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한번 태어나면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사는 동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장수 비결을 찾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결과는 항상 신통하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현실을 벗어난 어떤 이상의 세계를 동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이상의 세계라고는 말할 수 없을지라도 저 멀리 파키스탄 북쪽의 카라코람 산맥 깊숙한 곳에 장수마을로 유명한 그럴듯한 곳이 있다기에 가슴 설레며 찾아간다. 그곳은 다름 아닌 한동안 전설처럼 들려왔던 훈자왕국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카라코람의 품속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훈자 마을들. 그곳을 찾아가는 데는 대단한 인내와 모험심이 필요하다. 현대 문명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심산유곡을 굽어 돌고 기어올라야 하는 험난한 교통 때문에 아직껏 누구에게도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고난의 길은 곧 비경을 찾아가는 길이다. 세계 최고의 비경들은 어디나 깊숙한 곳에 감추어져 있어 항상 아무에게나 그 모습을 노출시키지 않는다. 용기 있는 자에게만 그 비경을 즐길 수 있도록 특전을 부여한다. 그래서 더욱 값진 것일 게다.
그 비경을 헤치고 훈자의 중심 카리마바드에 도착할 때는 핑크빛 노을이 주변 산들을 포근히 감싸고 있었다. 카리마바드는 훈자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온 사방이 눈 덮인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마을 뒤쪽 산중턱에는 옛 훈자왕국의 왕궁이 있다. 그 아래 평평한 곳에는 쑥쑥 자란 포플러와 살구나무, 푸근한 밀밭이 천상낙원처럼 보인다.
이 훈자 지역은 1891년 영국의 침략이 있기 전까지 거의 바깥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이곳은 각기 독립된 여러 왕국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1974년 파키스탄에 병합되기 전까지도 계속해서 왕국으로 남아 있었다. 그 마지막 왕인 자말 칸의 초상은 아직껏 몇몇 가정에 의연하게 걸려있어 그 전설이 이어져 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훈자쿹’으로 불리는 이곳 훈자 사람들은 어딜 가나 대단히 친절하다. 이슬람의 한 분파인 ‘이스마일리’를 믿고 있으며 훈자 중심부 사람들은 ‘불루샤스키’라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고잘’이라고 말하는 위쪽의 훈자 사람들은 중앙아시아의 타지크 인들이 많아서 ‘와키’라는 언어를 사용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모자를 쓰고 있는 게 특징인데, 여자들은 수가 놓여있는 둥근 모양의 소형 모자를 살포시 눌러쓰고 그 위에 숄을 걸치고 다닌다. 하지만 다른 회교도들과는 달리 얼굴을 가리는 법은 없다. 그 모습이 모두가 왕녀처럼 화려해 보인다. 남자들은 둥글납작한, 마치 커다란 호떡 모양의 모자를 주로 쓰는데 그것은 그들의 주식인 ‘차파티’라는 빵처럼 생겼다.
