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사막을 6박7일간 달렸다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사막을 6박7일간 달렸다
  • 글 사진·안병식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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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식의 극한 마라톤대회 참가기 ③ 이집트 사하라사막

▲ 영상 50℃가 넘는 사하라사막에서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모래 언덕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무더위와 죽음의 롱데이 코스 완주…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 낮의 온도가 영상 50℃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사막인 이집트 사하라사막. 그곳에서 열리는 극한 마라톤대회는 사막 마라토너라면 꼭 이겨내고 싶은 도전의 대상이다. 이번 대회는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거친 모래 속을 달려야 하는 죽음의 레이스였지만, 나에게 진정한 자유를 찾아준 대회였다.

글 사진·안병식 오지 마라토너(소속·노스페이스) http://blog.naver.com/tolerance

2005년 사하라사막 마라톤대회 참가 이후 1년 만에 다시 찾은 이집트의 카이로 시내는 나에게는 여전히 낯선 도시다. 낡은 건물들과 1년 내내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뿌옇게 쌓인 먼지는 낡은 회색 도시를 연상케 했고, 신호등이 거의 없는 도로에는 사람과 자동차들이 복잡하게 엉켜 있어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카이로에서 나는 이방인이고 몇 번의 이집트 여행만으로 그곳의 문화와 생활에 익숙해지기에는 아직 너무 짧은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무엇이 나를 자꾸 이곳으로 당기는 것일까?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주인공처럼 아름다운 로망을 꿈꾸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막이 품고 있는 무한한 도전에 대한 욕구 때문일까?

▲ 쿠푸왕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세계 4대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에서는 약 90개의 피라미드를 비롯해 다양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고대문명의 발상지 속으로
이집트는 북동쪽으로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서쪽으로 리비아, 남쪽으로는 수단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북쪽과 동쪽으로 지중해와 홍해가 위치해 있다. 국토의 일부인 시나이반도가 이스라엘과 접경하여 중동지방에 걸쳐 있다.

세계 4대 고대문명 중 하나인 이집트에는 약 90개의 피라미드가 존재하고, 그중에 기자(Giza)지구에 있는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가장 크고 웅장하다. 스핑크스, 이집트 공주 무덤인 테펄티티 무덤의 상형문자와 벽화, 그리고 람세스 상과 박물관의 유물 등은 특별한 체험이다.

특히 테펄티티 무덤 속의 벽화는 그동안 책으로만 구경했던 이집트 미술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돼서 ‘날라리 그림쟁이’인 나는 너무나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많은 유물들이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도굴되고 무너지고 훼손되어 흔적만 남아 있는 모습을 볼 땐 위대한 이집트 문명 뒤에 온 또 다른 이집트 문명의 아픔을 상징하는 것 같아 왠지 씁쓸함이 더했다.

▲ 이번 대회는 그동안 책으로만 보아 왔던 이집트의 위대한 유산도 구경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됐다.

사하라사막은 나일강에서 대서양까지 약 5600km, 지중해와 아틀라스 산맥에서 나이저강과 차드호까지 약 1700km를 가로지르는 세계 최대의 사막이다. 사막과 사바나 지대 사이에 넓고 건조한 스텝 지대가 동서로 펼쳐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광대하고 건조한 사하라사막에서 다시 극한의 레이스를 극복해야 한다.
대회 숙소인 모벤빅 호텔은 카이로 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인 기자지구에 위치해 있다. 멀리 피라미드가 눈에 들어오고 수영장·헬스·테니스 코트·축구장 등이 갖춰진 리조트이면서 숙소가 깔끔해 마음에 드는 곳이다. 저녁 7시가 되어 배낭 검사가 이루어졌다. 짐 검사를 하는데 절친한 친구인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를 만났다. 프란체스코는 중국의 고비사막과 칠레의 아타카마사막을 같이 뛰면서 서로 친해졌다. 나보다 경험도 훨씬 많고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정말 멋진 친구다.

아침식사를 하고 난 후 10시에 버스를 타고 다시 사막으로 이동했다. 7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고 가면서 바라본 창밖의 세상은 1년 전에 보았던 풍경들이라 그런지 익숙함으로 다가왔다. 사하라사막은 가끔씩 아름다운 풍경도 펼쳐지지만, 때론 풀 한 포기나 나무 한 그루 제대로 구경할 수 없는 삭막함과 쓸쓸함, 그 자체이기도 하다.

