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이 간직한 몽환적이고 비밀스러운 풍경, 주산지
청송이 간직한 몽환적이고 비밀스러운 풍경, 주산지
  • 신은정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2.11.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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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주산지


해가 뜨기도 전인 이른 새벽에 졸린 눈을 애써 달래며 숙소에서 나왔다. 주산지에 도착하기 전에 해가 먼저 고개를 내밀까, 조급한 마음에 달리는 차 안에서 연신 창밖만 내다본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주산지로 향하는 길가에서 사과를 파는 상인들은 벌써 분주하고, 식당들도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 주산지를 찾은 외지인은 우리가 처음인 듯하다. 일찍 오셨다며 사과를 건네는 상인. 벌도 탐내는 청송의 꿀맛 같은 사과를 입에 넣고 어수룩한 어둠이 가시지 않은 주산지길에 오른다.

주차장에서 주산지까지는 천천히 걸으면 20분 정도 걸린다. 이른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못다 깬 잠을 쫓아본다. 다람쥐인지 청설모인지, 너무 날쌔서 형체도 확실히 보이지 않는 친구들이 아침부터 열심히 나무를 연주하는 중이다.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지만, 잎이 부딪히는 소리는 맑다. 스산했던 새벽 공기가 물러나고 여명이 밝아오니 새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부지런히 걸으라는 지저귐에 발걸음에도 점점 속도가 붙는다.



하늘을 가리던 나무들의 간격이 넓어지자 주산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주산지를 병풍처럼 둘러싼 주왕산도 한눈에 담긴다. 흘러가던 구름이 주왕산에 누워 잠시 쉬고 있다. 명성이 자자한 물안개 낀 주산지의 모습은 아니지만, 선명하게 닿아 있는 물과 나무의 조화가 멋스럽다. 기온이 오락가락하는 터라 아직 가을이 완연하게 물들지는 않았지만 곳곳에 단풍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사계절 다른 풍경으로 맞이하는 주산지는 어느 계절에 와도 그때만 즐길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주산지는 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주산지로 다가서자 주산지비가 보인다. 주산지비는 주산지를 축조할 때 공이 컸던 이진표와 임지훤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송덕비로, 주산지 송덕비라고도 불린다. 전면에 “정성으로 둑을 쌓아 물을 가두어 만인에게 혜택을 베푸니 그 뜻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한조각의 돌을 세운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1721년 만들어진 주산지는 2022년에도 사람들이 찾는 장소로 남아 있으니, 주산지비의 염원대로 뜻과 의미가 오래도록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다.


경치를 한껏 즐기고 물가로 다가섰다. 물에 잠겨 자생하는 왕버들의 기이한 몸짓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주산지에는 100년이 넘은 왕버들도 자리한다. 물속에 묵직하게 뿌리를 내린 버드나무들. 묵묵한 근엄함이 느껴진다. 모두 드러내고자 하는 이 시대에 정말 중요한 것은 수면 위가 아니라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버드나무를 통해 배운다. 주산지를 한바퀴 돌아보면 비교적 넓은 휴식공간이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간혹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다. 주산지 인근에 야생동물보호구역이 있어 숲속에 숨어살던 친구들이 얼굴을 보여주기 때문. 혹시 방문객 때문에 놀라진 않을까, 숨을 죽이고 주위를 둘러본다.

주산지는 마르지 않는 생명수다. 큰 가뭄이 와도 물이 마르지 않아 이때까지 단 한 번도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한다. 이는 저수지가 만들어진 땅에 이유가 있다. 주산지는 용결응회암이라는 암석 위에 만들어졌다. 화산재가 엉겨 붙어 만들어진 이 암석은 광물이 치밀하게 붙어있어 물이 통과하기 어려워 물이 잘 새지 않는다고. 보통의 저수지가 종이컵에 담긴 물이라면 이곳은 유리병에 담긴 셈이다. 선조들의 지혜로 채운 저수지가 오늘도 후손의 감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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