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이야기 | 티타늄 ③
소재이야기 | 티타늄 ③
  • 글 서승범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4.01.16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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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온 티타늄

캠핑의 역사는 몇 번의 비약적인 발전을 거쳤다. 예전의 캠핑은 지금처럼 캠핑을 위한 캠핑이 아니라 등반을 위한 캠핑이었으니 등반의 역사라고 해도 되겠다. 물론 공식적인 등반사에 나오는 기록은 아니다. 일종의 야사(野史)인 셈이다. 첫 번째 굴곡점에는 라면이 있고, 두 번째 굴곡점은 즉석밥이 나온 시점이다. 라면이 간편하게 허기를 메울 수 있었다면 즉석밥은 라면보다 배를 든든하게 채워줬다. 등반은 좀더 힘을 받았다. 마지막 굴곡점은 물티슈다. 이전에도 식당에서 제공되는 물티슈를 아꼈다가 쓰는 경우는 있었지만 뚝뚝 떨어지는 비눗물 때문에 찝찝했다. 촉촉하고 깨끗한 물티슈는 비단 산상 설거지를 혁신적으로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개개인의 위생 상태 역시 완전히 바꿔놓았다.

▲ 티타늄은 가볍다. 덕분에 백패커들은 같은 힘으로 더 멀리 갈 수 있다. 티타늄은 강하다. 때문에 비싼 장비라고 애지중지 하지 않아도 된다. 거칠게 사용해도 별로 티가 나지 않는다. 티타늄은 오래 간다. 하여 한 번 사면 질리도록 사용할 수 있고, 장비에는 캠핑의 흔적과 시간들이 쌓이게 된다.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장비는 내 것이 된다.

티타늄은 새로운 변곡점 역할을 하고 있다. 앞서 나온 라면이나 즉석밥, 물티슈보다 고가이기 때문에 한 순간에 캠핑 씬을 확 바꾸지는 못했지만 그 변화는 서서히, 하지만 무척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시에라 컵을 비롯해 머그컵, 코펠, 수저와 포크 등의 식기 관련 장비들은 이미 티타늄이 대세를 이루었고, 펙도 티타늄 제품들이 나왔다. 폴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티타늄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양산되지는 않고 있다. 이밖에 휴대성을 극대화시킨 스토브에도 일부 사용되고, 강도와 내식성이 중요한 아이젠도 티타늄으로 만든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티타늄 캠핑 장비들은 그 재료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중국 산시성 바오지에는 티타늄을 생산하는 공업 단지가 있다. 티타늄은 금홍석이나 티타늄 철석 등에서 추출한다. 추출물은 다시 제련 과정을 통해 가공을 위한 판재나 봉 등으로 만들어진다. 이 가공재들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도매상과 재료상을 거쳐 제조업체에 공급되고, 제조업체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은 유통업체를 거쳐 시장에서 소비자와 만난다.

티타늄 소재 자체가 비싸기도 하지만 재료를 추출하고 가공하기가 쉽지 않아 생산비가 많이 든다. 중국에서 생산된 가공재를 기준으로 했을 때 국내에 들어오는 스테인레스 스틸의 가격은 1kg당 4천800원인데 반해 티타늄의 경우는 1kg당 4만8000원 정도, 가격 차이가 10배다. 여기에 유통과정이 여러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부터 포스코에서 티타늄 가공재를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티타늄 용품을 생산하는 AMG 티타늄은 포스코의 티타늄을 사용하는데, 이에 대해 한인석 대표는 중국의 티타늄보다 가격이 조금 높지만 유통단계를 줄여 가격 상승 요인을 최소화했다고 밝혔다.

캠핑 씬에서 티타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대지만,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스노우피크와 에버뉴 등에서 씨에라 컵과 머그컵, 작은 코펠 등을 티타늄으로 제작해 선보였다. 써본 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우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고, 그렇다고 강성이 딸리거나 내구성이 아쉽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갖은 환경에서 사용해도 변색이나 부식 따위는 없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티타늄 코펠이 제 능력을 가장 잘 발휘하는 것은 액체를 끓일 때이다. 강성이 좋아 얇게 가공할 수 있고, 재질이 얇기 때문에 스토브의 열을 코펠 내 물질에 거의 손실 없이 전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밥을 할 때에는 코펠 전체로 열을 고르게 나눠 은근한 열로 밥이 고루 익게 해야 한다. 그런데 티타늄은 소재의 특성상 열 전도율이 무척 낮다. 불이 직접 닿느냐 닿지 않느냐에 따라 음식물이 익는 정도가 달라졌다. 물론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대책들이 나와 있다.

