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packing | 문암길 ② 걷기
Backpacking | 문암길 ② 걷기
  • 글 서승범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3.09.23 09: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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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숲엔 온통 우리…호랑소~문암마을 삼거리 왕복 9.2km

▲ 문암길은 내내 이런 길들이 이어진다.

▲ 여름 트레킹과 캠핑의 필수품. 특히나 계곡 근처를 지난다면.
숲의 질은 나무가 결정하기도 하지만 사람이 좌우하기도 한다. 나무가 많을수록, 사람은 적을수록 좋은 숲이다. 인공림이 아니어서 숲이 자연스러우면 더 좋고, 날이 더우니 옆으로 계곡이라도 흐르면 바랄 것이 없겠다. 문암길이 이런 까다로운 식성을 만족시키는 성찬이었다. 오를 땐 보이지 않았던 산딸기가 내려올 땐 곳곳에 보였다.

남들 일할 때 캠핑이나 다닌다고, 남들 돈 들여 하는 캠핑을 돈 벌면서 한다고 부러워하는 지인들이 좀 있다. 남들 즐기는 캠핑, 일로 하는 속사정은 모를 거란 말은 잘 하지 않는다. 일로 한다지만, 남들 만큼은 즐기기 때문이다. 그런 지인들이 취재에 동행하면 즐거움은 배가 된다. 이번 취재가 그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반가웠고, 이들의 친구는 처음 만났지만 오래 알고 지낸 듯 편하고 유쾌했다. 젊고 예쁜 아가씨여서 설렌 건 딱히 아니다.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문암길에 들기 전에 살둔분교 캠핑장과 살둔산장을 보고 왔다. ‘반공방첩’ 글자가 내걸린 살둔분교는 마흔을 넘긴 동행들의 옛날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물길이 감기는 위치와 조붓한 툇마루가 매력적인 살둔산장은 ‘언젠가 한 번 묵어야지’ 다짐하기 위해서다. 살둔분교 운동장을 활용한 캠핑장은 물론이거니와 그 앞 공터까지 텐트들이 가득 들어찼다. 사람들은 아이들과 놀거나, 산책을 하거나, 요리를 하거나, 그냥 쉬거나, 자기만의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8월 초의 캠핑장 풍경이다. 그것도 한때 오지로 이름을 날린 적 있는 살둔마을의 풍경이다.

▲ 사업차 말레이시아에 살면서 가끔 들어와 소식을 전해주는 준용 형님.

▲ 산장에서 걸어 10분 거리인 살둔분교 캠핑장. 캠퍼들 사이에서 인기 좋은 명소 중 하나다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문암길에 접어들자 그 많던 사람들의 모습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예전엔 마을 사람들이 넘어 다니던 길이었으나, 이제는 거의 문암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이나 그 계곡에서 놀려는 이들만 찾는다. 캠핑을 위해 살둔마을을 찾은 이들은 문암길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분교와 산장에서 문암길 들머리를 물었으나 몇은 길을 잘 몰랐고, 몇은 이름도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었다. 알고 보니 다시 큰 길로 나와 다른 길로 들어야 한다. 어쨌거나, 덕분에 휴가의 절정에서 우리는 조용한 숲 속 트레킹을 만끽할 수 있었다. 적어도 당분간은 언제 찾아도 여유로운 걸음을 즐길 수 있는 코스로 남아 있을 것 같다.

문암길은 계곡과 나란히 간다. 비가 그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물줄기 소리가 시원하다. 물은 길에서 멀리 떨어져 저 아래 울창한 숲 어디선가 중저음으로 흐르다가 점점 톤을 올리며 다가와 바로 길 곁을 지나기도 한다. 정말로 구슬만 한 땀을 흘리면서 걷다가 만난 계곡을 그냥 지나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시원한 계곡에서 참방거린 이야기는 다음에서 하기로.

