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화 시장만큼 절대강자가 뚜렷한 시장도 드물다.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전 세계 러닝 시장을 장악한 가운데 스위스의 브랜드 On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리딩 브랜드를 위협하는 신흥강자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는 러닝화 시장,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했다.
최근 세계 최대의 스포츠웨어 브랜드 나이키의 주가가 하루만에 20% 가까이 폭락하면서 스포츠웨어 업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나이키의 매출은 전년 대비 2%가량 감소하는데 그쳤지만 향후 매출도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주가 하락이 가속화되 는 모양새다. 나이키의 매출 하락세는 브랜드 마케팅 방향을 전환한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나이키가 한정판 운동화 등의 사업에 주력한 이후 러닝화 부문에서 타 브랜드에게 입지를 내주면서 매출 하락이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나이키를 위협하는 호카의 성장세
전 세계 러닝화 시장을 장악했던 나이키의 위상은 뉴발란스, 호카, On 등에 자리를 내주면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현재 미국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러닝화 브랜드는 호카와 On이다. 특히 호카는 미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시장에서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호카는 2009년 살로몬 출신의 설립자 니콜라스 메르무드Nicolas Mermoud와 장 뤼크 디아르Jean-Luc Diard가 편안하고 기능적인 트레일러닝화를 고민하며 시작된 브랜드다. 두 명의 창립자는 쿠셔닝이 탁월한 러닝화를 고민했고 호카의 시그니처 디자인인 맥시멀리스트 디자인, 탁월한 쿠셔닝을 발휘하는 솔을 탄생시켰다.
개인 회사인 호카가 급성장을 이룬 것은 못생긴 신발의 대명사 어그UGG의 모기업 데커스DECKERS가 2013년 인수한 이후부터다. 10년 전 불과 30억원 수준의 매출이 1조원으로 급성장하면서 호카는 이제 전 세계 러너들이 사랑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호카의 성공 비결은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더불어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데 있다. 인기의 시작점에는 전문가들이 있다. 호카가 처음 후원했던 미국의 울트라 마라톤 선수 칼 멜처는 100마일 대회에서 호카를 신고 우승을 기록했으며, 마라토너 캠 레빈스는 호카를 신고 캐나다 국내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이후 수많은 마라토너와 러너들을 후원하는 호카는 선수들의 기록 상승과 함께 성장했으며, ‘우승하는 선수들이 신는 신발’이라는 이미지 덕에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호카는 지금 승승장구 중이다. 매년 50%가 넘는 매출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그 결과 10년 전 30억원 수준의 매출이 현재 매출 1조 원을 넘기며 나이키를 위협하는 메이저 브랜드로 성장했다.
신드롬급 인기를 구가하는 On
스위스 러닝화 브랜드 On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브랜드이지만 글로벌 스포츠 시장에서는 돌풍을 불러일으킬 만큼 급성장한 On은 론칭 14년밖에 되지 않은 젊은 브랜드다. 스위스의 전설적인 철인 3종 경기 선수 올리비어 베른하르트Olivier Bernhard에 의해 시작된 On은 구멍이 뚫린 밑창, 투박하지만 기능성에 집중한 러닝화로 무서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창립자 올리비어 베른하르트는 선수 생활을 하며 부상에 시달려왔고,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고 편하게 신을 수 있는 러닝화’를 고심한 끝에 On을 설립한다. 그리고 친구이자 공대 엔지니어 출신 코페티, 데이비드 알레만 등과 함께 3년간 개발한 첫 제품 ‘클라우드’를 출시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On의 핵심 기술인 ‘클라우드 텍’은 신발 밑창에 부착된 중공中空 튜브 형태의 쿠션으로 러너가 착지할 때 충격을 흡수하고 반발력을 높여준다. 이 느낌이 마치 구름 위를 달리는 듯 해 ‘클라우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브랜드의 도약은 세계 최대의 스포츠, 아웃도어 전시회 ISPO를 통해 이루어졌다. 2010년 ‘ISPO 브랜드뉴 어워드’에서 수상하며 단숨에 전세계 바이어들의 주목을 받은 On은 제품력을 인정받으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당시 시제품 샘플 두 어개를 가지고 참석한 ISPO에서 수상한 On에게 2주 후 600개의 이메일이 쇄도했고, 6개 유통 파트너십이 성사되는 쾌거를 거둔다. 이후 On은 10년간 60개 국에 진출했으며, 월마트부터 싱가포르 리조트까지 On 제품을 납품하기에 이른다.
On은 초기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인 혁신을 이어갔으며, ‘착화감이 우수한 러닝화’라는 소비자 평가와 함께 기능성과 디자인 면에서 업계의 인정을 받으며 시장 점유율을 확대한다. 2015년 On은 ‘ISPO 어워드 본상’ 시상식에서 신발 부문 최고 성능 제품에 수여하는 ‘황금상’을 수상했고, 2017년에는 디자인 부문에서도 ‘황금상’을 차지해 기능성과 심미성의 균형을 성공적으로 달성했음을 증명했다. 2022년 On은 1700만개 이상의 제품을 판매하며 10억 달러 매출을 기록했고 기업공개(IPO)에도 성공했다. 설립 초기 3명에 불과했던 직원은 현재 1천 명 이상으로 늘어났으며, 미국의 저명한 언론사 〈워싱턴포스트〉가 ‘당신이 아는 모든 이가 신는 브랜드’라고 표현할 만큼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