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Travel | 부산 ③ 골목길
Korea Travel | 부산 ③ 골목길
  • 글 채동우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4.01.1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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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구길·매축지·보수동 책방골목
가파른 계단 끝에 사람이 살고 있었네

옛 기억 떠올리며 걷는 골목길 여행, 이바구길
이바구길의 시작은 부산역을 벗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골목길 투어 전에 만나는 곳은 차이나타운. 이곳은 국내 유일의 차이나타운 특구로 1884년 청나라 영사관이 있었던 곳이며 부산 최대의 중국인 거주지로 알려져 있다.

▲ 유치환의 우체통 앞에 서면 진짜 부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본격적인 이바구길을 걷기 시작하면 초량의 옛 모습을 담은 담장 갤러리를 지나고 부산 동구 출신의 유명인을 담은 동구 인물사 담장을 지나게 되는데 이런 장식들은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다. 그렇다고 이 작위적인 초입만 보고 이바구길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진짜는 그 이후에 나타난다. 총 168개의 계단으로 이뤄진 ‘168계단’을 마주하면 이제부터 알맹이 이바구길이다. 가파른 계단길이 힘들다고 바닥만 보며 걷지는 말자. 계단 중간쯤 오른쪽으로 난 샛길이 있는데 그곳으로 빠져야 김민부 전망대를 만날 수 있기 때문. 전망대 카페에서 커피를 내는 김은숙씨는 “영화 배경으로 많이 나온 동네라 아마추어 취미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다”며 “주말에는 200~300명 정도가 이 카페를 들렀다 간다”고 말했다.

▲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본 풍경.

▲ 도심에서 자취를 감춘 당산이 이곳에서는 마을의 중심이다. 사진 채동우 기자

이바구길에서는 도시에서 자취를 감춘 당산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당산할배와 당산할매를 모시고 있는데 매년 음력 3월, 9월 보름에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가 열린다. 당산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의 주요 거점인 이바구 공작소가 나온다. 2개월에 한 번씩 기획전시가 열리는데 전시회 내용도 독특하다. 부산 문화복지 전문인력 정경화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기획전시는 요강 이바구뎐”이라며 “마을 어르신이 직접 사용하고 계시던 요강을 모아 전시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시회 기간 동안 어르신들이 수시로 이곳을 찾아와 불편을 호소하며 언제 전시가 끝나느냐고 묻는 등 웃지도 울지도 못한 사연이 있었다”며 당시를 말했다.

▲ 이바구 공작소에서는 2달 간격으로 새로운 전시를 진행한다.

장기려 박사 기념 건물인 ‘더 나눔’을 들른 후 산복도로를 따라 걸어가면 저 멀리 부산항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빨간 우체통 하나를 만나게 된다. 바로 ‘유치환의 우체통’이다. 경남여고 교장을 2차례 지내고 동구에서 생을 마감한 유치환 시인을 기리며 만들어진 곳이다. 이곳을 관리하는 이미연씨는 “건물 옥상에 설치된 느린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1년 후에 배달된다”며 “주말에는 100장 이상, 평일에는 20여 장의 편지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유치환의 우체통에서 200m 정도만 더 걸어가면 부산항 야경을 즐길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까꼬막’이 나온다. 까꼬막은 가파른 언덕의 사투리다. 최대 수용인원은 15명 내외고 숙박비용은 4인 기준 5만원이다. 주말 숙박은 두 세달 전에 예약이 꽉 찰 정도로 인기다.

▲ 까꼬막 게스트하우스 주말 숙박은 두세 달 전에 예약이 꽉 찬다.
▲ 총 168개의 계단으로 이뤄진 ‘168계단’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 부산역 건너편에는 국내 유일의 차이나타운 특구가 있다.

서울의 아파트 숲을 보고 있으면 어찌 그리 잘 정돈됐는지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산복도로 아래 들쑥날쑥하게 자리 잡은 집들을 보면 각각의 사연이 담긴 가족들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진다. 저녁 어스름, 그 수많은 사람의 사연을 담은 등불이 하나씩 켜지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 가슴 짠한 풍경이 바로 부산의 진짜 모습이다.

▲ 김민부 전망대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시간이 멈춘 마을 매축지 마을
근현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매축지 마을은 일제강점기 때 바다를 메워 만들어진 지역이다. 큰길을 제외하면 폭이 1m가 될까 말까할 정도를 사이에 두고 오래된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매축지 마을이 생겨난 당시에는 부두에 내린 말과 짐꾼이 쉬어 가던 곳이었다. 한국전쟁 때에는 피란민의 거주지가 되기도 했다.

