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 길|가거도
아름다운 우리 길|가거도
  • 글 사진 진우석 출판팀장
  • 승인 2013.09.0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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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서는 해무의 애무를 느껴라
가거분교~항리2구~독실산~백년등대~신선봉~가거분교 8km

▲ 섬등반도 정상에서 바라본 가거도. 해무가 섬을 애무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서남단 가거도는 멀다. 오죽했으면 조태일 시인이 '가고, 보이니까 가고, 보이니까 또 가서/마침내 살 만한 곳이라고' 했을까. 홍도가 여성적으로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면 가거도는 강건한 남성적인 기상이 넘친다. 가거도의 진수를 맛보려면 걸어야 한다. 바다에서 수시로 피어나는 해무를 친구 삼아 섬을 반 바퀴 돌며 가거도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빠져보자.

▲ 바다와 암릉이 어우러진 섬등반도 능선.

▲ 가거도 절경인 섬등반도. '가거도 공룡능선'으로 부르고 싶다.

가거도의 공룡능선 ‘섬등반도’
목포를 출항한 뉴골드스타호는 장판처럼 잔잔한 바다를 미끄러졌고, 그 안에서 편안하게 잘 잤다. 가거도 도착을 알리는 호들갑스러운 방송에 눈을 떴다.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 가거도를 의외로 쉽게 와 잠시 어리둥절했다.

운이 좋았다. 목포에서 가거도까지 항해 거리는 약 240km, 시간은 4시간 30분쯤 걸린다.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136km쯤 떨어져 있지만, 중간에 흑산도, 상태도, 중태도, 하태도, 만재도 등을 거치기에 더 멀다. 동해의 멀고 먼 섬, 울릉도는 포항에서 217km쯤 떨어져 있다. 따라서 가거도로 가는 뱃길이 우리나라 섬 중에서 가장 먼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떠나는 날, 서울의 여러 산악회가 뭉쳐 가거도행 배를 전세 냈다. 덕분에 그 배를 타고 2시간 30분 만에 가거도에 닿을 수 있었다.

▲ 분교 터에서 운 좋게 은하수가 흐르는 로맨틱한 밤을 맞았다.

▲ 가거도에서 조망이 가장 좋은 신선대.

섬에 내리자 구름이 무겁다. 섬의 높은 곳을 모두 삼키고 마을과 산비탈 후박나무를 야금야금 베어 물고 있다. 회룡산에서 내려온 바위가 바다에 잠겨 절경을 이룬다. 첫인상이 울릉도와 비슷한 거 같기도, 아닌 거 같기도 하다. 섬누리민박에서 나온 픽업트럭을 타고 섬의 북동쪽 항리2구로 이동했다. 급경사 언덕을 오르면 샛개재, 여기서 3.5km쯤 산비탈을 따르면 항리2구이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항리2구 마을과 섬등반도의 수려한 모습에 탄성이 터진다. 특히 바다를 향해 길게 드리워진 섬등반도는 ‘가거도 공룡능선’으로 불리는 것이 좋겠다.

▲ 너른 터에 자리한 가거도 백년등대.

가거도의 크기는 여의도 보다 조금 큰 9.18㎢. 해안선 길이가 22km로 제법 큰 섬이다. 예로부터 가가도(可佳島), 가가도(家假島) 등으로 불렸으며 ‘가히 살 만한 섬’이라는 뜻의 가거도(可居島)라고 부른 것은 1896년부터이다. 소흑산도(小黑山島)는 일제강점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섬 전체가 후박나무로 뒤덮여 있고, 대부분 해안은 단애 절벽을 이룬다. 가거도 걷기는 항리 2구를 베이스캠프 삼아 섬등반도, 독실산과 백년등대를 둘러보는 코스가 좋다.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옛 분교에 텐트를 쳤다. 교실은 귀신이 나올 듯 폐허 같다. 이항복 어린이와 책 읽은 소녀 동상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본다. 그 모습이 안쓰럽다. 텐트가 몇 동 들어선 운동장은 왠지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곳을 뛰어놀던 아이들의 온기가 남아서일까.

▲ 정상에서 바라본 독실산 능선. 능선 뒤로 구글도가 살짝 보인다.

