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지어진 문화공간, 청송 소헌공원
역사로 지어진 문화공간, 청송 소헌공원
  • 신은정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2.11.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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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소헌공원


청송 시내 한편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아이들이 도란도란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이곳은 소헌공원이다. 규모가 크지 않은 덕분에 아늑한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옛 마루에 앉아 있는 모습이 어딘가 이질적이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지역을 여행하며 역사의 터를 돌아볼 때면 매번 새로운 배움을 얻고 간다. 청송 주민이 자연스레 운봉관 마루에 눕는 일이 낯선 이에게는 새로운 장면이듯이. 일몰이 멀지 않은 시간, 드리워진 햇살이 공원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청송의 문화 공간이자 휴식 공간으로 태어난 소헌공원은 역사를 되살려 지어진 곳이다. 조선의 제4대 국 왕인 세종의 비, 소헌왕후의 본관이 청송이기에 소헌공원이라 이름 지었다. 방문자센터에서 소헌공원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나란히 세워진 10기의 비석이다. 월막리 비석군은 지방관 등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것이며, 원래 청송향교 서쪽 담장 밖에 있었으나 2011년 소헌공원이 조성되며 이곳으로 왔다.


비석군을 지나쳐 잔디밭을 몇 발자국 걸으면 운봉관에 닿는다. 운봉관은 고려·조선시대 때 각 고을에 설치되었던 관사館舍 건물로 객관이라고도 불렀다. 정당은 임금님이 있는 대궐을 향해 절을 올리는 장소로 사용했고, 좌·우익사 방은 고을을 방문한 중요한 손님들이 묵어가는 곳이기도 했다. 운봉관은 명성왕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을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활동이 일어난 시기에 청송의 유생들이 청송의진을 결성했던 역사적인 장소로 전해져 더욱 의미가 있다. 1428년 처음 건축된 운봉관은 일제강점기에 정당과 서익사가 철거되었으나 2008년 고증을 통해 복원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청송 주민들의 휴식처이자 문화 공간이 된 자리. 마루에 앉아 부쩍 다가온 가을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잠시 운봉관에 앉아 가을바람을 즐겨본다.



마주한 자리에는 운봉관과 같은 해에 지어진 2층 누각, 찬경루가 있다. 「찬경루기讚慶樓記」에는 누각에서 보광산에 있는 소헌왕후의 시조묘를 바라보며 찬미한다는 뜻에서 찬경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나와 있다. 찬경루 옆에는 청송 심씨의 사적비가 굳건하게 서있고, 앞으로는 연못의 터가 남아있다.
소헌공원의 푸른 잔디밭을 거닐다 보면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시멘트 건물들, 아스팔트 길 가운데 당당히 자리를 차지한 소헌공원은 청송이 기억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여실히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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