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은 소곤대고, 시냇물은 자장가를 부르고…
별들은 소곤대고, 시냇물은 자장가를 부르고…
  • 글·김영 프리랜서 작가┃사진·염동우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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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 CAMPING | 소백산국립공원 삼가야영장

▲ 삼가야영장에서 텐트를 설치하고 맛있는 요리를 준비중이다.

삼가야영장~소수서원~선비촌~부석사~순흥 향교~금성단~삼가야영장

여름이다. 시원한 계곡과 녹음이 그리운 계절. 가만히 앉아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회색빛 빌딩 숲을 빠져나와 백두대간 죽령을 넘는다. ‘바람의 산’으로 이름 높은 소백산 그늘에서 한 마리 들짐승처럼 잠들 수 있다면 이 또한 행복한 일 아니겠는가.

장비협찬·스타런, 코베아

1970년 지리산을 시작으로 행해진 우리의 국립공원 정책은 현재 해상국립공원 3곳, 산악국립공원 17곳을 합해 모두 20곳에 이른다. 사실 국립공원은 보존해야 할 자연적 가치와 더불어 교육적이며 여가선용의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1987년 전국에서 18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소백산은 정상의 주목 군락지와 능선의 철쭉꽃 군락지가 유명하다.

▲ 소수서원 입구의 평평한 들판에 핀 원추리. 길옆으로 다양한 야생화들을 심어 놓았다.
또한 소백산은 ‘바람의 산’으로도 유명하다. 겨울철 주능선에 올라본 사람이라면 소백산의 바람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했을 것이다. 지난해 두 차례 소백산 바람에 쫓겨 산행을 포기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산행보다 자연 속에 묻혀 휴가를 즐긴다는 생각으로 맞추고 소백산국립공원 삼가야영장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여름 휴가철을 맞아 바다를 찾고 있지만, 진정한 피서의 즐거움은 산에 있다. 영상 30℃가 넘는 폭염에 발 디딜 틈도 없는 바닷가는 소란스럽고 열사병이나 탈수 같은 병에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서늘한 바람에 맑은 공기가 부는 계곡에서 즐기는 휴식은 소란스럽지도 덥지도 않다.

서울에서 소백산의 삼가리까지는 200km가 넘는 녹녹치 않은 거리다. 하지만 이 거리보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은 휴가철을 맞아 바닷가로 가려는 사람들의 차량 행렬이다. 영동고속도로 여주휴게소를 지나자 호법까지 줄을 섰다. 일렬로 늘어선 차량들은 거대한 기차의 행진 같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어져 천천히 네 개의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 그건 웅장함이나 장엄함보다 교통 체증과 휴가철 쏠림 현상을 보여주는 우리의 현실이다.

▲ 소수서원 경당에 앉아 서늘한 바람에 온몸을 맡겼다.
호법을 지나 남원주IC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한참을 달려 풍기IC에서 931번 지방도를 타고 풍기로 빠져나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풍기는 동쪽의 영천, 남쪽의 예천과 더불어 경북을 대표하는 고을로 소개하고 있다.

휴가철 야영장이 붐빌 것에 대비해 일단 삼가야영장에 짐을 풀고, 주변의 볼거리를 찾아 나섰다. 풍기에서 찾아간 첫 번째 명물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전통 묵밥집이다. 묵밥이란 음식은 제대로 하는 곳이 아니면 먹고 난 뒤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묵밥집은 시원한 국물에 고소한 묵이 어우러져 제법 담백하다. 그건 대량생산이 아닌 직접 참나무로 불을 피워가며 묵을 쑤는 주인 할머니의 정성 덕이다. 더운 부뚜막 위에 앉아 연신 묵을 쑤는 모습은 이 집이 가진 숨은 비결이겠다.