▲ 사하라사막 마라톤대회 스타트 포인트에 설치된 베이스캠프.

매일 아침 대회 장소로 출발하기 30분 전에 진행요원이 그날의 코스에 대해서 브리핑을 한다. 오늘 달리는 코스는 ‘사막의 남극’이라는 곳인데, 사막 한 가운데에 마치 조각 작품처럼 솟아 있는 돌기둥들은 오랜 기간 동안 풍화작용에 의해서 생겨난 거라고 한다. 하얀 색깔의 돌기둥들은 멀리서 보면 마치 얼음 조각처럼 너무나 곱고 아름다운 형상들을 하고 있었다.

베이스캠프에서 CP1까지는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와 덴마크의 지미랑 셋이 짝을 이뤄 같이 달렸다. CP1을 지나 한참을 달리고 나자 마치 모래 산맥처럼 보이는 풍경들이 나타났다. 대회코스를 표시하는 빨간 깃발들이 모래 언덕 쪽으로 향해 있었다. 저 모래 언덕들을 건너야 된다는 생각이 끔찍함으로 다가왔지만, 고통의 순간들을 즐기는 게 사막레이스의 또 다른 즐거움 중의 하나가 아닌가? 어차피 고통은 순간일 뿐이다.

▲ 힘겨운 레이스가 시작됐다. 선수들은 세계에서 가장 광대하고 건조하기로 유명한 사하라사막에서 죽음의 레이스를 이겨내야 한다.

순위보다는 완주를 목적으로
롱데이 코스는 2개 그룹으로 출발하는데 이날은 선두그룹 20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6시에 출발했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잠이 깨었다가 먼저 떠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난 후 다시 누워 잠을 청했다. 많이 피곤했다.

벌써 아침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걱정은 되었지만 곧 회복 되리라 생각하며 사진을 찍으며 출발시간을 기다렸다. 9시가 되어서야 출발했는데 벌써부터 뜨겁게 느껴지는 태양은 오늘의 레이스가 힘들 거라고 경고하는 듯 했다. CP2에 가까워지면서 체력이 많이 소모된 듯 싶더니 갑자기 온 몸에 기운이 쭉 빠졌다. 여러 번의 사막 레이스를 경험했지만 롱데이 코스 초반에 이렇게 힘들었던 적은 처음이다.

순위는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훨씬 앞서기 시작했다. 남들과 같이 뛰다가 때론 이렇게 뒤처져 힘들게 갈 때는 외롭기도 하고 심리적으로도 더욱 힘들다. 하지만 살아가다보면 남들보다 앞설 때도 있고 조금 뒤처지기도 하는 게 우리의 인생 아닌가? 일등으로 달리든 꼴찌로 달리든 각자의 위치에서 세상을 즐기며 열심히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 CP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휴식을 했다. 롱데이 코스는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레이스였다.

물론 사막 마라톤대회에서의 우승은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의 레이스를 통해 1등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이제 나에게 있어 사막 마라톤대회는 자유롭게 달리면서 즐기다 가는 것이 우승보다도 더 의미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 때론 힘들게 경쟁하면서 순위에 집착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사막을 맘껏 구경하며 달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얼마를 달렸을까? 끝없는 사막만이 이어질 뿐 CP는 그렇게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몸은 계속 지쳐갔다. ‘고통은 곧 끝난다. 지금 이 순간만 견뎌내자’ 내 자신을 위로하며 달렸지만, 몸 상태는 점점 더 안 좋아져 갔다.

▲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은 체력을 급격하게 소모시켰다. 지금껏 여러 사막 마라톤대회에 참가했지만 초반부터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었다.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
너무 힘들어 잠시 쉴 때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힘들어하면서 계속 사막에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서 포기한다면 나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끝까지 완주를 한다면 또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많은 생각과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 한 것 같아 다시 속도를 내서 달리기 시작했다. 앞에도 뒤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사막을 혼자 이렇게 쓸쓸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쓸쓸함과 외로움은 나에게는 또 다른 자유인지도 모른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석양 노을이 붉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고, 그 풍경은 마치 영화 속 풍경처럼 너무나 곱고 아름다웠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멀게만 느껴지는 사막에서 곱게 물든 노을을 뒤로 하고 난 계속 달렸다. 마지막 CP에서 물을 마시고 다시 언덕을 내려오니 왼쪽으로 캠프 불빛이 보였고, 야간에 코스를 표시하는 야광막대의 불빛이 장관을 이뤘다.

