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 길|굴업도
아름다운 우리 길|굴업도
  • 글 사진 진우석 출판팀장
  • 승인 2013.07.0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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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이 깎고 모래가 키운 백패킹 천국
선착장~연평산~큰말해변~개머리언덕~큰말…8km

▲ 연평산 정상 직전 암반에서 바라본 굴업도 전경. 여기서 비로소 굴업도의 전체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두 섬이 목기미해변을 통해 연결된다.

“아저씨, 섬에서 가장 멋진 곳이 어딘가요?”
“없어요.”
“네?”
“다 좋아서 어디 하나를 꼽을 수 없어요.”
부웅~ 멀리 덕적도 가는 배가 들어오고 있다. 민박집 아저씨는 서둘러 선착장으로 나간다. 그의 말이 맞다. 굴업도는 어디 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리고 공간들은 퍼즐 조각처럼 맞춰져 하나의 굴업도를 그려내고 있었다. 이상하다. 굴업도를 떠나면서 아쉬움보다 뿌듯한 마음이 더 크다.

▲ 연평산에서 망원으로 당겨본 굴업도 앞바다. 바위섬이 많은 것이 마치 추자도 앞바다를 보는 것 같다.

▲ 선착장에서 큰말로 넘어가는 고개. 이곳에 생명의 숲에서 세운 굴업도 안내판이 서 있다.

굴업도 유일한 큰말 마을이 베이스캠프
굴업도는 여러 번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강원도의 오지마을 같다. 인천에서 덕적도, 덕적도에서 다시 배를 타야한다. 짝숫날에 배를 탔기에 덕적도에서 굴업도까지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덕분에 문갑도, 지도, 울도, 백아도를 두루 구경했다.

지도에서부터 갈매기들이 환영 비행이 시작됐고, 갈매기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옹말종말 크고 작은 섬들이 나타났다. 바위 섬 3개가 우뚝한 선단여가 보이기 시작하면 굴업도가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선단여 바위섬은 처음에는 3개, 그 다음은 2개, 마지막은 3개로 보인다. 그러면 굴업도가 코앞에 다가온다. 하룻밤을 보낼 개머리언덕을 유심히 바라보다 토끼섬을 스치면 드디어 굴업도를 밟는다.

▲ 드넓은 초원지대가 펼쳐지는 개머리언덕.

▲ 예전 민어 파시가 열렸던 목기미해변은 전봇대가 녹슬어간다.

선착장에는 장할머니 민박집의 아드님이 1톤 트럭을 가지고 나왔다. 우리는 트럭을 타고 굴업도 유일한 마을인 큰말로 이동한다. 10여 가구 주민이 사는 큰말은 평화로운 시골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넓은 큰말해변이 펼쳐진다. 마을 서쪽으로 이어진 산이 개머리언덕이다. 단란했던 마을 주민들이 다소 데면데면해진 것은 개발과 보존의 갈등이다. CJ그룹이 굴업도 땅을 사들이며 이간책을 썼던 것도 컸다.

바다가 코앞인 민박집에서 배를 채운다. 고사리, 해초, 나물 등 대부분 반찬은 섬에서 난 것들이다. 전라도 한정식이 부럽지 않은 소박하면서도 맛깔스런 백반이다. 배를 두드리며 본격적인 굴업도 구경을 나선다. 굴업도는 면적 1,710km2, 해안선 길이 13.9km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섬에서 도로는 선착장~큰말 1.3km가 전부다. 섬을 구경하려면 무조건 걸어야 하고,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면 그곳이 숙소다. 그야말로 백패킹의 천국이다. 굴업도 걷기는 큰말 반대편인 연평산으로 향하면서 목기미해변, 코끼리바위 등을 둘러보고 개머리언덕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내는 일정이다.

▲ 백아도를 지나면 선단여 뒤로 굴업도 전경이 펼쳐진다.
▲ 굴업도의 명물인 코끼리바위. 코끼리보다 새끼 매머드처럼 보인다.