▲ 매축지에서는 오래전 우리네 골목길의 풍경이 펼쳐진다. 사진 채동우 기자

그러나 이 마을의 시계는 점점 느리게 흘러갔고 지금은 거의 멈춘 상태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과 공동 화장실 등 워낙 오래전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보니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친구와 아저씨 등 굵직굵직한 흥행영화의 배경으로 매축지 마을이 등장한다.

▲ 골목길에 빨랫줄을 잇고 빨래를 너는 모습. 이젠 구경하기 힘든 풍경이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이 마을 골목길을 돌아다니지 말자. 30~40년 훌쩍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한 느낌이 들어도 너무 놀라지 말자.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어르신이 나오면 인사부터 하자. 인사.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눈을 마주 보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인사 말이다. 이곳도 사람 사는 동네이니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매축지 마을 뒤로 위압적으로 서 있는 아파트.

▲ 시장골몰에서 올려다본 풍경. 멀리 알록달록하게 벽을 칠한 아파트가 보인다.

헌책 갱생의 현장, 보수동 책방골목
새것이 헌것이 되었어도 다시 새것처럼 쓰는 시절이 있었다. 특히 책은 더 그랬다.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 부르던 노래의 가사가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 잘하며 우리는 언니들을 따르렵니다”였고 실제로 그러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헌책의 수요가 줄더니 아예 책을 사는 사람들이 줄었다.

▲ 이곳에서는 고서부터 새 책 같은 헌책까지 다양한 서적을 만날 수 있다.

▲ 한때 보수동은 수입 잡지를 맘껏 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었다.

동네에 하나씩은 있었던 헌책방이 자취를 감추는 건 순식간이었다.하지만 부산에 가면 멸종된 줄 알았던 헌책방이 있다. 그것도 한두 군데가 아니고 어엿한 골목을 이루고 있다. 비록 150여 미터 남짓의 짧은 거리지만 나름의 역사가 있는 골목이다. 그 시작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북에서 피난온 손정린씨 부부가 보수동 사거리 입구 골목 안 처마 밑에서 박스를 깔고 미군 부대에서 나온 헌잡지, 만화, 고물상으로부터 수집한 각종 헌책 등을 팔면서 지금의 보수동 헌책방 골목이 생겼다. 어찌 보면 전쟁이 남긴 상흔인 것이다.

▲ 페인트칠이 벗겨진 참고서 판매 간판. 사진 채동우 기자

▲ 한 권은 벌써 팔에 끼고 있고, 다른 한 권은 찬찬히 훑어보고 있다. 사진 채동우 기자

어린 시절, 모자란 용돈을 부풀려주던 유일한 곳이 헌책방이었다. 책 산다는데 인색한 부모는 없었다. 참고서 구입 명목으로 받은 돈의 일부로 헌책을 구매했고 남은 돈은 자연스레 주머니로 들어갔다. 간혹 어떤 녀석들은 집에 있는 책이나 친구의 책을 몰래 팔기도 했다. 대학 시절엔 절판된 책을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뒤지는 일도 많았다.

▲ 보수동은 한국전쟁이라는 가슴 저린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공간이다.

▲ 무질서하게 쌓인 책더미에서 찾던 책을 집어 들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비록 누리끼리하게 변색된 책일지라도 어렵게 찾아낸 절판도서는 보물과도 같았다. 그리고 가끔, 그렇게 힘들게 구한 책을 스스럼없이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이렇듯 책과 관련된 추억은 누구나 하나쯤 있을 법하다. 그 기억이 누런색으로 변색되었을지라도 어느 부분 좀먹었을지라도, 잠깐 꺼내 햇볕이라도 쬐어주면 어떨까. 이미 보수동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책을 꺼내 보면서 그렇게 옛 추억에 잠기고 있다.

비영리민간단체 창작공간
인사이트영 이동근 작가

“마을 주민의 자존감을 끌어올리고 싶습니다”

매축지 마을에 둥지를 틀고 주민들과 동고동락하며 함께 생활하는 청년들이 있다. 바로 마을기업 인사이트영이 그 주인공. 인사이트영의 이동근 작가는 “2011년부터 매축지 마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며 “당시에는 니들이 뭔데 여기서 이러고 있느냐는 말을 들었지만 지금은 매축지의 일부나 다름없을 정도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사이트영이 꿈꾸는 매축지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이 작가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주민들의 자존감은 매우 낮은 상태”였다며 “수익성을 떠나 마을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공방이라던가 텃밭 가꾸기 등을 통해 꾸준히 마을의 자존감을 높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할머니들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마을다방 정’ 같은 경우 수익금으로 매년 마을잔치를 한다고.

이동근 작가의 현재 주거지는 매축지 마을이다. 작은 일 하나라도 마을주민 입장에서 진행하고자 하는 의지다.

“마을 주민이 서로 촘촘히 소통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조성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는 구청이나 시청에서 진정성 있는 마음가짐으로 소외받는 마을을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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