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방구 일본기행 | 일본 홋카이도
오도방구 일본기행 | 일본 홋카이도
  • 글 사진 그림 김종한 | 협찬 BMWKJ모토라드
  • 승인 2013.12.2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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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별이 쏟아지는 ‘부부폭포’
타이세츠산~미쿠니 고개~아바시리~에리모미사키

타이세츠산(2290m)은 도카치산과 함께 홋카이도 정중앙에 위치한 연봉 중에서도 맏형 격으로 우뚝 솟아있다. 아사히가와를 지나 소운쿄 협곡에 접어들면 주상절리대가 병풍처럼 연속되는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협곡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절벽 사이로 은하·유성폭포가 비경을 드러낸다. 은하·유성폭포는 ‘부부폭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마치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는 듯 아름다운 물줄기와 포말을 자랑한다.

▲ 미쿠니 고개에 걸린 교량 위를 바이크 투어팀이 지난다.

제각기 자태를 뽐내는 칼데라 호수들
소운쿄와 타이세츠산을 지나 미쿠니고개에 오른다. 고갯마루 전망대에 오르면 눈길 닿는 곳까지 낙엽송과 자작나무 수림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 사이로 난 한줄기 길을 달리면 누카비라 호수와 타이세츠산 일대에서 가장 큰 자연호(칼데라)인 시카리베츠 호수를 만날 수 있다. 신일본8경의 하나인 가리카치 고갯길 전망대에서는 오비히로 평원을 일망할 수 있다. 거대한 오비히로 평원은 농경지로 개척돼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아로새겨진 무늬가 인상적이다. 인간의 끈기와 집념이 낳은 무늬라고 할까? 오비히로에서 방향을 동북쪽으로 잡고 마리모국도를 따라 아바시리와 시레토고 반도로 향한다.

▲ 타이세츠산의 소운쿄 협곡에는 주상절리대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 오비히로 가리카치 고개 근처 계곡에서 솟는 사슴온천.

마리모는 아칸 호수에 자라는 동글동글한 수중생명체다. 백 년이 걸려서 탁구공 크기까지 자란다는 천연기념물이다. 이어서 만난 쿳샤로 호수는 주변이 온통 온천지대다. 호숫가 모래를 파면 그 자리에서 온천수가 솟는다고도 한다. 막부시기에 수출용 유황을 캐냈다는 유황산은 여전히 희뿌연 유황연무를 뿜어내고 있다. 언덕 곳곳에 끓어오른 노란 유황 돔이 보인다. 마슈 호수는 물 맑기가 세계 2위라고 한다. 하얀 판지를 넣어 어느 깊이까지 보이는지 테스트를 해서 얻은 결과라고 하는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거대한 거울 면처럼 빛난다.

▲ 니쇼 고개에서 본 오비히로 대평원과 농경지대.

아바시리는 홋카이도 북동 지역의 최대 도시다. 겨울철에는 오오츠크해 유빙 관광객이 많이 찾고 텐토산에 있는 아바시리 감옥 유적은 많은 소설과 영화의 무대로 유명하다. 1890년에 세워져 1980년대까지 수감시설 기능을 했던 아바시리 감옥은 탈출이 불가능한 최악의 감옥이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당시의 메이지 정부는 남진정책을 펴는 러시아를 막기 위해 수형자들을 각종 노역에 동원했는데, 아바시리와 아사히가와를 잇는 도로가 이들에 의해 건설됐다고 한다.

아바시리 텐토잔 전망대에서 바라본 긴 해안선 경치도 신일본 8경의 하나라고 하는데, 흐린 날씨 탓인지 그리 감흥은 없었다. 겨울철에 유빙이 바다를 가득 채운 경치가 진면목이라고 한다. 시레토고 반도 라우스산 고갯길을 오르기 직전부터 비가 내리더니 짙은 비구름에 휩싸여 앞을 분간하기 어렵다. 이 길이 워낙 풍광이 좋다고 알려진 곳이어서 기대하고 올랐건만, 이래서야 무엇 하나 보기 어렵게 됐다. 언젠가 다시 이 고개에 오를 일이 있을까? 그래도 갈 길을 가야 하는 게 여행자다.

▲ 마슈 호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맑은 물빛을 자랑한다.

▲ 아칸 호수 옆 아이누민속촌 정문을 장식한 부엉이 조각.

