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캠핑의 품격 | 페라리 FF
오토캠핑의 품격 | 페라리 FF
  • 글 서승범 기자 사진 김태우 기자, STUDIO UP
  • 승인 2013.09.2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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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자, 녀석은 야생마였다

▲ 페라리라면 좀더 먼 곳으로 떠났어야 했다. 포천은 너무 가깝잖아.

뭐든 마찬가지다. 어떤 경지가 되면 예술이다. 물론 어지간해서는 안 된다. 공을 차려면 펠레처럼 차야, 산을 타려면 메스너 정도는 타야, 농구를 하려면 조던 정도는 되어야 예술이라 한다. 자동차 바닥도 마찬가지다. 바퀴를 굴리려면 페라리 정도는 굴려야 예술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냐만, 이른바 수퍼카의 종자는 따로 있다. 애시당초, 페라리는 모터스포츠의 DNA를 가지고 태어났다. 엔초 페라리는 F1의 드라이버였다. 그러다 F1 머신을 직접 만들기 위해 회사를 만든 게 페라리다. 그 흔적, 계기판에 남아 있다. 속도계 따위는 구석으로 밀어버리고 RPM 게이지가 한복판에 크게 자리 잡았다.

▲ 캠핑장의 밤. ‘스트롱백’ 의자는 말 그대로 등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 페라리 FF의 간지에 어울리는 텐트로 힐레베르그 알락을 골랐다. 쉽지만 단단하다.
▲ 밖에서 보면 ‘저기서 2명이 어찌 자나’ 싶지만, 들어가 보면 공간 구조가 좋다.

레이싱에서 속도계는 중요하지 않다. 무조건 빨라야 한다. 선수들은 변속타이밍을 잡기 위해 RPM 게이지만 보면서 달렸다. 특히 페라리가 등장하던 모터스포츠 초창기에는, 엔진이 오늘날처럼 튼튼하지 못해 엔진회전수가 더욱 중요했다. 까딱 잘못하면 엔진이 터졌으니까.

페라리 FF를 만났다. 접선 장소는 포천의 오가리캠핑장이었다. 궂은 날씨가 갤 즈음, 입구 쪽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고, 이어 은색의 늘씬한 페라리 FF가 등장했다. 캠핑장에 나타난 페라리, 꽤 근사한 조합이었다.

▲ 불이 좋을 땐 사진을 찍고 숯이 좋을 땐 고기를 굽는다.

▲ 포천 오가리야영장 들어가는 길의 동굴. 길은 비포장이었고 날은 궂었으나 중요치 않았다.

매끈한 몸, 끓는 피
정면에서 보면 땅바닥에 붙어서 오는 것처럼 저돌적이지만 지나고 보면 엉덩이의 볼륨이 상당하다. 매니아들은 기존의 페라리와 다른 모습이 낯설고 실망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어색한 느낌은 없다. 넉넉한 승차공간과 적재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명 ‘페라리다움’, 시쳇말로 ‘간지’였을 것이다. 간지는 충분하다.

생김새의 간지도 중요하지만, 페라리의 간지는 달리는 능력에서 나온다. 본네트를 열면 세로로 길게 자리 잡은 빨간 엔진이 보인다. 자그마치 12기통이다. 액셀러레이터를 꾹 밟을 때 이 대식가가 내는 힘은 660마력이다. 차의 무게는 고작 1880kg. 참고로 국산 중형차가 1500kg을 조금 넘는다. 덕분에 최고속도는 335km/h,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는 3.7초가 걸린다. 취재는 <톱기어>(TopGear)와 공동으로 진행했다. 페라리를 몰고 캠핑장에 도착한 김준선 기자는 최고출력 660마력 혹은 최대토크 70kg·m라는 숫자에 대해 폭발적이라고 했다. 단순한 힘이 아니라 몸이 파악할 수 있는 것과 파악할 수 없는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폭발적이라 했다.

▲ 후련하게 달려보진 못했지만, 페라리 FF의 힘과 매력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 캠핑장의 밤. 페라리는 잠시 잊고.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페라리 FF에는 곳곳에 페라리의 휘장이 새겨져 있다. 노란 바탕에 검은 색 말. 꼬리 세우고 앞발을 치켜든 모양새가 딱 야생마다. 이 말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 조종사 프란체스코 바라카가 자신의 전투기에 그렸던 그림이다. 전쟁터에서 하늘을 누비던 말은 이후 페라리의 요청으로 페라리의 심볼로 사용되었다. 이제는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며, 순간순간 끓어오르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고 도로 안팎을 가리지 않고 질주하고 있다. 심지어 캠핑장에서도.