섬누리 민박에서 장어국수로 여정의 피로를 씻고 우선 섬등반도에 오른다. 분교 왼쪽 옆으로 산길이 나 있다. 10분쯤 오르면 능선에 올라붙고 꿈길 같은 초원능선이 시작된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역동적이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공룡의 등을 타고 바다를 구경하는 느낌이다. 데크로 만든 전망대에서 한숨 돌리자 시나브로 날이 갠다. 섬을 휘감던 해무가 점점 사라지고, 그 너머 푸른 하늘이 슬슬 나타난다. 전망대에서 건너편 돌탑이 세워진 봉우리로 향한다. 급경사 비탈을 내려왔다가 오르면 정상이다. 돌탑 앞에서 시원하게 조망이 열린다. 가거도 최고봉이자 신안군 1004개 섬 중 가장 높은 독실산이 우뚝하고, 왼쪽으로 새들의 낙원인 구굴도가 아스라하다. 초지에 드러누워 하늘을 본다. 푸른 하늘 위로 휙휙 칼새 무리가 선을 긋는다.

▲ 분교 터의 낭만적인 캠프사이트.

▲ 가거도항에 내리면 회룡산에서 내려온 해안 절벽이 나타난다.

신안군 1004개 섬 중 가장 높은 독실산
섬등반도에서 내려와 저녁을 섬누리민박에서 먹었다. 주인장 아저씨가 해삼과 소라, 거북손을 잡았고 안주인은 맛난 요리를 내온다. 가거도에서 풍요로운 밥상을 받는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일몰을 만나러 간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은 일몰이다. 시나브로 붉은빛의 파편들이 바다에 떨어지며 위대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날 밤, 손바닥만 한 분교 운동장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우주처럼 넓었다. 은하수가 흐르고 별똥별이 지나는 별 밭을 우러르며 밤잠을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자 이슬에 젖은 타프에서 달팽이들이 길을 만들었다. 바다는 온통 해무 속에 잠겼다. 아침밥은 간단하게 누룽지를 끓여 먹고 캠프사이트의 아침 시간을 즐긴다. 해무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어느새 사라졌다가 다시 쳐다보면, 해무 속에 잠긴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바다 안개는 난생처음이다. 

▲ 항리2구의 돌담길. 돌 사이로 인동초가 피었다.

이날 걷기는 독실산과 백년등대를 찍고 항리 마을로 돌아오는 제법 먼 길이다. 들머리는 섬누리민박 바로 위에서 항리2구로 이어진 길이다. 길은 언덕 위의 폐가로 이어진다. 폐가는 섬등반도가 잘 보이는 기막힌 자리에 서 있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방에는 아이들 장난감이 나뒹굴고 있다.

폐가를 나오면 15가구쯤 살고 있는 마을길로 이어진다. 2구의 집들은 산비탈에 자리한 탓에 돌담을 쌓아 바람을 막았다.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길이 정겹다. 마을이 끝나면서 본격적인 산길로 이어진다. 길섶에 산딸기가 가득하다. 탐스러운 열매를 따 입에 넣으니 날치 알처럼 톡톡 터진다. 길은 컴컴한 후박나무 숲 사이로 이어진다. 예전 주민들은 독실산에 가득한 후박나무의 껍질을 벗겨 팔았다고 한다.

▲ 신안군 1004개 섬 중에서 가장 높은 독실산 정상은 그닥 볼품이 없다.

숲으로 들어서자 알 수 없는 곤충들이 흰 날개를 휘날리며 날아다닌다. 마치 반딧불이가 반짝반짝하는 것이 영락없는 숲의 요정처럼 보인다. 나뭇잎에 앉은 녀석들을 가만가만 다가가 그 실체를 살펴본다. 생김새는 다리가 긴 거미와 왕모기를 합쳐놓은 듯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애니메이션에는 숲의 요정들이 자주 등장한다. 아마도 이런 곤충에서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을까.

한동안 급하게 이어지던 산길은 완만한 산비탈을 타고 돈다. 바위에 낀 이끼, 나무에 붙은 콩자개, 고비와 관중들을 구경하며 걷다보면 이윽고 능선에 올라붙는다. 능선에서 좀 더 오르면 갈림길. 왼쪽이 백년등대, 오른쪽이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휘파람 불며 부드러운 능선을 15분쯤 걸으면 정상에 올라붙는다.
 
▲ 노을전망대에서 항리2구로 내려오는 멋진 길.

▲ 가거도에서 맞는 일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다.