아쉬움을 떨어내고 내리막길을 달리는데 뭔가 누런 물체가 길옆 수풀에서 움직이는 걸 발견했다. 여우였다. 강렬한 야생의 눈빛이 살아있는 야생여우 두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어미와 새끼 두 마리다. 비에 젖어 털이 홀쭉해서인지 무척 야위어 보였다. 먹을 걸 달라는 눈치였다. 이 길목을 지나는 여행객에게 먹을 걸 꽤 받아먹은 모양이다. 멈춰 선 오토바이 곁으로 다가오지만 나눠 줄 음식이 없었다. 녀석들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바라보다가 수확이 없을 걸 눈치챘는지 곧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 시카리베츠 호수로 가는 산길 주변에 조그만 칼데라호가 많다

▲ 이오잔(유황산)은 막부 말기에 수출용 유황을 채굴하던 곳이다.

바람언덕 에리모미사키
홋카이도 동쪽 끝 네무로를 거쳐서 광활한 쿠시로 습지를 지난다. 도카치 강 하구를 지나자 히라오부터 거친 해안절벽과 단애가 연속되는 바다가 시작된다. 여기부터 에리모미사키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황금도로’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경치가 아름다워서? 아니다. 이 도로를 만드는데 워낙 많은 돈이 들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알고 보면 참 멋없는 이름이어서 차라리 황금의 경치를 가진 해안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 쿠시로 근처 람사르조약에 등재된 습원(습지)을 지나는 비포장길.

▲ 바람의 땅 에리모미사키의 암초에 걸려 난파선이 많이 발생했다.

▲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는 황금도로는 비싼 건설비로 인해 붙은 이름이다.

▲ 거대한 암벽 사이로 흐르는 은하폭포는 바로 옆 유성폭포와 함께 부부폭포로 불린다.
에리모미사키는 아이누 말의 변형으로 ‘튀어나온 머리’를 뜻한다. 실제로 에리모미사키는 태평양을 향해 뾰족하게 뻗친 모양을 하고 있다. 하코다테가 있는 오시마 반도를 제외하면 상당히 남쪽이고 땅끝과 같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주변이 온통 절벽이어서 언제나 거센 바람이 부는 곳이라 ‘바람의 땅’으로 부르기도 한다. 절벽 위 바람박물관의 풍동에서 에리모의 가장 센 바람을 경험해 본다. 마치 태풍을 연상시키는 강풍에 몸이 날려갈 것만 같다. 미사키곶의 연장 선상인 바다에 뾰족하게 솟은 암초들은 바다표범이 쉬는 평화로운 장소다. 하지만 바람이 거센 날이면 근처를 지나던 배들이 여기에 걸려서 수 없이 난파되곤 한다. 바닷가에는 난파로 희생된 이들의 넋을 달래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에리모미사키를 벗어나 도마코마이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달린다. 도마코마이에서 삿포로 쪽으로 방향을 틀어 신지도세로 향한다. 처음 출발했던 그 자리로 돌아오니 이미 사방이 어두컴컴하다. 일주일간 비교적 인적이 드문 곳을 돌아다녔던 탓인지 빌딩의 불빛이 반갑게 느껴진다. 다시 사람 사는 세상으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모든 출발이 도착을 향해 있는 것처럼, 여행의 마무리는 새로운 여행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 마음 한구석은 벌써 새로운 ‘떠남’을 모색하고 있음을 느꼈다.
 
일본 혼슈~홋카이도 항로
혼슈와 홋카이도를 잇는 항로는 여럿 있다. 혼슈 최북단 오오마와 홋카이도 최남단 하코다테를 잇는 항로가 지척이고 대략 2시간 걸린다. 아오모리와 하코다테를 잇는 보통의 카페리가 4시간쯤, 고속 카페리가 2시간 걸린다. 그 밖에 마이츠루·니가타·아키다에서 오타루로 향하는 항로, 나고야·센다이에서 도마코마이로 향하는 항로 등이 있다. 

▲ 아오모리와 하코다테를 잇는 보통 카페리는 4시간, 고속 카페리는 2시간 걸린다.

아바시리 감옥 박물관과 니포포
1890년에 세워진 아바시리 감옥은 1984년에 폐쇄됐지만 현재는 감옥 박물관으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메이지 시대에 수형자들은 가혹한 노역에 동원됐는데, 아사히가와로 이어지는 중앙도로 건설에 투입된 1115명 중 211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수형자들은 아바시리의 상징인 ‘니포포’ 목각인형 제품을 조각하기도 했는데 저마다의 사연처럼 표정이 다 달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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