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품은 곳
이야기를 품은 곳
  • 고아라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2.10.01 1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주 순례길

교회와 천주교 박해가 극심했던 시절, 신자들의 아늑한 은신처가 되어준 공주. 곳곳에 남아있는 흔적을 따라 걷다 보면 그들의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가 시작된다.

공주제일교회
공주지역 최초의 감리교회로 미국 선교사인 맥길이 1903년 설립했으며 건물은 1931년에 건축됐다. 충청지역 감리교 선교의 중심지는 물론, 학교, 병원, 유치원을 함께 운영하는 등 교회의 역할뿐만 아니라 근대화의 서구적 역할까지 하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독립운동을 지원했으며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와 조병옥 박사가 이 교회를 다녔다. 한국전쟁 때 심하게 파손되었으나 벽체나 굴뚝 등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재건해 당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또한 개축 당시 종탑 일부의 타일 처리, 증축 당시 설치된 이남규 작가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로마시대 카타콤을 연상시키는 개인 기도실 등은 건축학적으로 가치가 높아 2011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공주제일교회는 예배당과 함께 공주 기독교 박물관이 마련돼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전시실에 교회 초기 예배당의 모습과 공주를 빛낸 사람들, 공주제일교회를 중심으로 펼쳐진 만세 운동의 기록 등이 전시돼 있다.
공주시 제민1길 18



ⓒ한국관광공사

황새바위 순교성지
바위 위로 소나무가 늘어져 있어 황새들이 서식하는 곳이라 하여 황새바위라 불리는 이곳. 일설에는 죄인들이 목에 씌우는 칼인 ‘항쇄’를 차고 바위 앞에 끌려가 처형되었다고 하여 항쇄바위라고도 한다. 어쩐지 긴장감과 두려움이 감도는 이름처럼 실제 이곳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당시 모진 고문 속에서도 끝까지 신념을 지킨 신자들이 처형된 장소다. 이곳에서 순교한 이는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만 248명이며 그 외에도 수많은 천주교인이 순교했다. 황새바위 순교지는 1980년 성지 조성 사업이 추진되면서 순교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1985년 순교탑과 무덤 경당이 완공되었으며 12사도를 상징하는 12개의 빛돌과 성모동산, 십자가의 길, 성체조배실 등이 들어섰다. 이후 2008년 교동 본당에서 독립하면서 독립성지가 되었고 충청남도 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됐다. 아픈 과거가 묻힌 탓에 방문이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막상 찾아가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사색을 즐기며 산책하기 좋다. 가을 빛으로 물든 황새바위 순교성지의 언덕을 천천히 오르다 보면 어느새 몸과 마음이 경건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공주시 왕릉로 118

3.1 중앙공원
공주지역 최초의 공원으로 원래 이름은 앵산공원이다. 유관순 열사가 어린 시절 2년간 다녔던 영명중·고등학교 바로 앞에 자리 해 있다. 언덕 위에는 굳건한 의지가 깃든 표정의 소녀, 유관순 동상이 공주 시내를 내려다보듯 서 있다. 이 동상은 공주영명여학교 수료 100주년을 기념해 2018년에 건립되었다. 공원의 규모 자체는 아담하지만 독립투사들의 모습을 담은 석상과 유관순 동상, 유관순 열사의 일대기와 연보 등이 전시돼 있어 숭고한 희생정신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중앙공원은 공주의 벚꽃 명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봄이면 공원 전체에 옅은 분홍빛 꽃이 만발해 마치 다른 세상에 온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공주시 중동 257

영명 역사관
유관순 열사의 발자취와 함께 공주의 근대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영명고등학교 내에 자리해 있다. 영명고등학교는 1906년 미국 선교사 윌리엄이 개교해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지녔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도 민족 교육을 통해 독립정신을 길러주어 유관순, 유우석, 김현경, 유예도, 조병옥, 노마리아, 김관회 등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배출했다. 학교 입구로 들어서면 오래전 영명학교 학생들이 입었던 교복과 교과서 등 옛 학교 물건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작은 전시실을 지나면 영명 역사관이다. 학교 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잠겨 있으며, 방문 전에 미리 학교 측에 연락해두어야 한다. 영명 역사관 내부 규모는 크지 않지만 공주시와 영명학교, 유관순 열사 등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알차게 전시돼 있다. 특히 유관순 열사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그녀의 업적뿐만 아니라 가정환경, 학창 시절 등 소소한 이야기까지 한눈에 보기 좋게 잘 정리돼 있다.
공주시 영명학당2길 33


구 선교사 가옥
영명고등학교에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숲길로 향하다 보면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정갈한 붉은색 벽돌 건물을 만날 수 있다. 미국감리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사택인 구 선교사 가옥이다. 미국인 선교사 샤프 목사가 설계해 1921년 건축됐으며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으로 지어졌다. 당시 공주 지역 최초의 서양식 주거용 건물이라 큰 관심을 모았다고 한다. 공주 내에서 볼 수 없던 독특한 건축 양식과 서양인을 보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자주 몰려들기도 했다. 원래 구 선교사 가옥 주변에 6채의 학교, 병원 및 선교부 건물 등 다른 건물이 몇 채 더 있었으나 하나둘씩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아있다. 건물이 노후되면서 현대식에 맞춰 지붕과 내부 마감을 개조하긴 했으나 전반적으로 옛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제233호로 지정됐다. 영명고등학교에서 구 선교사 가옥으로 가는 길목에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사애리시 교사 부부와 유관순 열사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사애리시 선교사 역시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구 선교사 가옥에 머물렀다.
공주시 쪽지골길 18-13


ⓒ공주시

중동성당
공주지역 최초의 천주교 성당으로 1897년에 설립됐다. 초대 주임인 기낭Guinand 신부가 현재 위치의 기와집과 초가집을 매입하고 개조해 성당 및 사제관으로 사용했다. 원래 이름은 공주성당이었으나 1982년 교동 본당을 분리하면서 현재 이름인 중동성당이 됐다. 이후 제5대 주임인 최종철 신부가 1937년 중국인 기술자들과 함께 직접 벽돌을 구워 고딕건축 양식으로 새롭게 건물을 지었으며 사제관, 수녀원 등을 완공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꼭 천주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둘러보기 좋은 명소다. 전통 목조 건축에서 현대건축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고딕 양식 건축물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언덕 위에 자리해 고즈넉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는 덤이다. 아치형 출입문을 지날 때면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중동성당의 매력은 밤이면 배가 된다. 정갈한 붉은 벽돌 건물에 조명이 켜져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 야간 산책이나 데이트 코스로도 제격이다.
공주시 성당길 6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