홑겹의 티타늄 코펠을 지닌 이들은 오랜 시행착오 끝에 종이호일을 깔고 밥을 하면 된다는 결론을 냈고, 업체들은 열 전도율을 높일 수 있도록 코펠 안쪽에 코팅을 한 제품들을 내놓았다. AMG 티타늄의 겨우 다이아몬드 코팅을 한 제품을 제작하고 있는데, 무게는 8% 정도 늘어나고 비용은 크게 상승하지 않아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티타늄 코펠을 사용할 때 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내용물이 없는 상태에서 불을 가하면 색과 형태가 변한다. 워낙 얇게 가공되기 때문에 ‘일단 불부터 붙여 놓고’ 물을 따르려 하면 이미 진회색의 티타늄 코펠 바닥이 무지개색으로 변하고 있을 것이다.


상황은 컵도 마찬가지다. 뜨거운 커피를 따르면 맨손으로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컵이 뜨거워진다. 동시에 두께가 얇아 열을 잘 빼앗기기 때문에 쉽게 식는다.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나온 제품이 ‘더블월’이라 부르는 이중컵이다. 손으로 바로 잡아도 따뜻한 정도이고, 입술 델 우려도 없고 잘 식지 않기 때문에 인기가 좋다. 다만 티타늄이 거의 두 배 가까이 들어가고, 진공 상태에서 용접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올라간다. 티타늄 제품들의 값이 비싼 이유 중 하나는 가공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스노우피크와 유니프레임의 티타늄 제품들은 오랜 금속 가공업으로 유명한 츠바메 산조 지역에서 생산한다. 유니프레임 채명수 이사는 일반 스테인리스 스틸의 불량률이 1~3% 정도라면 티타늄 제품 라인의 불량률은 5% 정도라고 말했다.

불과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 초,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티타늄 금속 재생기술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이 기술의 핵심은 티타늄 잉곳(금속을 녹인 후 주형에 넣어 굳힌 가공재)을 제품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티타늄 스크랩(폐티타늄)을 재활용해 다시 티타늄 잉곳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동안 티타늄 스크랩을 재활용하는 기술이 없어 저가에 외국으로 수출해왔다. 고철로 처리된 셈이다. 하지만 이번 기술 개발을 계기로 1500t 넘는 양의 티타늄이 유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예측하고 있다.

세계 티타늄 시장은 경기 침체 속에서도 매년 10% 이상 커지고 있다. 2012년 기준 3조1천억 원 규모다. 아웃도어 장비 시장 역시 이러한 트렌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등산장비 제조 경력 30년의 한인석 대표는 앞으로 티타늄 사용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짐작컨대, 티타늄 사용은 3년 정도 뒤에 전성기를 맞을 것으로 봐요. 티타늄에 대한 수요 자체도 늘고 있지만, 추출 기술과 가공 기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거든요. 자연스럽게 가격도 안정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한 50% 정도는 안정되지 않을까요?”

티타늄 펙이나 폴은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있다. 펙은 이미 많이 사용되고 있다. 백패킹이나 미니멀 캠핑에 많이 사용된다. 펙은 부피가 작고 자연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다양한 소재들을 시험할 수 있다. 주철을 비롯해 스테인리스 스틸, 알루미늄, 두랄루민, 티타늄 등을 소재로 한 펙들이 나와 있다. 폴은 아직 눈으로 확인한 적은 없으나 일부 업체에서 시험 삼아 생산한 적은 있다고 한다. 다만 펙과 달리 폴에는 티타늄이 많이 들어가고, 강도와 내식성 못지않게 탄성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에 맞는 합금 작업이 필요한데, 그에 따른 비용 상승 폭이 커서 아직 상품화까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기술 개발 추세라면 멀지 않은 시기에 티타늄으로 만든 폴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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