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DOOR LIFE |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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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박성용 기자
  • 승인 2013.09.2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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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 ‘바다’…무작정 올라탔던 오징어배에서 만난 풍랑

바다는 내게 낭만과 레저의 대상만은 아니다. 물 공포증이나 잠수 공포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억센 삶이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교를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된 20대 초반, 나는 선배가 있는 군산으로 편도 차비만 들고 무작정 내려갔다. 그때 군산에는 나보다 먼저 내려간 왕고참 선배가 어선을 타고 있었다. 이미 뱃사람이 다 된 그 선배는 날 보더니 대뜸 같이 배에 타자고 권유했다. 나도 딱히 군산에서 할 일도 없고 또 호기심이 생겨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어느 허름한 술집의 백열전구 아래서 ‘어부결의’를 한 우리는 뱃사람들과 어울리며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해망동 부둣가를 누비고 다녔다. 우리가 탄 묵호수협 소속 오징어잡이 배는 제법 큰 목선이었다. 정비를 마치고 보급품을 실은 배는 서해의 공해상까지 나가 조업을 했다. 오징어잡이는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이었다. 캄캄한 바다 한복판에서 대낮 같은 집어등을 밝힌 분주한 갑판은 때론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어떤 날에는 바다가 장판처럼 잔잔해 뛰어들고픈 충동이 일기도 했다. 배에는 선장을 비롯 갑판장, 기관장, 조기장 등의 본선원과 우리 같은 뜨내기들 10여 명이 한데 뒤엉켜 지냈다.

바다에 나간 선원들은 부둣가에서 겪었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온몸으로 떠안았던 그들은 바다와 맞서며 때로는 순응하면서 성실한 가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뱃놈은 바다에 나가야 순해진다”는 부둣가에 떠돌던 속설이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웬만한 파도에도 굴하지 않은 그들은 “오징어가 더 잘 잡힌다”며 뱃머리에서 낚싯줄을 끌어올렸다. 풍랑이 심한 날에는 조업을 중단하고 방에 둘러앉아 기우뚱거리는 몸의 균형을 잡아가면서 점당 오징어 한 마리가 걸린 고스톱을 쳤다. 그러다 선장의 다급한 소리가 들리면 다들 뛰쳐나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폭풍우가 불어 닥친 바다는 그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았다. 해변에서 보았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집채만한 파도가 덮칠 때마다 목선치곤 꽤 컸던 배는 그야말로 일엽편주 신세였다. 잠시 파도가 잠잠해진 틈을 타서 바다에 띄었던 가빠와 닻을 걷어 올리고 한밤중에 가까운 섬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어청도와 가까워질수록 날씨는 개이고 바다는 평온을 되찾았다. 방파제에 배를 묶고 나자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땅 냄새가 그리웠던 우리는 선창가 술집으로 몰려가 젖은 몸을 말리며 밤새 술잔을 기울였다. 그때 낡은 유리문 너머로 교교한 달빛이 검푸른 바다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드뷔시의 <바다·La mer>는 ‘3개의 교향적 스케치’란 부제가 붙어 있다. 1곡 바다의 새벽부터 낮까지, 2곡 파도의 희롱, 3곡 바람과 바다의 대화 등 각 곡마다 표제가 달려 있다. 일본 화가의 판화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된 이 작품은 인상파 음악의 상징이기도 하다. 해가 떠오르는 새벽부터 낮까지 끊임없이 변하는 바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장난치는 파도, 천둥소리와 바람에 출렁이는 바다를 치밀한 관현악 기법으로 풀어내고 있다. 색채감과 농밀한 묘사에서 남다른 재주를 발휘한 카라얀의 음반에 손이 자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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