마을을 벗어나자 야산에는 홀아비꽃대가 만개했다. 코트 깃처럼 세운 입 사이로 얼굴 내민 흰 꽃이 짙은 향기를 내뿜는다. 홀아비꽃대 옆에는 제주도에 많은 큰천남성이 듬성듬성 자리했다. 재미있는 것은 큰천남성은 난대식물이고 홀아비바람꽃은 한대식물이라는 점. 그만큼 생태계가 독특하다는 것이다.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목기미해변을 만난다. 해변으로 내려서자 광대한 백사장이 펼쳐진다. 서걱서걱 모랫길을 걷는다. 특이하게도 백사장에 낡은 전봇대가 박혀있다. 이 전봇대가 굴업도의 옛 영화를 말해주는 징표다.

▲ 개머리언덕에서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면, 하루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다.

파란만장한 굴업도의 역사
1920년대 초까지 굴업도는 해마다 백령도에 이어 민어 파시가 형성되던 어업전진기지였다. 그럴 때면 수천 명이 북적였고 부천경찰서에서 일본인 순사를 파견해 치안을 담당했을 정도였다. 바다에선 고기를 잡고, 육지에선 땅콩을 재배하고 소를 쳤다. 한국전쟁 뒤에도 적지 않은 주민이 살았지만, 1980년대 말부터 인구가 급격히 줄었다. 그렇게 잊혀진 섬이 세간에 관심을 끈 것은 1994년이다.

정부가 굴업도를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터로 선정했다. 주민이 적고 외진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굴업도 땅 속 화산 지질이 발견되면서 계획은 취소됐다. 그런데 굴업도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CJ그룹 C&I레저산업은 2006년 섬 전체를 깎아 골프장과 레저단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이 섬은 또다시 논란의 대상이 됐다. 굴업도는 2009년 제 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 환경부장관상 등을 받았고, 토끼섬의 해식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 고시됐다. 섬의 진가가 점점 드러나고 있지만, 골프장 개발과 천연기념물 지정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 연평산 가는 길의 언덕에서 본 목기미해변.

목기미해변에서 연평산으로 가는 길에서 옛 마을의 흔적을 더듬는다. 예전에는 몇 가구가 살았고 작은말로 불렀다. 마을 터는 물론 주변 전봇대는 모래가 덮고 있다. 목기미해변의 모래가 여기까지 쌓인 것이다. 사구에는 통보리사초를 비롯한 사구 식물이 뿌리를 내렸다. 언덕에 오르려면 그 풀을 밟아야 한다. 얼마 가지 않아 왼쪽 해안으로 내려선다. 굴업도의 명물 코끼리바위에 이곳에 숨어 있다. 다가서자 코끼리보다는 매머드처럼 보인다. 찰랑거리는 해안에서 영락없이 새끼 매머드가 코로 물을 마시고 있다.

다시 언덕으로 올라와 능선에 붙으면, 오른쪽 길이 덕물산, 왼쪽은 연평산으로 이어진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연평산 쪽으로 향한다. 아래에서 본 연평산 정상은 공룡바위라는 별칭처럼 암봉이 우람하다. 능선의 작은 봉우리를 넘자 빽빽한 소사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 여길 통과하면 널따란 바위 언덕에 닿으며 조망이 열린다. 비로소 굴업도 전경이 나타난다. 연평산과 덕물산이 하나의 섬을 이루고, 큰말이 있는 곳이 또 하나의 섬이다. 두 섬을 목기미해변이 연결해 준다. 섬의 여러 봉우리가 둥글둥글해 ‘사람이 엎드려 일하는 형상’이라는 굴업도 이름 유래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바위 언덕에서 가파른 비탈을 오르면 연평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돌탑이 서 있고 사방 조망이 거침없이 열린다. 하염없이 조망을 즐기다 보면, 굴업도의 전체 모습이 머리에 그려지면서 섬의 아름다움에 푹 빠지게 된다.

▲ 한대성 식물 홀아비꽃대와 난대성 식물 큰천남성이 굴업도에선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 연평산 직전의 빽빽한 소사나무 군락지.

