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꿀벌
사라져 가는 꿀벌
  • 신은정
  • 승인 2023.05.0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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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대량의 꿀벌이 사라졌다는 소식이 이어진다. 빈 벌통이 상황의 심각성을 전해준다. 인류가 살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꿀벌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첨단 기술의 이면을 비추는 영국의 SF드라마 <블랙 미러>의 ‘미움 받는 사람들’ 편에서 꿀벌 로봇이 나온다. 꿀벌이 모두 사라졌을 때 그 역할을 대신할 인공 꿀벌들. 드라마에서는 인공 꿀벌이 만들어진 의도와 다르게 무기로 사용되었을 때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것은 조금 더 먼 얘기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꿀벌이 모두 사라지고 꿀벌 로봇이 등장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두려움이 먼저 밀려온다.
지난해 국내에서 꿀벌 약 78억 마리가 사라지면서, 꿀벌 실종 사태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세계에서 처음 꿀벌이 실종됐다고 보고된 것은 2006년. 생각보다 오래된 문제다. 처음 미국에서 꿀벌이 갑자기 죽거나 사라지는 현상이 보고된 이후, 꿀벌군집붕괴현상인 CCDColony Collapse Disorder는 전 세계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우리나라에서는 꿀벌 100억 마리 이상이 사라지거나 폐사할 것이라는 어두운 미래가 그려지고 있다.

꿀벌을 ‘실종’시키는 원인들
꿀벌이 사라진 이유를 정확하게 특정할 수는 없지만, 추정할 수 있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가장 큰 원인은 기후 변화로 인한 연쇄작용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기후가 불안정해졌고, 기온과 강수량이 변화함에 따라 꽃이 핀 시기와 꿀벌이 활동할 수 있는 시기가 어긋나게 됐다. 가을철에 저온이 지속되면서 일벌들의 발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겨울철에는 고온이 지속되면서 꽃이 이른 시기에 개화해 봄철에 깨어나야 할 일벌들이 일찍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다가 돌아오지 못하기도 한다. 꿀이 제일 많이 생산되는 시기인 5월과 6월에는 폭우나 강풍 등의 영향으로 꿀을 제대로 먹지 못해 꿀벌들의 몸도 정상적인 면역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더군다나 따뜻한 겨울 기온 때문에 여왕벌이 이른 산란을 해 꿀벌 기생충인 응애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됐다. 꿀벌의 천적인 등검은말벌이 늘어난 것도 원인으로 본다. 한반도 기온이 상승하면서 아열대 지역에서 서식하던 외래종, 등검은말벌의 개체 수가 늘어난 것이다. 이로 인해 생태계가 깨지면서 꿀벌 수가 감소하고, 꿀을 만드는데 필요한 꽃가루의 종류와 양도 감소하게 됐다.
기후에 더해 농약과 살충제 등의 무분별한 사용이나 인간이 사용하는 화학물질도 꿀벌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꿀벌 응애를 퇴치하기 위해 다량의 살충제를 사용하면 꿀벌들의 생식력을 저하시키고 면역력을 약화시킨다. 응애를 잡기 위해 뿌리는 살충제에 응애는 내성이 생기고, 면역력이 약해진 애꿎은 꿀벌만 피해를 입고 있는 셈. 꿀벌 집에서 발생하는 병원균과 질병도 꿀벌의 감소와 실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금은 면역증강제가 없으면 꿀벌이 제대로 살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



세상에 꿀벌이 없다면
꿀벌이 사라지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천연 꿀이 사라짐은 당연하고, 식량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꿀벌 실종 사태는 양봉업계만 걱정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꿀벌은 꿀 1g을 모으기 위해 약 8천 송이의 꽃을 오간다. 꽃에서 수액을 섭취할 때 꽃가루를 몸에 묻히고 다른 꽃에 묻힌 꽃가루를 다시 전파하며 수분을 돕는 것. 식물의 수분과 영양분을 전달하는 매개 활동을 하는 꿀벌이 없으면 식물들의 번식과 생장이 어려워지고, 다양성도 줄어든다. 세계 100대 농작물의 70% 이상이 꿀벌의 도움을 받고 있는 만큼 꿀벌은 생태계와 농산물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과일, 채소, 견과류 등을 수확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꿀벌은 인류의 식탁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에 따르면 꿀벌의 수가 감소하면서 주요 작물의 생산량이 85% 줄어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올 초부터 기형 딸기가 자주 보인다. 꿀벌이 사라져 수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꿀벌의 몸값은 3배 넘게 뛰었고, 농작물의 가격도 오를 일만 남았다.
꿀벌은 인류와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다. 수분 매개활동을 하는 꿀벌에 의해 인류가 먹는 농작물의 70%가 얻어지고 있을 만큼 꿀벌은 식량 자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 세계적으로 꿀벌이 채취하는 꿀은 연간 185만 톤이며,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해마다 꿀벌은 700조 원 규모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몇 년 전, 꿀벌 대신 수분을 돕겠다는 드론이 등장했다. 정말 꿀벌 로봇을 만날 날이 머지않은 것일까. 미래에 태어날 아이들에게는 꿀벌 로봇을 보며 꿀벌은 실제로 있었던 곤충이라고 말해줘야 할까? 세계 곳곳에서 꿀벌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해마다 낯설어지는 날씨에 고통받는 것은 인간뿐만이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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