1907년 불 밝힌 백년등대
손바닥만 한 정상 일대는 옹색하다. 정상 옆에 공군 레이더기지가 서 있다. 건물 계단에 서자 비로소 시원한 조망이 열린다. 동쪽으로 끝없는 망망대해에서 상태와 하태도, 만재도가 콩알만하게 보인다. 만재도 오른쪽 멀리 섬인 듯, 구름인 듯 아스라이 나타나는 것이 보여 정상 초소의 군인에게 물어보니 제주도라고 한다. 가거도에서 남서쪽으로 직선거리로 약 125km 떨어진 제주도를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정상에서 다시 갈림길로 돌아오는 길에 전망 좋은 곳 안내판이 있다. 그 길로 5분쯤 들어가면 암반이 펼쳐지며 시원하게 시야가 열린다. 이곳이 정상 역할을 하는 곳이다. 다시 능선을 타고 가면 곧 올라왔던 갈림길. 여기서 등대 방향으로 완만한 능선이 이어진다. 1시간쯤 숲길 능선을 걸으면 신선봉 갈림길. 이어지는 산길은 급경사다. 곤두박질치듯 내려서면 대밭 사이로 하얀 등대가 나타난다.

▲ 2011년 태풍 무이파가 지나면서 날아온 테트라포드.

가거도 백년등대는 1907년 12월에 처음 불을 밝혔다. 100년이 훌쩍 넘었지만 견고하게 지어져 물새는 틈이 없다. 마침 등대지기가 돌아와 등대 문을 열어준다. 탕탕 철계단을 타고 오르자 철새의 낙원인 구굴도와 거문여 등이 잘 보인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바다의 깊고 맑은 빛이 감동적이다.

등대에서 항리마을로 돌아가는 길은 독실산에서 내려온 길 만큼 힘들다. 해변에 경사가 워낙 심해 산의 8부 능선까지 올라와야하기 때문이다. 비지땀을 흘리며 거의 능선 가까이 오르면 신선봉 갈림길. 신선봉은 독실산에서 가장 조망이 좋다. 항리마을과 구굴도가 양쪽으로 펼쳐진다. 신선봉을 내려오면 비교적 쉬운 길이 이어진다. 조망 좋은 노을전망대는 지나면 향리2구 마을로 들어선다. 캠핑사이트로 돌아오자 다시 해무가 몰려와 산과 바다를 집어삼킨다.


가거도 걷기 가이드
2박 3일 일정이 적당하다. 첫날은 가거도에 들어가 섬등반도를 다녀온다. 분교 터(섬누리민박)~전망대~정상~분교 터 2.5km 1시간 30분 걸린다. 다음 날은 독실산과 백년등대 코스를 한 바퀴 돈다. 분교 터~항리2구~정상~백년등대~신선봉~항리2구~분교 터 8km 6시간쯤 걸린다. 마지막 날은 대리마을로 이동해 동개해변 등을 구경하고 가거도를 나온다.

교통
용산→목포 KTX가 05:20부터 1~2시간 간격으로 다니며 3시간 20분 걸린다. 센트럴시티터미널→목포 05:35~20:00 약 1시간 간격으로 있으며 4시간 소요된다. 심야우등 22:00 23:05 23:55 01:00. 목포연안여객터미널(061-240-2111)→가거도 오전 08:10 떠나며 4시간~4시간 30분 걸린다. 요금은 성인 6만1300원. 동양고속훼리(홀수날, 061-243-2111, www.ihongdo.co.kr), 남해고속(짝수날 ,061-244-9915, www.namhaegosok.co.kr). 가거도→목포 13:00. 배편은 전화로 운행 여부와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가거도에는 대중교통이 없다. 대개 민박집 트럭을 이용한다.

▲ 섬누리민박의 가거도식 백반.

숙식
섬누리민박(061-246-3418)이 좋다. 가거도 토박이 박재원씨가 서울 출신 아내와 세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 시설이 깔끔하고 무엇보다 안주인의 음식 솜씨가 일품이다. 가거도 전통음식인 장어국수, 삿갓조개된장국 백반 등 별미가 가득하다. 숙박 1박 4만원. 음식 7천~1만원. 캠핑사이트는 항리마을의 분교 터가 좋지만, 화장실과 식수대가 없다. 따라서 캠핑을 하더라도 편의시설이 부족하므로 섬누리민박을 함께 이용하는 것이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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