연평산에서 큰말로 돌아와 야영을 위한 행장을 꾸린다. 해지기 전에 개머리언덕에 도착해 텐트를 쳐야 한다. 식수를 보충하고 큰말 민박집을 떠난다. 큰말해변 모래는 너무 부드러워 마치 밀가루를 밟은 기분이다. 백사장 오른쪽 끝에 개머리언덕으로 가는 길이 있다. 잠시 가파르던 산길은 이내 초원 능선을 만난다. 초원 아래에는 토종 흰색 민들레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갑자기 앞쪽에서 무언가 놀라 후다닥 뛰어간다. 꽃사슴 무리다. 꽃사슴들은 거리를 두고 더 이상 달아나지 않고 긴 목을 뽑고 쳐다본다. 누군지 궁금한 모양이다.

▲ 불 밝힌 텐트 너머로 시나브로 날이 밝아온다.

개머리언덕의 꽃사슴과 하룻밤
개머리언덕 일대에는 100여 마리의 꽃사슴과 염소가 우리를 탈출해 야생 생활을 즐기고 있다. 이런 동물들은 대부분 섬에서 생태계를 파괴하는 골칫덩이지만, 굴업도에선 왕은점표범나비와 애기뿔소똥구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이들이 억새 초원에 길을 만들고 키 큰 억새군락을 억제함으로써 햇빛이 잘 들게 돼 엉겅퀴, 금방망이나무 등 꿀이 많은 식물이 잘 자라게 해 준다.

꿈길 같은 초원길을 지나 봉우리를 넘으면 대망의 개머리언덕 정상이다. 서둘러 텐트를 치자 뉘엿뉘엿 해가 넘어간다. 잠시 손을 멈추고 수면에 잠기는 해를 배웅한다. 참으로 위대한 하루였다.

▲ 밭에서 캔 파를 다듬는 굴업도 할머니.

▲ 덕적도에서 굴업도로 가는 길에서 섬의 열병식을 감상한다.

새벽에 잠이 깼다. 하늘에는 별빛이 초롱초롱하고 바다에는 어화가 둥둥 떠 있다. 시나브로 검은 하늘에서는 보랏빛, 푸른빛이 춤춘다. 이윽고 동편이 검붉게 물들고 해가 솟구친다. 이것이 야영의 맛이다. 하루가 바뀌는 자연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 섬을 떠나는 배는 12시 20분. 시간은 넉넉하다. 물때가 안 맞아 큰말에서 가까운 토끼섬의 해식와 구경도 글렀다. 해식와는 문화재청이 ‘국내 어디서도 보기 힘든 해안지형의 백미’라고 평가한 곳이다.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수밖에 없다. 배를 타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는다. 그리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본다. 개머리언덕을 흐르는 촉촉한 봄바람이 오래 기억될 것이다. 

굴업도 길잡이
굴업도는 백패킹으로 즐기는 것이 정석이다. 큰말을 베이스캠프 삼는다. 우선 민박집에서 점심을 사 먹고 걷기를 시작한다. 먼저 큰말~목기미해변~덕물산~연평산~큰말 코스를 다녀온다. 시간이 없으면 덕물산을 생략한다. 큰말로 돌아와 야영 행장을 꾸려 개머리언덕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날, 큰말로 내려와 물때가 맞으면 토끼섬을 구경하고 굴업도를 떠난다.

교통
인천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탄다. 용산→동인천역 1호선 급행열차는 45분쯤 걸린다. 동인천역에서 대한서림 쪽 지하도로 나가 24번 버스를 타면 인천여객터미널까지 30분쯤 걸린다. 인천여객터미널→덕적도는 스마트호가 하루 2번 운행한다. 소요시간 1시간 10분. 덕적도→굴업도는 평일 1회, 주말 2회 운행한다. 운항 시간은 매월 다르다. 인터넷 홈피와 전화로 확인한다. 고려고속훼리(www.kefship.com, 1577-2891) 덕적도에서 굴업도행 배는 홀수일에 타야 배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짝수일은 여러 섬을 돌아서 간다. 왕복 요금은 인천-덕적도 4만6천원. 덕적도-굴업도 1만5천원. 인천-덕적도 구간은 현재 50% 할인 중이다.

숙식
큰말 바닷가 앞의 장할머니집(032-831-7833)과 굴업도민박(032-832-7100)이 좋다. 식사는 굴업도식의 담백한 백반을 맛볼 수 있다. 민박 5만원. 식사 1인 7천원. 텐트 사이트는 개머리언덕이 으뜸이다. 짐을 지고 올라가는 것이 힘들면, 큰말해변에 마련하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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