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독이는 숲, 경상남도수목원
마음을 다독이는 숲, 경상남도수목원
  • 고아라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2.12.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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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경상남도수목원

삶을 지나오다 보면 문득 숲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온다. 온몸을 끌어안듯 사방으로 피어난 잎사귀와 그 안을 파고드는 아늑한 햇살의 냄새를 거닐 수 있는 곳, 경상남도수목원에서 숲의 따뜻한 위로를 받으며 다시금 힘을 얻어본다.


올해 가을은 유독 짧게 느껴졌다. 카디건 하나 툭 걸치고 마스크없이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켤 수 있던 가을의 뒷모습이 아쉽기만 하다. 가을의 끝자락, 이미 차가운 바람이 두 뺨을 스치는 날씨지만 조금이라도 더 이 계절을 만끽하고자 숲속으로 향한다. 목적지는 도심 속 거대한 숲, 경상남도수목원이다.
경상남도수목원은 경남 진주시의 대천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체 면적이 1,015,953m2에 달한다. 수목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커다란 숲에 가까운 규모다. 이 거대한 숲에는 전문수목원, 화목원, 열대식물원, 무궁화공원 등 우리나라 온대 남부지역 수목 위주의 국내외 식물 3,490여 종이 보호받으며 서식하고 있다. 1993년 4월 5일 도립반성수목원으로 문을 연 뒤 2000년 2월에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했고, 2008년에는 제1회 산림박람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수목원이라고해서 나무와 꽃만 있는 건 아니다. 다양한 동물이 살고 있는 야생동물관찰원, 산림의 전반적인 정보를 살펴볼 수 있는 산림박물관, 전국 최초의 무궁화홍보관이 있는 무궁화공원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곳곳에 숨어있다. 수목원의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하루에 다 둘러보긴 어렵지만, 다행히 취향이나 주어진 시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코스가 마련돼 있다. 1시간이 소요되는 1~4코스, 2시간이 소요되는 5~7코스, 3시간이 소요되는 8~9코스, 수목원의 명소를 모두 둘러보는 4시간짜리 10코스 등 총 10개 코스다.


오랜 고민 끝에 야생 동물과 너른 잔디원, 메타세쿼이아길까지 돌아볼 수 있는 3코스를 선택한 후 출발점인 매표소 앞에 섰다.
입구에는 수목원 지도가 펼쳐진 게시판이 있는데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입이 떡 벌어진다. 산자락을 포함한 너른 숲 곳곳에 자연 명소는 물론, 테마공원, 동물원, 체험장, 박물관 등이 가득 들어차 있다. 1시간이 소요되는 3코스가 수목원의 극히 일부인 것만 봐도 얼마나 방대한 규모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3코스의 첫 번째 목적지인 화목원은 알록달록한 야생 꽃들이 펼쳐지는 공원이다. 겨울의 초입에 찾아온 탓에 사진에서 본 것처럼 화려한 꽃밭은 볼 수 없지만 가지런히 다듬어진 나무와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포토존이 있어 기념사진을 남기기 좋다. 초겨울 특유의 쓸쓸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와 드문드문 핀 선홍색의 장미도 매력적이다. 화목원을 지나자 잔디원과 메타세쿼이아 길이 양쪽으로 펼쳐진다. 노랗게 여문 잎이 터널을 만든 메타세쿼이아 길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바람이 한차례 불자 노란 터널이 일렁이며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카메라를 든 손이 절로 셔터를 누르는데, 어떻게 찍어도 명작이다. 길 중간중간에는 출사를 나온 사진 동호회 회원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다.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는 내내 오른 편에는 숨이 탁 트일 정도로 너른 잔디밭이 펼쳐진다. 소풍을 나온 어린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문득 도심 속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건 큰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잔디원은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작은 집처럼 지붕 아래 테이블과 벤치가 마련된 공간이 곳곳에 있어 진주 시민들도 즐겨 찾는 명소다. 테이블에 간식을 펼쳐놓고 가족과 오순도순 모여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메타세쿼이아 길이 끝나면 발길은 자연스레 생태온실에 닿는다. 330m2 면적의 온실 안에 저습지원, 축경암석원, 수생식물원 등으로 구분된 공간이 알뜰살뜰 모여있다. ‘식물’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에는 생김새도 삶도 제각각이다. 비슷한 것은 있어도 어느 하나 같은 것은 없어 넓지도 않은 온실 안을 꽤 오랜 시간 둘러봤다. 섬말나리, 비비추, 금낭화, 복수초 등 이름도 낯선 식물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며 발길을 붙잡는다.


온실 밖으로 나오자 이번에는 작은 광장이 반긴다. 야생동물관찰원의 시작점이다. 어떤 동물인지 가늠하기 힘든 낯선 울음소리가 새어 나와 호기심이 발동한다. 1989년에 개원한 야생동물관찰원은 동물원만 단독으로 구경해도 충분할 만큼 규모가 크고 동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총 11,840m2 면적에 40여 마리의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자연 그대로의 숲이 조성돼 있어 동물원이 아닌 그들의 터전을 방문한 느낌이다. 동물을 찾아 숲을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목소리 볼륨을 줄이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동물원에는 친숙한 산양과 사슴, 당나귀를 비롯해 화려한 색채의 날개를 가진 공작, 매서운 눈빛의 삵 등 다양한 동물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동물원 한쪽에서는 야생동물들의 질병과 부상을 치료해 주는 ‘야생동물 2차 진료소’가 이들의 삶을 돌보고 있다.




3코스의 마무리는 철쭉원이다. 연못을 곁에 두고 낙엽이 깔아놓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잔잔한 연못과 고즈넉한 정자가 눈길을 끈다. 지극히 평화로운 풍경에 발길이 절로 정자를 향한다. 정자에 걸터앉아 늦가을의 풍경이 그대로 비치는 수면을 바라보고 있으니 선조들이 풍류를 즐기기 위해 정자를 찾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따뜻한 노란색을 입은 나무들이 우거져 아늑하면서도 탁 트인 풍경과 시원한 바람에 몸과 마음이 상쾌해진다. 그간의 시름 같은 건 모두 두고 가라는 듯한 풍광이다. 이토록 멋진 마무리 코스가 또 있을까. 그렇게 철쭉원을 나와 다시 매표소로 돌아간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이 숲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다. 각각의 매력을 지닌 동식물들의 이름표를 보고 검색해 보면 이들이 어떻게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나름대로의 삶을 지탱해왔는지 알게 된다. 그렇게 저마다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자연이 더 친근하고 아늑하게 느껴진다. 그마저도 번거롭다면 숲해설사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방문 전 미리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숲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수목원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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