▲ 계기판. 달릴 땐 RPM 바늘이 요동친다.

▲ 뒷자리를 위한 차는 아니나, 뒷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실내는 제법 곱상하다.

페라리 포, 판타스틱 포
‘FF’는 ‘페라리 포(four)’를 줄인 말로, 4인승과 4륜구동을 뜻한다. 굳이 4인승과 4륜구동을 이름에까지 집어넣은 이유는 그만큼 새롭다는, 신경을 많이 썼다는 얘기다. 대개의 스포츠카 뒷자리는 좁고 낮아 불편하다. 타는 재미가 아니라 모는 재미니까 뒷자리까지 신경을 쓰지 못한다. 그래서 아예 뒷자리를 없애버리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2명만 탈 수 있는 차는 아무래도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고급 스포츠카 브랜드도 4인승 모델을 만든다. 페라리 FF의 뒷자리는 좀 특별하다. 앞좌석보다 조금 높다. 게다가 지붕이 앞자리 위에서 뚝 떨어지지 않아 공간도 제법 넉넉한 편이다. 덕분에 트렁크 공간도 늘었고, 그 덕에 페라리로 캠핑을 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트렁크 용량은 450리터로 소나타, K5 수준이고, 뒷자리를 접으면 800리터로 늘어나 어지간한 오토캠핑도 즐길 수 있다.

▲ 동그란 테일 램프는 페라리의 유전자. 그 아래 에어벤트는 첨단기술의 흔적.

▲ 시승을 마친 후 어렵게 구해 책상에 둔 레플리카. 페라리는 레드지.

페라리의 4륜은 좀더 특별하다. 페라리 FF는 페라리가 처음 만든 4륜구동 차다. 자동차 메이커들은 저마다 다른 4륜구동 시스템을 개발해 고유한 이름으로 부른다. 벤츠는 4매틱, 아우디는 콰트로라 하는데, 페라리는 ‘4RM’이라 부른다. ‘4Ruote Motrici’, 이태리어로 ‘4륜구동’이다. 다른 4륜구동 시스템과 다른 건 앞바퀴와 뒷바퀴가 서로 연결되지 않고 서로 다른 축으로 엔진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이는 앞과 뒤가 서로 독립적으로 작동하여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주행능력을 선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앞축에서는 PTU가, 뒷축에서는 E-Diff가 좌우 휠로 가는 힘을 조정한다. 결과적으로 4개의 바퀴를 서로 다른 힘으로 굴릴 수 있단 얘기다.

▲ 페라리에 실은 캠핑 장비들. 보여주려고 넣은 것이지, 빼곡하게 쌓은 게 아니다. 450리터이고, 뒷자리 접으면 800리터.

4RM이 가능한 건 페라리 FF의 엔진이 프론트 미드십이기 때문이다. 엔진이 앞바퀴보다 앞에 있으면 어떻게든 앞바퀴와 뒷바퀴가 연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페라리 FF는 앞바퀴와 앞좌석 사이에 있다. 덕분에 차는 더욱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다. 빠르고 안정적이라는 건 창과 방패를 모두 갖췄다는 뜻이다.

취재는 무사히 잘 마쳤고, 자세하게 들여다 볼 기회가 생애 한 번쯤 있을까 말까 한 페라리는 베이스의 배기음을 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큰 덩치와 아웃도어를 좋아하는 취향 탓에 납작한 차에는 마음이 잘 들뜨지 않았으나, 이 녀석은 조금 달랐다. 그렇다고 마음 속 장바구니에 담기에는 너무 아득하여 이탈리안 레드의 레플리카로 대신했다.

▲ 기어 변속은 버튼으로.

▲ 페라리 FF의 붉은 엔진. 12개 실린더, 660마력.

▲ 무려 20인치에 달하는 앞·뒤 타이어.

- 페라리 FF (FERRARI FF) 사양 -
· 엔진 : V12 6262cc
· 출력 : 660마력/8000rpm
· 토크: 70kg·m/6000rpm
· 트랜스미션 : 7단 자동
· 최고속도 : 시속 335km
· 구동방식 : 4RM (4륜구동)
· 연비 : 5.7km/ℓ
· 이산화탄소 배출량 : 360g/km
· 무게 : 1880kg
· 소비자가격 : 4억6천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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