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를 굴려라! 신라 천년을 다 가져라!
두 바퀴를 굴려라! 신라 천년을 다 가져라!
  • 글·김경선 기자 |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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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PARK TRAVEL 02 경주 자전거 하이킹

▲ 김유신 장군묘의 벚꽃 터널은 산뜻한 개나리와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다.

김유신 장군묘~대릉원~분황사~보문호…신라 향기 찾아 나선 한나절 여행 코스

경주에 봄이 한창이다. 천년 도읍지가 형형색색의 꽃으로 물들어 가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한걸음 뗄 때마다 유적지와 문화재가 넘쳐나는 경주에서는 자전거만큼 편리한 이동수단도 없다. 거기다 향긋한 봄의 향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달리는 기분이란! 흘리는 땀방울만큼 행복해지는 경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보자.


경주는 향긋하다. 신록이 완연하고 화사한 꽃길이 펼쳐지는 봄이 되면 향긋한 경주의 매력은 절정에 다다른다. 도시를 가득 메운 벚꽃, 노오란 유채꽃과 연분홍 진달래꽃의 화사한 춤사위는 봄의 경주를 더욱 아름답게 빚어낸다. 그러나 경주의 아름다움이 비단 피고 지는 꽃들의 향연 때문만은 아니다. 천년 세월을 관통하는 신라의 숨결이 도시 곳곳에서 배어나는 경주는 어떤 향기보다도 숭고한 내면의 향기를 풍긴다.

한반도에서 경주만큼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시가 또 있을까? 동시대를 꽃피웠던 고구려의 수도 평양이나 백제의 수도 부여·공주도 경주만큼 옛 도시의 향기를 짙게 풍기지는 않는다. 천년 세월 동안 한 나라의 수도였던 경주이기에 여전히 신라인의 기상과 찬란한 문화를 온전히 간직할 뿐이다.

한국인들에게 경주는 특별하다. 학창시절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수학여행삼아 경주를 방문한다. 그리고 풋풋한 소년·소녀 시절의 추억이 아련해질 때쯤 경주로의 여행은 필연처럼 마음을 자극한다. 설렘과 기대와 추억이 뒤엉킨 경주의 봄. 숨 쉴 때 마다 천년신라의 숨결이 느껴지는 이곳에 지금 꽃잔치가 한창이다.

▲ 노란 개나리와 연분홍 벚꽃이 어우러진 김유신 장군묘 입구.

신라의 벚꽃, 그리고 자전거
전날 내린 폭우로 벚꽃이 다 져버릴까 걱정했던 마음은 기우였다. 벚꽃의 화려한 춤사위는 이미 정점을 찍고 저물어가고 있었지만 마지막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려는 몸짓은 여전했다. 봄의 경주가 더욱 황홀한 이유도 시시각각 피고 지는 이 꽃들의 향연 때문이리라.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만큼이나 자애로운 햇살이 경주를 감싸 안은 이른 아침, 도시는 청초한 맨얼굴을 기꺼이 드러냈다. 경주를 온 몸으로 느껴보기에 자전거만큼 좋은 이동수단이 있을까. 한시라도 빨리 경주 속으로 들어가고픈 마음에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하루를 함께할 자전거를 빌렸다. 오늘 여행은 경주 도심의 신라 유적과 보문단지를 둘러보는 것이다. 도심으로 떠나기 전에 잠깐 김유신 장군묘로 방향을 틀었다.

경주에는 벚나무가 참 많다. 도심 곳곳이며 외곽까지, 4월 초에는 어딜 가나 꽃비가 흩날린다. 그중에서도 특히 김유신 장군묘 일대와 대릉원 주변, 불국사 일대의 벚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서천교를 지나자마자 길 양 옆으로 벚나무가 그득하다. 그 길 사이를 자전거로 달리는 기분이란. 시작부터 상쾌한 봄나들이 길에 마음이 설렌다.

▲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의 업적은 묘소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커다란 봉분을 감싼 둘레돌에는 왕릉에만 새겨진다는 십이지신상이 수려한 솜씨로 조각돼 있다.

아쉽게도 묘소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인도도 자전거 전용 도로도 없다. 다만 쌩쌩 달리는 자동차를 조심스럽게 피해가는 방법뿐이다. 벚꽃 길을 지나 낮은 구릉을 올라서 소나무 숲 사이에 잠들어 있는 김유신(595~673) 장군을 만난다. 고구려와 백제를 흡수해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은 사후 흥무대왕으로 추대돼 왕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장군의 위대한 업적은 묘소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커다란 봉분을 감싼 둘레돌에는 왕릉에만 새겨진다는 십이지신상이 수려한 솜씨로 조각돼 있었다.