진흙과 돌을 버무려 지은 집들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해 보인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구차하기 이를 데가 없는 누추한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장수마을로 명성을 떨쳐 왔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90세 이상이 현재 주민의 3%이고 80세 이상이 15%나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균 수명이 82세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주식은 우유, 치즈, 차파티(밀가루 빵) 안에 통밀을 넣은 것과 살구기름이다. 바로 이 살구기름이 좀 특이한 사항이다. 이 지역이 장수의 고장이라고 소문이 나자 각처에서 학자들이 몰려들어 장수의 원인을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첫째로 맑은 공기와 사회적 스트레스에서 해방을 들고, 둘째는 저지방 음식을 주식으로 하고 있는 점 그리고 셋째는 과일, 특히 살구를 많이 먹고 있다는데 있다. 요즈음은 여기에 하나 덧붙여 ‘훈자워터’라는 이들의 식수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카리마바드 바로 뒷산인 울타르피크는 해발 7000m가 넘는 고봉으로 카리마바드 사람들에게 정신적 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빙하에서 녹아내린 물이 마을의 유일한 식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은 모레인 지대를 지나 마을 앞에 도달하기 때문에 시멘트가 섞인 듯한 흙탕물이다. 도저히 그냥 마실 수 없어 보이는 이 물을 이곳 사람들은 거침없이 마셔대도 아무 탈이 없다. 아니 도리어 장수를 누리고 있다. 이곳에 온 어떤 여행자가 이 흙탕물을 호기심에 몇 모금 마시고 몇 날을 설사병으로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웃음을 자아낸다. 아무튼 이 흙탕물이 연구 대상이 되면서 ‘훈자워터’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카리마바드 뿐만 아니라 근처의 파수, 꿀밑 등 훈자 전 지역을 돌아다녀 봐도 살구, 사과, 호도 등의 과일이 풍부하다. 특히 살구는 건조시켜 사철 아무 때나 살은 살대로 먹고, 씨와 껍질은 연료로 쓴다. 씨는 땅콩이나 아몬드처럼 먹기도 하고 기름을 짜기도 해 그야말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과일이다. 어느 집을 방문해도 제일 먼저 내놓는 음식이 차와 말린 살구다. 마을 도처에 널려있는 살구나무들은 거의 고목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훈자 사람들이 장수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점차 평균 수명도 떨어져 이제 80세 이하에 머물러 있고 이제 훈자에서도 100세가 넘는 노인을 만나기가 수월치 않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점차 올라가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를 생각해 볼 때 아이러니한 일이다 “현대문명은 장수의 적인가!”라는 말이 오르내리고 있는 이 시대에 역시 장수는 자연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훈자가 장수마을인 동시에 낙원처럼 보이는 이유는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가 있다.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샹그릴라의 모델이 바로 이 훈자마을이었던 것이다. 소설 속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아주 기막힌 곳이 카리마바드 뒷산 높은 곳에 고고하게 서 있다. ‘발티트 성’이라 부르는 옛 훈자 왕궁이다. 400년 역사를 지니고 있는 이 왕궁은 발티스탄의 한 공주가 이곳으로 시집올 때 결혼 지참금으로 많은 석공, 목수, 공예가들을 데려와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너무 낡아 텅 비어 있는 상태이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왕족의 후손이 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이 흰색의 왕궁은 울타르피크의 정기를 받아 찬란히 빛나는 꿈의 세계처럼 신비로움을 자아내면서 지난날의 슬픈 전설을 떠오르게 한다.
옛날 티베트의 카이저 왕이 훈자를 점령한 후 ‘부블’이라는 훈자 공주에 반해 결혼하고 신혼의 단꿈에 빠져 지내다가 어느 날 꿈속에서 티베트가 다른 민족한테 침략 당하는 것을 보고는 본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떠나기 전 공주를 울타르피크 꼭대기에 밀 세 가마와 함께 올려놓고 1년에 한 톨씩만 먹으라고 일렀다. 그 밀이 다 떨어지고, 당나귀에 뿔이 돋아나고, 방앗돌에 수염이 자라나고, 강물이 거꾸로 흐를 때, 자기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고 떠났지만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공주의 울음만 남게 되어 그 애처로움이 울타르피크를 뒤흔들게 되었다. 지금도 간간이 그 울음소리가 눈사태를 일으킨다고 한다.
훈자 지역은 또한 과거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으로 수천 년의 세월을 두고 중국과 인도 등을 잇는 상인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특히 중국에서 건너오는 암염의 상권을 놓고 빚어졌던 숱한 얘기들이 전설처럼 전해 오고 있다. 지금은 카라코람 하이웨이가 통과하기 때문에 그 악명 높던 훈자랍 고개(4733m)도 매끄럽게 넘나든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따라 또 메마른 협곡을 감아 도는 훈자강을 따라 하늘을 찌를 듯한 괴괴한 산들을 바라보고 가노라면 꿈을 꾸는 듯한 기분에 젖어든다. 이곳에서는 시간관념을 초월하여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는 환상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환상의 세계, 우리들의 이상향처럼 느껴지는 훈자. 산 속의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살구꽃 만발하는 그림 같은 마을들. 이곳에는 이미 떠나버린 그리운 것들이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글 사진 박하선 기자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