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손자병법 | 무시아불공 無恃兒不攻
캠핑 손자병법 | 무시아불공 無恃兒不攻
  • 글 서승범 기자 | 일러스트 김해진
  • 승인 2013.12.2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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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워야 아이가 보인다

준비하되, 미처 대비하지 못한 틈은 임기응변으로 메우라는 것이 핵심이다. 준비는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임기응변이 중요하다. 적어도 아이와 캠핑을 떠나는 아빠라면, 준비보다 임기응변이 중요하고, 임기응변의 골자는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마음을 비우는 일이 어렵다면 쉬운 것부터 실천해보자. 첫 단계, 아이의 시간을 방해하지 말라.

무시아불공(無恃兒不攻). 지난호에 등장한 손자 선생의 ‘무시기불공(無恃其不攻)’을 살짝 비틀었다. ‘적이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었으니, ‘무시아불공’은 ‘아이가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는 얘기다.

솔직히 말해서, 아이와 함께 캠핑장에 나가면 속 터질 일이 태반이다. 가라면 오고, 오라면 가는 것이 아이들이다. 깨끗하게 씻겨 놓으면 어느 순간 나가서 흙장난하고 있고, 비 온다고 안에 있으라 하면 비 맞고 뛰어다니는 건 예삿일, 정신줄 놓고 놀다가 밥을 먹이면 입 안 가득 고기를 물고 잠드는 일도 다반사다. 사실, 집안에서 생활할 때처럼 ‘깨끗하고 예쁘고 고분고분한’ 아이의 모습을 캠핑장에서도 기대하는 것은 애시당초 어리석은 짓이다. 옷이 조금이라도 더러워지면 곧바로 옷을 갈아입히는 이들은 이제 막 캠핑에 입문했거나, 아주 집착이 강하거나 둘 중 하나다. 나머지는 곧 적응 혹은 포기한다. ‘우리 애가 이렇게 꾀죄죄하다니’ 류의 탄식은 얼마 못 가 ‘애들이 원래 그렇지 뭐’로 바뀐다. 솔직히 저 속 터지는 일들은 우리 아이들만의 ‘행각’은 아니다. 그걸 나무라는 어른들도 그렇게 크지 않았던가.

아이들이 캠핑장에 와서 제일 먼저 하는 게 뭘까? 뜀박질이다. 마치 달리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처럼 뛰어다닌다. 행여라도 ‘아이가 뛰어봐야 얼마나 뛰겠어’라 생각하고 “아빠 저랑 시합해요”를 덥석 받아 삼키면 안 된다. 그 말이 낚싯바늘이 되어 입에서 단내 날 때까지 뛰어야 한다. 아이들은 단거리를 뛰는 속도로 장거리를 뛴다. 중간에 잠시 숨을 돌리기도 하지만 지금 뛰지 못하면 다시 뛰지 못할 것처럼 캠핑장의 운동장을 휘젓고 다닌다. 그만 뛰라고 해도 소용없다.

그때 그 신난 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각해보자. 왜 저렇게 뛸까? 간단하다. 평소에 충분히 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집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뛰지 마”다. 사지에 기운이 뻗쳐 잠시라도 가만두면 몸이 근질거리는데 뛰지 말라는 말을 짧게는 1주일 길게는 몇 주 혹은 몇 달 듣다가 운동장에 섰으니 뛸 수밖에. 모처럼 밖에 나와도 뛰지 않는 아이를 오히려 더 걱정해야 옳다. 물론 미친 듯한 뜀박질도 캠핑을 자주 다니면 한풀 꺾인다. 힘들여 뛰지 않아도 조만간 또 뛸 기회가 생긴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니까.

따지고 보면 다른 ‘아이의 공격’도 마찬가지다. 손만 씻어주면 흙을 만져 흙강아지가 되는 건 평소 흙을 만질 곳이 없기 때문이고, 비만 오면 낄낄대며 빗속을 뛰어다니는 것 역시 평소 비를 맞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손은 그저 밥 먹기 전에 닦아주면 되고 비 맞고 나면 마른 옷으로 갈아입혀 주면 그만이다.

그만 놀고 밥 먹으란 얘기도, 늦었으니 자고 내일 놀자는 얘기도 잠시 접어두자. 배가 고프거나 졸린 것은, 놀다보면 깜빡할 수도 있으나 오래 잊을 수는 없는 법이다. 알아서 밥 달라고 할 것이고, 알아서 잘 것이다. 밥상 치운 지 얼마 안 되었다고 성질을 내거나, ‘치카치카’도 안 하고 잠들었다고 아이를 깨우는 건, 어렵겠지만, 참아보자.

아이와 함께 떠나는 캠핑에서 준비할 것은 많다. 여벌의 옷과 씻기고 나서 바를 로션,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여기에 요즘 같은 겨울이라면 아이 짐만 해도 한가득이다. 하지만 말이다, 가장 중요한 준비는 마음의 준비고, 마음을 준비한다는 건 곧 마음을 비우는 것임을 명심하자. 이렇게 말하면 아이를 위해 뭔가 대단한 수양을 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냥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놀도록 놓아두면 된다. 보호자가 할 몫은 다치지 않도록 최소한의 보호만 제공하면 된다. 그리고 어른의 캠핑을 즐기면 된다. 아이가 아이의 캠핑을 나름대로 즐길 수 있도록. 그러니 ‘무시아불공’에서 말했던 아이의 ‘공격’은 아이의 ‘놀이’인 셈이다. 보호자 혹은 관리의 눈으로 보면 간섭이고 친구의 눈으로 보면 놀이다. 아이에게는 아이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의 시간을 방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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