묘소를 나와 장군의 위엄처럼 당당하고 화려한 벚꽃 터널을 지나면 다시 경주 도심이다. 출발지인 고속버스터미널을 지나 대릉원이 있는 황남동으로 들어서면 황남빵, 경주빵, 찰보리빵 집들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 모은다. 달콤한 빵 냄새에 취해 사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다. 경주여행의 증거가 황남빵이라는 이야기가 헛말은 아닌 듯했다.

▲ 경주 도심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는 반월성 주변. 노란 유채꽃 향기가 가득한 들판 너머로 첨성대가 보인다.
그러나 황남동에서 유명한 것이 황남빵만은 아니다. 타지역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평지 위의 고분군 대릉원에는 신라의 왕과 왕비, 귀족의 무덤 23기가 몰려있다. 대릉원을 둘러싼 벚나무와 돌담 너머로 푸른 때를 곱게 입은 왕릉의 자태가 드러나자 천년 신라의 진가가 비로소 느껴진다. 대릉원에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대릉원 무덤 중에서 유일하게 내부가 공개되고 있는 천마총은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에 진지함이 가득하다.

“여러분,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이라고 하죠. 능을 제외한 무덤은 묘라고 하고요. 그럼 능도 묘도 아닌 총은 뭘까요?”

“누구의 무덤인지 모르는 묘요!”

천마총은 1973년 발굴 당시 하늘을 나는 말이 그려진 말다래(말을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가죽 같은 것을 말의 안장 양쪽에 늘어뜨려 놓은 기구)가 출토돼 천마총(天馬塚)이라고 불린다. 신라의 무덤은 평지 위에 나무로 만든 관을 놓고 그 위에 덧널을 놓은 후 다시 돌덩이를 수북이 쌓아 흙으로 덮은 형태의 돌무지 덧널무덤이 대부분인데 고구려와 백제의 무덤에 비해 안전하고 견고해 도굴꾼의 침입을 거의 받지 않았다고 한다.

대릉원에 가득한 고분들은 마치 온순한 언덕처럼 친근하다. 비록 대릉원이 신라 김씨 왕족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곳이라지만 지금은 어린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른까지 누구나 왕과의 조우가 가능하다. 봉분 속 왕들도 후대인들의 친밀한 방문이 반가울까?

▲ 경주에서 가장 오래된 숲 계림은 봄소풍 나온 유치원생들로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마음이 길을 만드네

그리움의 마음 없다면
누가 길을 만들고
그 길 지도 위에 새겨놓으리
보름달 뜨는 저녁
마음의 눈도 함께 떠
경주 남산 냉골 암봉 바윗길 따라
돌 속에 숨은 내 사랑 찾아가노라면
산이 사람들에게 풀어놓는 실타래 같은 길은
달빛 아니라도 환한 길
눈을 감고서도 찾아갈 수 있는 길
사랑아, 너는 어디에 숨어 나를 부르는지
마음이 앞서서 길을 만드네
그 길 따라 내가 가네.

정일근의 시 <경주 남산> 중 ‘길’

▲ 경주의 밤을 더욱 황홀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은 임해전지다. 은은한 조명과 잔잔한 호수, 반짝이는 달과 별이 어우러져 신라의 밤을 아름답게 밝힌다.

반월성에서 완성된 신라의 봄
경주 시내에서 황홀한 꽃잔치의 정수를 맛 볼 수 있는 곳은 반월성 주변이다. 노오란 유채꽃 군락 주위로 연분홍 꽃비 흩날리는 벚꽃의 향연은 지나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이 낭만적인 풍광에 빠진 사람들은 유채꽃을 배경 삼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고 그 사이를 지나는 커플 자전거도 풍경화의 한 장면을 완성시킨다.

첨성대도 꽃의 향연에서 제외할 수 없다. 갓 피기 시작한 개나리꽃을 받침 삼아 하늘을 떠받치고 서있는 첨성대는 유려한 곡선미를 자랑하며 신라의 과학 정신을 상징한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관측대 첨성대는 둥근 하늘을 상징하는 원통형 몸통과 네모난 땅을 상징하는 사각형 정상부가 어우러져 아담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첨성대에서 반월성으로 오르는 언덕길 양 옆에는 유채꽃밭과 계림이 마주하고 있다. 울창한 느티나무와 왕버들나무가 숲을 이룬 계림에서는 노란 유채꽃만큼이나 화사하고 산뜻한 유치원생들의 소풍이 한창이었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수다소리, 연인들의 행복한 웃음소리, 풍성한 벚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가 어우러진 반월성 언덕은 신라의 봄을 살아있게 만든다.