▲ 살둔산장. 산장도 이용할 수 있고, 마당에서는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살둔마을에서 문암마을로 이어지는 길은 그렇게 계곡과 벗하며 산 속 깊숙하게 파묻힌 느낌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그러다가 곧 삼거리를 만난다. 이정표에는 ‘←문바위길/↑밤바치길’이라고 적혀있다. 다리 건너 문바위길을 따르면 문암마을이 나오고, 밤바치길로 가면 ‘밤밭이’와 ‘밤밭이 고개’가 나오고 이를 넘으면 31번 국도와 만난다. 이 지역의 행정지명은 ‘홍천군 내면 율전리’다. 밤나무가 무지하게 많은 모양이다. 꽃은 이미 피었다 졌으니 얼마나 다행이더냐. 애써 문암마을을 찾지는 않았다. 돌아갈 길도 멀었지만, 다리 밑 계곡의 서늘함이 다리 위까지 전해졌기 때문이다.

▲ “오빠 손 잡아” / “안 잡아도 갈 수 있어요” / “아냐, 한번 잡아봐”
▲ 비가 온 다음이라 패인 땅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이런 풍경, 진짜 좋아요”
제이미의 말이다. 나이는 꽃띠 22살이었다. 우리나라 문화에 관심이 많아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우리말을 배우고 지금은 성균관대학교를 다니는 말레이시아 아가씨다. 제이미를 이번 여행을 권한 건 (송)준용 형님이다. 수 년 전 글 쓰는 모임에서 만나 읽으라는 책과 쓰라는 글은 멀리하고 글쓰기의 적이라는 술만 가까이 한 인연이다.

그 모임에 꼭 끼는 처자가 또 있었으니 (강)미영이다. 그래도 미영이는 우리와 달리 읽고 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 벌써 책을 3권이나 냈다. 어떤 건 중국과 대만에 번역되기도 했다. 아, 중국 인구가 얼마였던가….

▲ 멀리 능선이 보이고 아래로는 물소리가 울리는 곳.

▲ 뛸까 말까 고민하던 제이미는 준용 형님 덕에 물을 건넜다.

마지막 동행 역시 준용 형님 덕에 만난 연이다. 춘천과 홍천에서 ‘꽃미남 정육점’을 운영하는 선문식 형님이다. 모처럼 우리나라를 찾은 친한 동생 연락과 닿아 고기 좀 먹이겠다는 좋은 마음으로 만났는데, 글쎄 ‘혹’이 4(제이미, 미영, 취재팀 2명)개나 달렸던 것이다. 그는 ‘초심’을 잃지 않고 고기를 넉넉하게 준비하는 ‘호연지기’를 보여줬다.

제이미는 눈앞에 펼쳐진 첩첩의 산들과 그 사이로 굽이굽이 이어진 길, 동글동글한 돌멩이 위로 흐르는 맑은 물에 감탄을 거듭했다. 우리나라 구석구석에 있는 이런 길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마도 다시 오기는 힘들 것이니 잘 보고 느끼라는 말만 전했다. 누가 작가 아니랄까봐 미영이는 어떤 내용의 기사가 나올 것인지 궁금해 했다. 그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답했다. 알아야 대답하지. 취재의 미덕은 충실함과 즐거움 두 가지인데, 걸을 때는 즐거움이 우선이다.

▲ 문암길 곳곳에 열린 산딸기.
▲ 문암길은 TV 프로그램 ‘오 마이 텐트’에서 소개하면서 알려졌다.

선문식 형님은 우리가 트레킹을 하는 동안 캠핑장을 지켰다. 트레킹 마치고 오면 빈 사이트가 없을까봐 몇몇 캠핑장을 돌아보고 그 중 괜찮은 곳에 예약을 했더니 텐트를 치거나 짐을 두고 가라고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소중한 장비를 지키겠다고 나선 형님. 텐트로 돌아오니 약간 흥분 상태였다. 아마도 끼니를 놓친 허기가 중요한 원인이 아닐까 했는데, 아니었다. 옆 텐트의 부부가 삼겹살을 구우면서 단 한 번도 권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흥분한 것이었다. 자고로 밖에 나온 이의 인심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뜻이었다. 산 깊은 골이라 해는 곧 산 너머로 사라졌고, 우리는 곧 조용하고 신나는 파티를 시작했다.

▲ 삼거리 다리 밑의 휴식. 뒤로 보이는 낡은 다리는 옛날 다리고 사람들 위로 현재 사용하는 다리가 지난다.

