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바람 속에서도 내 영혼은 자유롭다
모래바람 속에서도 내 영혼은 자유롭다
  • 글 사진·안병식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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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식의 극한 마라톤대회 참가기 ① 중국 고비사막

▲ 15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발목까지 잠기는 10km의 진흙길을 통과해야 한다.

6박7일 동안 250km를 달려야 하는 죽음의 레이스…한국인 최초로 우승

중국의 고비사막, 이집트의사하라사막, 칠레의 아타카마사막, 그리고 ‘마지막 사막’이라 불리는 남극에서 매년 펼쳐지는 세계 4대 극한 마라톤대회. 이 대회를 모두 완주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안병식(34) 씨는 지난 4월에는 북극점 마라톤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그가 전하는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 마라톤대회 현장을 소개한다.

사막은 나에게 있어 호기심, 두려움, 망설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막은 나에게 있어 설렘의 대상이다. 사막으로의 여행은 언제나 내 마음을 뒤흔드는 그 무엇인가가 있고 새로운 꿈들을 만들어 낸다. 해발 2000m가 넘는 푸른 초원지대와 만년설로 가득한 텐샨산맥을 배경으로 한 중국의 고비사막, 바람·모래·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이집트의 사하라사막, 그리고 낯선 행성에 온 듯 경이롭고 신비로운 칠레의 아타카마사막….

밤에는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가서 밤새 추위에 떨다가도 낮에는 이글거리는 태양에 얼굴은 검게 그을린다.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몸은 땀과 모래에 뒤범벅이 되어 며칠 동안 씻지도 못해 몰골은 초라해져 있지만 두근거리는 심장은 멈출 줄 모른다. 때론 힘이 들어 울고 싶을 때도 있지만 모래와 바람, 태양. 그리고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벗이 되어 외로움과 고통을 달래준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내 마음을 뒤흔들 만큼 가슴 설렌 적이 있었던가? 사막에 있는 동안은 마음껏 하늘을 나는 새처럼,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

▲ 대회에 참가한 전 세계 마라톤 선수들은 250km에 달하는 거리를 6박7일 동안 완주해야 한다. 특히 고비사막 마라톤은 산, 초원, 진흙길 등이 코스에 포함되어 있어 아주 험난하다.

인간 한계를 시험하는 서바이벌 마라톤
중국의 고비사막은 주위가 산지로 둘러싸인 몽골고원 내부에 펼쳐진 사막이다. 거리만도 동서로 1600km, 남북으로 500~1000km에 이르고, 연간 강수량은 중앙부에서 25~50mm, 북부에서 남동부에 걸쳐 150~200mm 내외다. ‘고비(Gobi)’란 몽골어로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란 뜻으로, 고비사막의 대부분의 지역은 암석 사막을 이루고 있으며, 모래 사막으로 된 지역은 매우 적고, 사막에는 넓은 초원지대가 포함되어 있다.

고비사막 마라톤대회는 매년 5월에서 6월 사이에 열린다. 250km의 거리를 총 여섯 개 구간으로 나누는데 42km의 마라톤 코스와 산을 오르내려야 하는 ‘마운트 데이’, 그리고 80~90km의 ‘롱데이 코스’는 반드시 포함된다. 대회 코스는 모래, 평야, 호수, 산, 바윗길 등 여러 가지 지형으로 해마다 바뀐다. 사막 마라톤은 자신의 음식과 장비를 배낭에 메고 외부의 지원 없이 대회 측에서 제공하는 하루 10ℓ의 ‘생명수’를 가지고 달리는 서바이벌 마라톤 대회다.

척박한 곳에서 험난한 코스를 달리는 대회이므로 대회 조직위원회에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긴급 구호 시스템과 의료 서비스를 마련하고 있으며, 참가자들은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서바이벌 키트와 야간 레이스를 할 때 필요한 야광막대 등을 반드시 휴대해야 한다. 개인 또는 3명의 팀을 구성해 참가할 수 있고, 여섯 구간의 소요 시간을 합산하여 우승자를 가리고 각 구간마다 제한 시간이 있으며 제한 시간을 초과할 경우에는 탈락된다.