영주의 문화유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소수박물관
묵밥으로 배를 채우고 찾아간 곳은 주세붕이 세운 소수서원이다. 한국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은 1871년 대원군의 사원 철폐령에도 폐를 면한 47개 서원 중 하나다. 널찍한 주차장 한쪽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를 지나자 은은한 솔향이 퍼져 온다. 길옆에 핀 원추리와 좀비비추, 말나리들이 환하게 웃으며 손님을 맞는다. 들꽃들 덕분에 서원 앞 들판은 수를 놓은 듯 울긋불긋하다.

▲ 고즈넉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소수서원의 연못. 연꽃과 개구리밥, 물옥잠이 만발한 곳이다.
초입의 아름드리 은행나무 뒤로 숙수사 당간지주(보물 제59호)가 눈에 들어온다. 사찰 입구에 세운 당간지주는 절에 큰 행사가 있을 때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 두던 장대인 당간을 꽂던 곳이다. 지금이야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숙수사는 이 지역에 제법 번화한 사찰이었던가 보다. 당간지주를 훑어보고 서원으로 들어서니 강학당과 생도들의 숙소인 학구재, 안향과 안축, 회현 주세붕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고풍스런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긴 하지만 최근에 지어진 건물들은 너무나 생소하기만 하다.

소수서원 뒤쪽으로 가자 연분홍의 연꽃과 개구리밥, 물옥잠화 등이 만발한 연못이 눈에 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연못은 은행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아늑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다. 그늘이 드리워진 의자에 앉아 풍경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다 소수박물관과 소수서원을 연결한 다리를 건너 박물관으로 향했다.

2004년에 문을 연 소수박물관은 모두 4개의 전시실도 꾸며져 있다. 첫 번째 전시실은 영주시 일대에서 발굴한 고인돌과 선돌, 바위그림 등의 고대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두 번째 전시실에는 공자와 주자 등의 흉상과 더불어 유교적 사상의 특징을 보여주는 유물이, 세 번째 전시실에는 향교에 관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네 번째 전시실은 숙수사에서 출토된 유물과 더불어 소수서원에 관한 역사적 흔적을 둘러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박물관 한편에 마련된 모형 디오라마는 조선시대의 풍기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박물관을 빠져나와 인근의 선비촌으로 들어서니 휴가철을 맞아 관광객을 대상으로 각종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가는 나뭇가지에 둥근 나뭇조각들을 붙여 잠자리와 새를 만드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민속놀이 공연이 펼쳐지는 등 선비촌 전체가 온통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다. 더욱이 최근에 보기 어려워진 짚신 만들기와 짚을 엮어 용마름를 만드는 과정을 한눈에 접할 수도 있었다.

▲ 선비촌에는 옛 사람들의 가옥과 생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단종 복위 운동을 했던 금성대군을 모신 금성단
어르신들에게 짚신 한 켤레를 선물 받은 김미화 씨는 보물이라도 얻은 듯 기뻐 어쩔 줄을 모른다. 빠르게 발전해 가는 문명의 이기 속에서 짚신을 직접 만져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웰빙 바람으로 전통적인 우리의 음식들이 재조명되듯이 짚신을 거실의 슬리퍼 대용품으로 이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선비촌에서 나와 길 건너편에 자리한 금성단을 찾았다. 금성단, 그 이름처럼 이곳은 세조의 동생인 금성대군을 모신 곳이다. 세조의 동생인 금성대군은 성삼문 등이 주도한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하자 삭녕에서 이곳 순흥으로 유배됐다. 그는 이곳에서 백두대간 상의 고개인 고치령을 통해 영월로 유배된 단종과 서신을 교환했다고 한다. 순흥에 있던 그는 당시 순흥부사이던 이보흠 등을 중심으로 2차 복위 운동을 주도했다. 순흥의 선비들이 대거 참여한 이 계획은 관노의 밀고로 인해 허망하게 끝났고, 순흥부도 폐부되고 말았다.

▲ 선비촌에서는 다양한 옛 문화 체험이 가능하다. 부채 만들기 체험.

