈련하는 것만이 사막 한가운데서 저 자신을 지킬 방법이죠.

원정을 가기 전에 주로 어떤 준비를 하세요? 체력을 키우고, 식사를 조절하신다고 들었어요.
지금처럼 날씬한 몸을 유지하면서 등산과 러닝으로 지구력을 늘리는 데 중점을 두죠. 몸이 커지면 그만큼 많이 먹어야 하고, 많은 식량을 짊어지고 가야 하니까요. 식사는 절대 과식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요. 배부르게 먹는 날이 1년에 하루 이틀밖에 되지 않아요. 평소에는 딱 배부르기 전까지 먹어요.

음식은 어떤 걸 좋아하세요?
초딩 입맛이에요.(웃음) 피자, 치킨, 파스타를 좋아해요. 그래도 배부르게 먹지 않으니까 체중이 급격하게 늘지는 않아요. 늘 소식하지만, 한번은 정말 많이 먹었던 적도 있어요. 호주 사막을 건너던 중이었는데, 예상했던 기간보다 열흘 가까이가 늦어졌어요.

식량이 떨어져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저희 소식을 지역 라디오에서 중계를 해줬던 모양이에요. 근처를 지나던 오프로더 여행자들이 저희가 있는 곳을 용케 찾아내 짊어지지도 못할 만큼의 많은 양의 음식을 주고 갔어요. 그런 사람들이 2~3차례나 더 찾아왔어요. 하지만 그 음식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열흘은 더 가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겠더라고요. 음식은 이제 거의 떨어져 가는 상황이었어요. 거의 아사 직전에서야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고기를 사서 앉은 자리에서 혼자 1kg을 먹었어요. 그 뒤로도 일주일 동안 삼시 세끼를 스테이크로 장식했죠. 그랬더니 일주일 만에 5~6kg이 쪘어요. 원정을 다녀왔는데 살이 쪄서 와서 민망했어요.

체력 관리와 식단 조절 이외에 또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현지에 대한 철저한 공부겠죠. 현지인에게 실례하지 않기 위해 습성과 문화도 익히고요. 가기 전까지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해요. 물론 GPS를 갖고 가기는 하지만 미리 지형에 대해 공부를 해놓지 않으면 당황하기 마련이에요. 현실은 생각과 달라서 가면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기도 해요. 그래서 준비하고 가야 덜 당황하고 변수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요. 저는 제가 가려고 하는 루트를 위성사진으로 찾아보면서 끊임없이 들여다봐요. 수백 번씩 보다 보면 사람이 지나간 흔적을 찾을 수 있어요. 100여 년 전 사하라 왕자가 시트로앵을 타고 사막 횡단을 했는데, 그 바퀴자국이 아직 남아있어요.

시뮬레이션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시간을 이용해서 하세요?
지도를 사서 모아 한데 이어붙이고 계속 보는 방법이요. 지도를 이어붙이다 보면 나중에는 벽지로 붙여도 될 만큼 커져요. 그리고 루트를 그려놓고 계속 보는 거죠.

그 전에 양의 뇌를 먹어야 했던 적도 있다던데.
아랍은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문화가 있어요. 커다란 쟁반에 음식을 펼쳐놓고 먹는데, 손님이 먼저 맛을 봐야지 자신들의 접대에 만족했다고 생각해요. 양의 뇌를 먹으라고 줬는데 아주 고소했어요. (웃음) 제가 새로운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어요. 지네, 전갈, 염소 생식기, 물방개 등도 먹어봤어요. 하지만 한 가지 힘들었던 것도 있었어요. 수마트라 인근 맨따와리 섬에서 맛보았던 원숭이 뇌요.

왜요?
사람이랑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요. 먹기 좀 그렇더라고요.

따님이 계시죠. 지금 몇 개월인가요?
20개월이에요. 안타깝게도 아내의 임신 소식도, 출산 소식도 모두 사막 한가운데서 들었어요. 출산할 때는 곁에 있으려고 했는데, 아이가 8개월 반 만에 나오는 바람에 한 달 뒤에 얼굴을 봤어요.

아내분이 많이 서운하셨겠어요.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원정 중에 매일 밤에 전화했어요. 근데 그날은 전화를 안 받더군요. 걱정돼서 가족들한테 전화를 해봤어요. 아내가 약간의 이상이 있어서 병원에 검사받으러 갔다고 하더라고요. 기분이 뭔가 이상했어요. 알고 보니 조산을 한 거였어요. 아내는 제가 걱정할까 봐 말도 못하고…. 정말 미안했어요.

아직 원정 일정은 남아있는데, 아내와 아이가 걱정돼서 원정을 마무리하는 데까지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굉장히 마음이 복잡했어요. 하지만 제가 거기서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요. 등반 같으면 베이스캠프에서 철수하고 내려오면 되지만, 사막 횡단은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 가는데 최소 300~400km를 가야 해요. 되돌아가는 길보다 목적지까지 가는 게 더 빠르죠.

처음에 아기를 보았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태어나고 한 달 뒤에 봤는데 미숙아로 태어나서 여전히 인큐베이터에 있었어요. 인큐베이터 안에 있으니까 만져볼 수도 없고, 실감이 잘 안 났죠. 근데 웃음이 자꾸 나오더라고요. 그러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어요. 저를 봤는지 어땠는지 모르지만 저는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기분이 굉장히 묘했어요. 엄청나게 감동적이었죠.

지금은 통통해요. (웃음) 돌 되기 전까지는 저랑 싱크로율이 100%였어요. 아이 백일 사진과 제 돌 사진을 나란히 놓고 사진을 찍었는데, 정말 똑같았어요. (웃음) 지금은 조금씩 엄마 모습도 보이는 거 같아요.

몇 달씩 원정 다니면서 집을 비우다 보면 아이와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적을 텐데요. 아빠를 못 알아보지는 않던가요?
저도 울거나 피할 줄 알았어요. 근데 호주와 몽골 사막을 다녀와서 두 달 만에 집에 들어갔는데 아이가 팔 벌려서 저를 안더라고요.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생각했죠. 고마웠어요.

탐험가라는 타이틀은 마음에 드세요?
사막 탐험가, 오지 탐험가 이렇게 나누는데 사실 맞는 거 같진 않아요. 탐험가가 가는 곳이 모두 오지 아니겠어요? 사실 탐험가가 꿈이었다기보다는 고등학교 때부터 막연하게 세계 곳곳을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를 보고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으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았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에게도 탐험가의 기질이 필요하거든요. 새로운 곳을 발굴하고, 한 곳에서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정신이요. 그래서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는 길로 갔죠.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즐거운 대학 생활이었어요. 그리고 사진 기자로 일하면서 제가 땀 흘리고 도전하는 거에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무동력 사막 횡단, 재미있으세요?
다행히 재미있어요. 힘들고 무서울 때도 있지만 엄청나게 재미있어요. 사실 성공과 실패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시작 지점 반대편에 와 있으면 성공한 거라고 하죠. 하지만 과정이 탐험으로서 정직하지 않았다면 그게 성공일까요? 꼼수 부리지 않고 탐험가 정신에 충실한 것이 진짜 성공이겠죠.

지금도 철이 덜 들었지만, 사막을 다녀오는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씩 철이 드는 거 같아요.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배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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