중국에 첫발을 내딛다

▲ 대회가 시작하기 전 몽골 원주민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여행은 언제나 즐겁다. 고비사막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한 나의 중국 여행은 처음이었다. 북경 시내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고, 건물들은 옆으로 길게 뻗은 모습이 위로만 솟아있는 서울의 빌딩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우리네 사는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일까? 많은 사람들과 건물, 자동차, 자전거들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북경의 명동’인 ‘왕부정’ 거리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왕부정’ 거리에서 한 개에 우리나라 돈으로 500원 정도하는 번데기랑 전갈 등을 호기심에 먹어보기도 하고, 오리구이로 유명한 ‘전취덕’이란 마을에서 오리구이랑 옌진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에 온 목적을 잊을 수는 없는 일. 서둘러 숙소로 돌아와서 잠을 청한다.

레이스를 앞둔 긴장감과 함께 낯선 공간의 잠자리는 예민한 나에겐 전혀 포근한 잠자리를 제공해주지 못했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난 후 우리는 서둘러 우루무치 공항으로 출발했다.
북경에서 우루무치까지는 비행기로 4시간 정도 걸리고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약 70~80만 원의 비행 경비가 든다. 오후 늦게 우루무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루무치는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에 있는 도시로 텐샨산맥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중국의 문화와 이슬람의 문화가 공존하고 밤 열시가 넘어서야 해가 지며 아침 여섯 시에 해가 떠오르는 조금은 낯선 곳이었다.

숙소에 도착해보니 이미 많은 스텝들과 참가자들이 모여 있었고 곧이어 장비검사가 이뤄졌다. 사막 마라톤은 자신의 음식과 장비들을 배낭에 메고 일주일 동안 달려야 하기 때문에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주최 측으로부터 장비검사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 선수들이 무릎까지 잠기는 모래 사막을 빠르게 통과하고 있다.

이번 고비사막 마라톤은 2005년 사하라사막에 이어 나의 두 번째 사막 레이스다. 장비검사를 받는 동안 지난번 사하라사막 마라톤대회에 같이 참가했던 친구들을 몇 명 만났고 그들과 반갑게 인사도 나누었다. 그 중에서도 지난 번 사하라에서 우승했던 캐나다의 레이, 그리고 많은 사막 레이스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대만의 케빈은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사막마라톤은 세계 여러 나라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문화와 다양성 등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아침식사를 하고 난 후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모든 참가자들과 스텝들은 버스를 타고 대회 장소인 고비사막으로 이동했다. 멀리 하얗게 눈이 덮인 텐샨산맥과 가도 가도 끝이 없이 펼쳐진 고원지대, 그리고 가끔씩 보이는 작은 마을과 낙타 무리들,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 떼들은 오랜 시간 버스를 타는 지겨움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 선수들끼리 서로 도우며 물살이 세찬 강을 통과하고 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8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고 도착한 사막의 느낌은 쌀쌀함 때문인지 지난해 사하라사막에서의 그 ‘뜨거움’이 강하게 남아있던 나에게 조금은 당황스러운 날씨였다. 주최 측에서는 대회 전날과 대회가 끝나는 날 선수들에게 편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다양한 음식으로 만찬을 준비해주는데, 저녁 늦게 식사를 마친 우리는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사막에서의 첫 날 밤을 보낼 수 있었다.

6시가 되어 일어나 보니 날이 훤히 밝아 있었고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은 대회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난 후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현지인들이 민속 공연 등 다양한 볼거리도 제공해 주었다. 약간의 긴장감과 설렘 속에 10시가 되어서 6박7일 동안 250km를 달리는 고비사막 마라톤이 시작되었다.

첫 날은 산을 넘어야 하는 레이스로 진행됐는데 소금 호수와 진흙길, 밭을 지나는 코스도 있었다. 10km가 넘는 진흙길에 선수들의 신발이 벗겨지기도 하고 무릎까지 빠지기도 하며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일반마라톤과는 다른 색다른 경험과 모험이 기다리는 게 오지마라톤의 특징이고 매력이다.

