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만큼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
산티아고 만큼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
  • 글·박상신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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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DIC WALKING | ① 제주도 올레

▲ 말미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종달리와 시흥리의 아름다운 전경.

말미오름~성산일출봉~섭지코지…제주 동쪽 해안 따라 가는 17km 코스

글·박상신 노르딕워킹 인스트럭터ㅣ사진·Daum 카페 <노르딕워킹(아웃도어라이프)> cafe.daum.net/neooutdoorㅣ장비협찬·메드아웃도어ㅣ자료제공·제주올레

도보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예수의 제자 성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떠난 800㎞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하나의 성지다. 브라질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책 <순례자>를 통해 더욱 유명해진 산티아고 길.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 산티아고만큼이나 평화로운 길이 있다. 바로 올레다. 제주도 방언으로 ‘집에서 큰 길로 나가는 좁은 오솔길’이라는 뜻의 올레는 길을 구획하는 제주의 돌담을 뜻한다. 비영리단체인 제주올레는 차가 다니지 않는 안전한 길만 엮어 도보여행 코스 올레를 만들었다. 현재까지 개발된 구간은 총 4개. 그 중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제주도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말미오름~섭지코지 구간을 노르딕워킹으로 걸어봤다.

▲ 말미오름에서 종달리로 가는 도로 옆으로 노란 유채꽃이 화사하다.
섬마을에 가득한 봄의 향기
4월15일 노르딕워킹카페 회원들과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제주 올레의 아름다움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다. 제주도에 도착과 동시에 출발지인 동쪽 해안 마을 시흥리로 이동했다. 출발지인 시흥초등학교에서 간단하게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후 설레는 마음을 안고 첫 번째 경유지 말미오름으로 향했다.

시흥초등학교를 나서자 푸른 화살표가 방향을 안내했다. 올레 코스를 여행하는 내내 길을 안내해 줄 반가운 표시다. 얼핏 지나칠 수도 있는 무던한 표시지만 일정한 간격을 두고 등장하는 화살표 덕분에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올레 투어에 참가한 카페 회원은 모두 17명으로 화창한 제주의 날씨에 걸을 때마다 감탄사를 연신 내뱉었다.

말미오름 입구에 도착했다. 완만한 경사를 오르자 소나무 군락지대가 나오고 영화 같은 풍광이 펼쳐졌다. 소나무숲 사이로 보이는 유채꽃밭과 작지만 운치 있는 학교, 그리고 푸른 바다가 어우러져 그림에서나 봄직한 아름다운 풍경화가 그려졌다.

오름은 멀리서 보면 자그마한 봉우리 같지만 막상 올라서면 사방이 탁 트인 전망을 보여준다. 크기와 형태는 각각 다르지만 대개는 완만하고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한다. 그런데 말미오름은 제주의 다른 오름과 많이 달라보였다.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저게 정말 오름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황홀한 풍광을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시원한 바람에 몸과 마음이 깨끗이 씻기는 기분이었다.

제주의 오름이 대부분 그렇듯 말미오름에도 다양한 야생화와 나비가 서식한다. 특히 서귀포 앞바다의 섶섬과 더불어 솔잎난의 대표적인 자생지로 알려져 있다. 안타깝게도 최근에는 불법 채취 때문에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 성산일출봉에서 수마포로 가는 길. 푸른 바다와 해안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해 뜨는 작은 섬 성산 일출봉
말미오름을 내려와 종달리로 향했다. 푸른 잔디가 깔린 종달초등학교 교정에서 각자 준비한 도시락으로 에너지를 충전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초등학생들이 해맑게 웃으며 정겹게 인사를 건넸다. 집과 밭을 경계 짓는 제주 돌담길. 모진 바람에도 끄떡없는 거무죽죽한 제주 돌담은 푸르른 바다, 노란 유채꽃밭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걷는 이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그림처럼 예쁜 종달초등학교를 지나면 잘생긴 폭낭(팽나무의 제주도 방언)이 반긴다. 동네 사람들의 야외 사랑방 노릇을 하는 정자나무다. 옆에는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소금을 만들어 썼다던 염전 종달리 소금밭이다. 지금은 소금밭의 모습은 사라지고 잡풀들만 무성했다.

성산갑문을 지나 4시쯤 도착한 성산일출봉은 평일이지만 정상까지 이어진 행렬로 북적였다. 푸른 녹음을 감상하며 곳곳의 산책로를 걷다보니 제주도의 이국적인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났다. 일출봉을 둘러본 일행은 우측 산책로를 따라 수마포 해안으로 이동했다. 수마포 해안 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동굴을 파 대공포를 숨겨놓았던 장소다. 발이 푹푹 빠지는 검은 모래 해안을 힘겹게 걸으면서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댔다. 해안 끝으로 보이는 성산일출봉의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눈으로만 담아가기가 아쉬웠다.

▲ 올레길에는 파란 리본으로 표시된 이정표가 곳곳에 있다.
해안을 따라 걷다보면 광치기 해변이다. 그 길에서 만나는 특별한 식물이 있다. 순비기다. 순비기는 사구지역의 모래땅에서 무리지어 자라는 키 작은 나무로 올리브색 잎사귀에 연보라색 작은 꽃을 피운다. 나무의 줄기가 모래땅 속을 헤집고 뻗어나가 해녀들은 물에 들어간다는 의미의 ‘숨비기’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마지막 목적지인 섭지코지까지 가기에는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광치기 해안에서 노르딕워킹 투어를 마쳐야했다.

멀리서 신혼부부 한 쌍이 성산 일출봉을 배경으로 승마를 즐기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랑과 낭만이 가득한 해안의 풍경이었다. 제주 올레를 걸으며 그때그때 다가오는 새로운 풍경과 풍물에 취하다보면 올레가 산티아고만큼 아름답고 평화롭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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