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이야기 | 티타늄 ②
소재이야기 | 티타늄 ②
  • 글 서승범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4.01.15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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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으로 변신할 때 입은 수트는 아이언이 아니라 티타늄으로 만들어졌다. 영화에서도 수트의 소재를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주인공이 수트를 입고 날라다녀야 하기 때문에 티타늄과 금을 합금해 특별한 옷을 만들었노라고. 사실, 그건 거짓말이다. 영화 속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뒤지다보니 티타늄과 금은 합금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비록 아이언맨의 수트는 영화의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비현실적인 상상력의 결과물이지만, 그렇다고 현실감이 전혀 없진 않다.


▲ ⓒwikipedia.org
아이언맨의 수트와 같은 것을 전문용어로 ‘외골격 로봇’이라고 한다. 우리 몸의 관절과 뼈, 근육이 내는 힘을 몇 백 배 증폭시키는, 그야말로 사람을 초인으로 만드는 장치다. 우리 기억에 남은 건 영화 속 장면들이지만, 실제 과학의 세계에서는 개발 단계를 넘어 상용화에 다가섰다. 일본은 장애인의 행동을 돕기 위한 외골격 로봇들이 현실화되고 있고, 미국에서는 군사 분야에서 외골격 로봇을 개발했다. 세계 최대 군수업체인 록히드마틴사는 티타늄으로 만든 외골격 로봇 헐크를 개발하고 있다. 90kg의 짐을 지고서도 시속 16km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냉난방 시스템도 가동된다. 머지않은 미래에 백패킹으로 오토캠핑 수준의 캠핑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기사들에 티타늄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은 티타늄의 무게와 강도 때문이다. 가벼운 무게로 높은 강도를 보인다는 뜻이다. 티타늄의 무게가 다른 금속들에 비해 가볍다는 얘기는 앞서 비중으로 설명했다. 금속의 특성 가운데 비강도라는 게 있다. 재료의 강도를 비중으로 나눈 값이다. 단위 무게로 얼마나 강한가를 나타내는 수치로, 가벼움과 강도를 동시에 필요로 할 때 따진다. 외골격 로봇처럼. 순수 티타늄의 비강도도 좋지만 합금 티타늄의 경우 최고 수준의 비강도를 자랑한다. 그리고 비강도는 상온에서뿐 아니라 극저온이나 600도를 넘나드는 고온에서도 유지된다.

가볍고 강도가 높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척 매력적인 소재다. 하지만 티타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가벼움과 고강도 못지않게 중요한 특성이 또 있다. 내식성과 무독성. 녹이 슬지 않고 인체에 해롭지 않다. 일반적으로 금속은 공기 중에서보다 바닷물 속에서 더 빨리 산화된다. 바다에 휴대전화 한 번 빠뜨려 본 사람들은 알 거다. 기판은 하루나 이틀 만에 완전한 녹색으로 부식되어 버린다.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는 것보다 바닷물 속 전해질들이 금속의 전자를 이동시키는 것이 빠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갈수록 해양 플랜트 산업이 많아지는 시대에 티타늄은 각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티타늄만 내식성이 좋은 건 아니다. 백금 역시 거의 완벽한 내식성을 자랑한다. 하지만 무게(비중)는 티타늄의 5배가 넘고 가격 또한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 참고로 티타늄은 바다의 백금으로 불린다.

▲ 외골격 로봇, 헐크(HULC). ⓒwikipedia.org

▲ ⓒwikipedia.org
인체에 무해하다는 건 티타늄으로 만든 시에라컵이나 일반 컵을 안심하고 사용해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치료를 목적으로 우리 몸에 금속을 집어넣어야 할 때 티타늄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티타늄의 내부 구조를 변형시킨 나노티타늄은 기존의 인공보조물로 쓰이던 합금들보다 훨씬 강하고 오래 유지될 뿐만 아니라 사람의 뼈에 쉽게 적응하고 아무런 부작용도 일으키지 않는다. 이 말은 우리 몸의 면역계가 ‘이물질’이나 다름없는 티타늄에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티타늄이 뼈에 염증을 일으키지 않고 뼈의 조직에 구조적으로 결합하는 현상을 골유착 혹은 골융합 현상이라고 부른다. 나노 티타늄의 체내 이식은 FDA(미 식품의약국)의 승인까지 다 끝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뼈와 금속의 탄성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뼈와 금속은 근본적으로 다른 물질이기 때문에 탄성도 다르다. 서로 다른 두 물질이 결합된 상태에서 외부의 힘이 가해지면 탄성계수가 높은 물질에 대부분의 힘이 가해지고, 탄성계수가 낮은 물질에는 힘의 거의 전달되지 않는다. 뼈와 티타늄이 결합된 상태라면, 외부의 힘은 티타늄이 거의 다 받는다. 문제는 외부의 자극이 주어지지 않으면 뼈가 약해진다는 점이다. 결국 뼈의 두께와 무게가 줄어들면 약해진 뼈에 맞는 금속으로 다시 시술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현상을 응력차폐라고 하는데, 이런 문제도 어느 정도 극복되었다.

우리나라 연구팀이 개발한 새로운 티타늄 합금 TNZ40은 기존에 쓰이던 티타늄 합금보다 탄성을 낮춰 사람 뼈의 탄성과 비슷한 수준이다. 게다가 새로운 합금에 사용된 티타늄과 나이오비움(Nb), 지르코늄(Zr)은 생체친화적인 원소들이다. 저탄성 티타늄 합금인 TNZ40은 인공 뼈뿐 아니라 치아 임플란트, 수술용 기구 등으로 그 활용도를 점차 높이고 있다.

자, 티타늄의 용도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분야를 살펴보았다. 하나는 가장 만화 같은 현실을 만들어 낼 외골격 로봇, 다른 하나는 기술 개발과 보급이 가장 시급한 의료 분야다. 요컨대, 가벼움과 고강도, 우수한 내식성과 무독성을 요구하는 곳에는 거의 모든 곳에 티타늄이 쓰이고 있다고 보면 대략 맞다.

티타늄으로 건물을 짓다
‘빌바오 효과’라는 말이 있다. 한 지역의 건축물이 랜드마크 역할을 하면서 그 지역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뜻한다. 빌바오는 스페인의 소도시이고, 빌바오를 바꾼 건축물은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제철과 조선업으로 번성했던 빌바오는 1980년대 불황을 겪으면서 다른 사회적인 요인까지 겹쳐 실업률이 30%에 달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문화 사업을 통한 경제 부흥이었고, 그 사업 중 하나로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었다.

▲ ⓒwikipedia.org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 전시 컨텐츠뿐 아니라 건물 자체가 예술품이다. 0.5mm 두께의 티타늄 패널 3만3천장으로 외장을 처리해 빛에 따라 시시각각 색상이 달라지는 까닭에 ‘20세기 건축의 아방가르드’라고 불린다. 덕분에 빌바오는 매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는 관광 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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