▲ 가도 가도 끝이 없고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드넓게 펼쳐진 사막은 마치 영화 속의 풍경처럼 너무나 곱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야광막대를 따라 한참을 달리다가 잠깐 딴 생각을 했는지 순간 야광막대가 보이지 않았다. 낮에도 가끔 길을 잃어버린 적은 있었지만 밤에 이렇게 길을 잃고 나니 황당하기도 하고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야광막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1시간30분을 헤매고 난 후 마지막 야광막대가 보였던 지점으로 돌아가서야 길을 찾을 수가 있었다. 레이스 도중 길을 잃고 헤매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체력도 바닥이 난 상태고 밤이라 더욱 지치게 만들어 버렸다. 캠프에 도착하고 나서 내 몸이 정말 많이 지쳐있다는 게 느껴졌고,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던 롱데이 코스의 하루는 이렇게 끝이 났다.

대회 6일째, 지난 5일 동안의 레이스를 정리하고 하루 종일 휴식을 했다. 통증을 주던 발톱은 거의 빠진 상태라 의료진에게 가서 치료도 받았다. 같이 달렸던 친구들과 많은 얘기도 나누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면서 태양도 붉게 물들어 갔다. 오늘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모래 위에 그냥 침낭을 깔고 누워 몇 시간을 그렇게 별만 바라보았다. 이 순간이 영원하기만을 바라며….

▲ 무사히 대회를 마치고 동료와 함께 완주의 기쁨을 누렸다. 나에게 사막 마라톤대회는 새로운 세상과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연결고리다.

이번 대회에서는 지미가 우승했다. 프란체스코는 간발의 차이로 2위를, 나는 3위로 대회를 마쳤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일주일 동안 250km의 사막을 힘들게 같이 달렸던 우린 모두가 친구가 되어 있었다. 서로 같이 사진을 찍으며 축하의 인사를 나눴다. 이제 힘들었던 순간의 고통과 많은 친구들과의 만남은 모두가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대회는 내 자신을 조금 더 성숙해지게 만들었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행복하다. 이것이 내가 사막 마라톤을 계속 하는 이유다.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기나긴 여행은 아직 진행형이다.
▶ 대회 협찬 : <노스페이스>,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제주특별자치도 스포츠 산업과 

▲ ‘사막의 남극’이라고 불리는 곳에는 마치 조각 작품처럼 솟아 있는 돌기둥들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풍화작용에 의해서 생겨난 것으로 멀리서 보면 얼음 조각과 비슷하다.

Information TIP
사막 마라톤대회 경비와 준비해야 할 필수 장비는?

▶ 참가비 : 중국 고비사막·칠레 아타카마사막·이집트 사하라사막 : 각각 3000달러(약 300만원)

▶ 항공료 : 중국 고비사막(우루무치) : 80만원, 이집트 사하라사막 : 130만원, 칠레 아타카마사막 : 300만원

▶ 그 외 물품구입비 : 50~100만원

▶ 필수 장비 : 배낭, 침낭, 음식(하루 필요량 2000㎉), 헤드램프, 예비램프, 나침반, 안전핀, 라이터, 칼(휴대용), 호루라기, 담요 2개, 모자, 선글라스, 러닝화, 방풍 재킷, 타이츠, 비상용 거울, 조명탄, 야광막대

▶ 금지 품목 : 담배
사막 마라톤대회 홈페이지 www.racingtheplanet.com
한국 에이전트 홈페이지 www.runxrun.com

안병식 | 1973년 생. <노스페이스> 소속이다. 중국의 고비사막, 이집트의 사하라사막, 칠레의 아타카마사막, 남극 등 세계 4대 극한 마라톤대회를 완주한 ‘그랜드슬래머’로 지난 4월에는 북극점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했다. 세계 곳곳의 극한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전문 오지 마라토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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