▲ 임해전지에서 황룡사지로 가는 1차선 도로 위에서 툴툴거리며 바삐 움직이는 경운기를 만났다. 여느 시골에서나 만날 수 있는 순박한 풍경에 마음이 정겨워진다.

언덕에 올라 반월성으로 들어서면 왕이 살았다는 성 대신 널찍한 평지가 펼쳐진다. 초승달 모양의 이 언덕에 천년을 호령했던 신라의 궁이 있었다는 상상만으로도 그 화려함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러나 지금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얼음 창고 석빙고(石氷庫)만 남아있으니 그 화려했던 신라의 궁을 보지 못함에 안타까울 뿐이다.

반월성 언덕을 내려서면 통일신라시대의 별궁터인 임해전지가 나온다. 임해전지의 꽃은 인공연못 안압지다. 못 가운데 삼신산을 상징하는 세 개의 섬을 만들고 그 안에 신기한 새와 짐승을 길러 귀빈들을 접대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현재의 임해전지는 철저한 고증을 거쳐 3동의 누각과 안압지를 복원한 것으로 옛 신라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유적지로 거듭났다. 특히 임해전지의 야경은 몽환적인 신라의 달밤을 완성하는 꽃 중의 꽃이다. 수면에 반사되는 신라의 달과 아름다운 누각은 은은한 조명과 만나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 샛노란 유채꽃밭 위에서 분황사 당간지주를 배경 삼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관광객들.

꽃비 흩날리는 보문호 그늘 아래
임해전지를 나와 황룡사지로 방향을 틀었다. 황룡사지로 가는 길은 자전거가 다니기 위험한 1차선 도로다. 인도도 자전거 도로도 없는 이 길을 5분 정도 달리면 황룡사지로 들어가는 샛길을 만난다.

‘신라의 땅이 곧 부처님이 사는 땅’이라는 신라인들의 신앙은 황룡사에서 빛을 발했다. 553년(진흥왕 14)에 짓기 시작해 4대왕 9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건립된 황룡사는 나라를 대표하는 호국불찰로 신라인들의 뜨거운 불심을 나타낸다. 그러나 화려했던 사찰의 풍모는 고려시대 몽골군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가람터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 한때 신라를 대표하는 호국불찰로 명성이 높았던 황룡사. 지금은 가람터의 흔적만이 거대했던 사찰의 규모를 보여주고 있다.

황룡사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원효대사와 자장스님이 수도했다는 분황사가 있다. 경주 시내 외곽에 위치한 분황사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해 호젓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사찰이다. 경내로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분황사 석탑(국보 제30호)의 익숙한 모습도 반갑다. 분황사에서 나오니 노란 유채꽃 밭 위에 서있는 분황사 당간지주를 배경 삼아 소녀들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까르르르 웃음소리를 내며 행복해 하는 그들의 얼굴이 바로 봄이었다.

보문호를 향해 벚꽃 숲으로 달려 들어갔다. 긴 터널을 가득 메운 벚나무에서 함박눈처럼 연분홍 꽃비가 우수수 떨어졌다. 보문호가 만나는 봄은 그렇게 벚꽃과 함께 피고 진다. 그러나 그 잠깐의 화사함은 짧은 청춘의 안타까움만큼이나 금새다. 우르르르 피고 와르르르 지는 벚꽃의 인생. 그 속에서 이제 흔적으로만 남은 천년 신라의 운명을 느낀다.

▲ 건립 당시 9층이었던 분황사 석탑은 현재 3층까지만 남아있다. 실제로 본 석탑은 그 규모와 크기가 상당했는데, 원래의 석탑의 규모와 아름다움을 생각하니 소실된 부분이 아쉽다.

고요하고 잔잔한 호수 주위를 둘러싼 10km 길이의 벚나무 산책길에는 환한 웃음을 띠며 자전거를 타는 연인들과 따뜻한 봄날을 즐기려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봄, 자전거, 그리고 천년 신라의 그늘 아래서 행복한 미소는 더 이상 사치가 아니다.

해는 어느새 뉘엿뉘엿 잔잔한 호수를 붉게 물들였다. 이제 곧 별과 달이 첨성대 하늘을 수놓기 시작하면 신라는 한 송이 야화로 피어날 것이다. 경주의 봄은 그렇게 낮에도 밤에도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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