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나 동네 어른들에게서 ‘마실 다녀온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때는 그냥 어디 놀러 갔다 온다는 뜻으로만 알았다. 1월 겨울 산만 생각하면서 골머리를 썩이다가 문득 바다가 떠올랐다. 산과 숲으로만 찾아 다녔던 지난 백패킹에서 잠시 숨도 돌릴 겸 탁 트인 바다와 해변이 있는 곳으로 놀러 다녀오고픈 심정으로 변산 마실길을 찾았다.
▲ 항구에는 정박해있는 배들만 가득할 뿐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
다채로운 풍경의 마실길
흔히들 겨울 바다하면 물놀이는커녕, 찾는 이 없이 황량한 해변에 바닷바람만 매섭게 몰아치는 모습부터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가 변산 격포항을 찾은 날에도 바람은 하루 종일 인정사정없이 불어댔고, 눈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했으며 항구에 정박해 있는 빈 배보다도 더 적은 수의 사람들이 바닷가를 찾았다.
그렇다고 해서 겨울 바다에 아무런 낭만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밤새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고, 해변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온전히 마주할 수만 있다면 겨울 바다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겨 준다.
▲ 변산 마실길은 해안코스와 내륙코스를 포함 총 14코스로 이루어 졌다. |
이번 백패킹에는 2개월 차의 신입사원 한승영씨가 동행했다. 그녀는 입사 이전까지 캠핑 경험도 전무하고 더군다나 백패킹은 ‘생초짜’에 불과하다. 그런 그녀를 한겨울, 그것도 거센 바닷바람을 맞히면서 고생시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겨울 산행이 아닌 것만으로도 나름 배려 아닌 배려를 할 줄 아는 선배라 자위하며 이른 아침 변산으로 떠났다.
점심 무렵 도착한 격포항에는 때마침 옅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출발 전 인근 식당에서 꽃게탕과 갑오징어 무침으로 든든히 속을 채우고 격포항을 기점으로 솔섬까지 이어지는 5km 길이의 해넘이 솔섬길을 걷기 시작했다. 해안 구간이라고 해서 처음엔 바다만 보이는 해안 길을 떠올렸지만, 첫 시작은 산행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넘고 소나무 숲을 걷다보면, 얼마 안 가 다시 바다가 펼쳐지는 해안길이 이어진다. 물살이 부서지는 검은 바위 위에 올라 사진을 찍기도 하고 밀물 때에 맞춰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에서 잠시 장난을 치기도 하면서 두 시간여 걷고 나니 솔섬이 곧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 바다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 물론 수영은 할 줄 모른다. |
▲ 다채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점이 변산 마실길의 특징이다. |
무인도인 솔섬은 섬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작은 크기의 외로운 바위섬이지만, 그 위에 자라난 소나무에 걸리는 붉은 노을이 만들어내는 낙조는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마음 같아선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구름 낀 하늘은 이번에도 우리에게 일몰을 허락할 것 같지 않았다. 서둘러 아쉬운 마음을 정리하고 야영지인 모항해수욕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활한 바다의 모습
솔섬을 지나쳐 모항해수욕장까지 1시간여 정도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에서는 시종일관 광활한 바다의 풍경을 눈앞에서 만날 수 있다. 야간 조업을 나가는 어선이 파도를 거슬러 깊은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설치된 데크를 걷던 승영씨는 겨울 바다는 처음이라며 거센 바닷바람에 고개를 돌리는 와중에도 연신 풍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팔각정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항해수욕장에 도착했다.
▲ 하늘이 어느새 맑아졌지만, 금세 구름이 밀려온다. |
거침없이 불던 바람이 더 거세지고 있었다. 이제 막 다섯 시가 됐지만, 구름 사이로 숨바꼭질 하는 태양이 모습을 감추기까지도 얼마 남지 않은 듯 했다. 우리는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기 전에 서둘러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텐트 설치를 시작했다.
부안 마실길 교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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