▲ 선비촌에서 짚신 만들기 체험을 통해 짚신 한 짝을 얻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된 이 사건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학살됐으며 이후 2백년 후인 숙종 때가 되어서야 이곳에 단소를 설치하게 됐다. 단종을 복위하고자 하는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민중들은 두 사람을 그냥 떠나보내지 않았다. 이후 단종은 태백산의 산신으로, 금성대군은 소백산의 산신령으로 부활했다. 민중들은 이 두 사람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매년 소백산과 태백산 줄기가 만나는 고치령에 올라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현실에서의 억울함을 민중들이 대신 풀어 준 셈이다. 두 산신령을 모신 고치령은 기도에 효험이 있는지 지금까지도 760m 높이의 고개에 올라 두 산신령님께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금성단에서 빠져나와 금성대군의 위리안치지를 찾았다. 안치는 왕족이나 신분 높은 고위 관리들에게 적용된 유배형이다. 사실 안치에는 섬으로 유배를 보내는 절도안치, 거주지를 제한하기 위해 집 둘레에 울타리를 둘러치거나 가시덤불을 쳐 다른 사람의 출입을 막는 위리안치, 본인의 고향에서만 유배생활을 하는 본향안치 등이 있다.

순흥향교 맞은편 언덕에 자리한 금성대군의 위리안치지는 비좁고 옹색했다. 초가집 아래 우물 같은 공간을 만들어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했으며 주변에 탱자나무를 둘러쳐 외부인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요즘으로 말하면 일종의 감옥을 만든 셈이다. 저 곳에서 비참한 생활을 했을 금성대군을 생각하니 인생의 희비가 한 순간임을 깨닫게 된다. 한때는 왕자의 한 사람으로 살았지만 말년을 비참하게 보낸 그의 삶에 무상함이 느껴진다.

▲ 부석사 전경.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부석사에는 의상과 선묘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밤이면 실개천이 자장가를 들려주는 야영장
울적한 마음을 접어 두고 기분 전환도 할 겸 풍기의 명물인 인삼을 사기 위해 풍기인삼시장을 찾았다. 풍기읍 서부리에 자리한 인삼시장은 인삼 파는 가게가 한 곳에 밀집해 있는 곳이다. 인삼 파는 아주머니로부터 인삼의 효능과 특징, 구입 방법 등을 새겨듣고 인삼을 구경하다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 캠핑은 직접 음식을 해먹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된장찌개의 맛을 보고 있다.
어스름한 저녁 하늘 아래로 몇 채의 텐트가 더 늘었다. 더위에 쫓겨 시원한 그늘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다. 폭염의 날씨가 느는 것은 대기에 온실가스가 많은 탓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햇볕을 그대로 반사하는 아스팔트가 문제다. 이 아스팔트로 인해 땅은 호흡하지 못하고 비를 머금지 못하기에 우리의 지하수는 갈수록 고갈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람은 땅의 기운을 받고 자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맨땅 위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는 캠핑이야 말로 가장 땅과 근접한 아웃도어가 아닐까 싶다. 온몸으로 땅을 느끼고 대지의 기운을 호흡하는 삶, 차가운 대지를 적시던 밤이슬이 촉촉이 텐트를 적신다. 별이 속삭이는 하늘에 누워 실개천이 들려주는 자장가 소리를 들으며 눈을 붙였다. 신선한 공기에 나를 맡기고 대지와 호흡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휴식이고 삶이란 생각이 든다.

▲ 백두대간의 큰 고개인 죽령. 신라시대 개척됐다고 하며 이 고개를 통해 신라는 북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 새소리에 눈을 떴다. 피곤하고 잠을 덜 잔 것 같은 도시의 아침이 아닌 상쾌함이 느껴지는 자연의 아침이 신비롭다. 된장찌개와 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짐을 챙겨 서울로 차를 몰았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해야 하지만 이 활기차고 상쾌한 마음이 또 다른 한 주를 지탱해주는 보약인 셈이다. 삶은 늘 이런 활력소가 있어 행복한가 보다. 서울로 가는 길이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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