행복한 다리 밑
문암길을 걸으면서 물놀이는 두 번 했다. 한 번은 물과 길이 어깨를 나란히 한 곳에서였다. 물놀이로 더위를 식히기에 안성맞춤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미 자리를 잡고 라면을 삶는 가족이 있었다. 두 번째 물놀이는 문암마을과 밤바치로 나뉘는 삼거리에서였다.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다리 밑 계곡에서 전해지는 서늘함에 눌러 앉아 쉬기로 했다. 계곡은 좁고 위로는 나무가 터널을 이뤘다. 물은 커다란 돌 틈을 거칠게 흐르면서 찬 기운을 전하고 있었다.

걸어온 만큼 되돌아가야 하니 날이 환하고 기운이 남아 있을 때 출발해야 했다. 다리 밑 계곡을 뒤로 하고 돌아서면서 휴가도 거르고 떠난 출장이지만 물놀이는 꽤 했으니 아쉬움은 없다고 생각했다. 올라갈 땐 보이지 않았던 산딸기가 곳곳에 보였다. 새콤달콤한 산딸기를 따먹으며 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오는 동안, 캠핑만 하면 이번 출장은 그대로 마무리될 거라 생각했다.

▲ 차들이 다닐 수는 있겠으나 다니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Tip 문암길

단명한 방송 덕에 더 유명해진 길
문암길은 강원도 홍천군 내면 율전리에 있는 길이다. 율전리는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누운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다. 팔과 다리가 심하게 짧긴 하다. 머리 꼭대기는 방태산에서 뻗어나온 개인산이고 허리띠 아래쯤에는 31번 국도가 지난다. 그리고 목걸이처럼 두른 것이 살둔계곡인데, 거기서 길게 몸통으로 가는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문암길은 이 길을 따라 이어진다. 계곡은 다시 실핏줄처럼 두 줄기로 갈라지는데, 하나는 문암마을로, 다른 하나는 31번 국도로 이어지는 밤밭이고개에서 끝난다. 이는 문암길을 따라 걸어들어온 여행객 기준이고, 물 입장에서 본다면 밤밭이고개와 문암마을에서 시작해 살둔계곡을 향해 흐르는 것이다.

길은 걷기에 딱 좋다. 폭은 차 한 대쯤 쉽게 다닐 수 있지만 승용차는 조금 조심스러운 비포장길이다. 때로는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때로는 숲이 멀어지며 푸른 하늘과 산의 마루금들이 겹쳐져 보이기도 한다. 한여름보다는 바람 선선한 9월 이후가 문암길을 제대로 즐기기에는 더 낫겠다. 문암길 초입에서 삼거리까지 5km 조금 넘는다. 입구에서 호랑소까지는 포장도로다. 삼거리에서 문암마을까지는 1.5km 정도다.
꽤 오래 전에 김제동이 진행하는 ‘오 마이 텐트’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1회가 마지막 회가 되어버렸지만, 캠핑을 컨셉으로 길을 걷고 캠핑을 하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었다. 그 첫 회에 찾은 길이 문암길이었다.

아직은 차가 다닐 수 있다. 두 대가 교행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아예 불가능하진 않다. 그래서 차를 가지고 이 계곡으로 피서를 하는 이들을 간혹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생업을 위해 마을을 들어가는 차가 아니라면 되도록 자제했으면 좋겠다.

교통
백패킹이라지만 살둔마을의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차를 이용해 살둔분교나 살둔산장까지 가서 캠핑을 즐기면서 문암길을 걷는 것이 현실적이다. 우리는 분교와 산장에 사이트를 예약하지 못해 미산계곡의 캠핑장을 이용했는데, 문암길 초입의 폭이 넓은 길가에 차를 대고 문암길을 걸었다.

먹을 것
미산계곡의 한 캠핑장에 자리를 잡고 캠핑장 주인장에게 괜찮은 맛집을 물었다. 식당을 겸한 캠핑장이어서 닭백숙 같은 요리가 된다는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 그가 소개한 식당은 미산식당이었다. 두부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집이다. 직접 만든 손두부를 이용한다 하니 기대를 하긴 했지만,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커다란 전골냄비에 하얀 두부만을 끓여 상에 내는데, 두부란 게 이런 맛이구나 싶었다. 내린천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하는 매운탕도 일품이라는데, 한여름이라 물고기가 잘 잡히지 않아 매운탕은 쉰다고 했다. 미산계곡 초입 합수모래유원지 근처에 있다. 033-463-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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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산 2017-04-13 14:02:23
지금은 도로가 세면트 포장으로 변하여 아쉽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