▲ 선두 그룹의 선수들. 극한의 고통속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그렇게 막막한 진흙길을 지나니 체크포인트가 나타났다. 사막레이스에서는 보통 10~15km의 간격으로 체크포인트가 설치되고 2~3명의 자원 봉사자와 함께 의료진도 함께 배치되어 있다. 참가자들은 여기에서 물을 공급 받고 자신의 음식을 먹으면서 무거운 배낭을 풀고 잠시 쉬어가기도 하는 사막의 ‘오아시스’이기도 하다.

사하라사막에서와 달리 고비사막에서는 산, 협곡, 초원 등 다양한 지형을 달리게 된다. 아무도 없는 푸른 초원 지대를 혼자 달릴 때는 그 자유와 기쁨 앞에 발끝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가는 고통까지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말 행복한 순간이다.

너무 힘이 들어서 눈물을 흘릴 때도 있지만 때론 너무 아름다움에 눈물까지 흘렸던 기억들도 있었다. 하지만 사막이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만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특히 세차게 불러오는 고비사막에서의 바람은 텐트까지 날려 버릴 정도였고, 모래에서 레이스를 할 때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모래바람이 불어오기도 했다.

▲ 극한의 체력을 요구하는 사막 마라톤은 자기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이다.

고비사막 마라톤의 특징 중 하나는 산을 오르는 ‘마운트 데이’ 코스가 있는데 이번 대회에서도 3000m에 가까운 산을 오르는 코스가 포함되었다. 6월이지만 산 정상에서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고, 산 아래로는 눈으로 만족할 수 없는 풍경들이 연출됐다. 선수로 참가하다 보니 아쉽게도 그러한 진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도 없고 마음껏 감상할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롱데이 코스’에서는 모래폭풍이라고 할 만큼 모래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하지만 모래바람이 그치고 난 후 바라본 푸른 초원 앞에 펼쳐진 모래언덕은 정말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모래 언덕과 푸른 초원이 만나고 옆으로 호수가 있는 곳의 유목민 텐트에서 하루를 지냈는데 비록 담요 하나밖에 없는 초라한 텐트였지만 도시의 화려한 호텔 못지않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해 주었다.

▲ 푸른 초원으로 둘러싸인 모래언덕의 풍경이 아름답다.

텐트에서 지내는 동안 밤에 영하의 날씨도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불도 피울 수 있었고 담요가 있어서 춥지 않게 편하게 잘 수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바라본 밤하늘의 별들과 오랜만에 찾은 여유는 사진도 찍고 편하게 쉬었다. 지난 레이스에서의 힘들었던 순간들과 모래폭풍을 모두 잊게 할 만큼 행복한 순간이었고, 그 순간만이 영원하기만을 바라기도 했다.

사막에서의 250km는 결코 쉽지 않은 거리다. 특히 고비사막은 산악지형이 많아 지형적으로 다른 레이스보다 힘들었다. 하지만 나에게 ‘우승’이라는 뜻밖의 선물도 안겨다 줬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소중한 추억들도 잊지 못할 것이다. 오지마라톤은 단순한 ‘일상탈출’만의 기쁨이 아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가져다주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즐기면서 달릴 수 있는 멋진 여행이다. (계속)

▲ 참가국들의 깃발. 해마다 많은 나라의 선수들이 참가한다.

오지마라토너 안병식

1973년생
2003년 제주 국제 아이언맨 대회 완주
2005년 2006년 이집트 사하라사막 마라톤 250km 완주
2006년 중국 고비사막 마라톤 250km 한국 최초 사막마라톤 우승
2006년 칠레 아타카마사막 마라톤 250km 완주
2006년 이집트 사하라사막 마라톤 250km 완주
2007년 고비사막, 사하라사막, 아타카마사막
           마라톤대회 미디어팀 카메라맨으로 참여
2007년 남극 130km 완주
2008년 베트남 정글 산악 마라톤 235km 완주
2008년 4월 북극점 마라톤대회 우승


제주대학교에서 미술(서양화)과 대학원에서 체육을 전공한 안병식(34) 씨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남극 마라톤과 북극점 마라톤 완주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그림쟁이’로 때로는 ‘오지마라토너’로 세계의 여러 오지레이스에 참가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방랑자’라 칭하며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살아가고 있다. 안병식 씨가 그동안 세계를 돌며 간직한 소중한 기록들은 그의 블로그를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 안병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tole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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