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인 속도 경쟁, 누구를 위한 등반인가
살인적인 속도 경쟁, 누구를 위한 등반인가
  • 글·김성중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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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1일 국내 산악계는 슬픔에 휩싸였다. 여성 산악인 고미영(41, 코오롱스포츠) 씨가 8000m급 14좌 중 11번째로 도전했던 낭가파르밧(8125m)에서 등정 후 하산하는 중 추락사했다는 비보였다. 고산등반이 하산하는 길에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고 하지만, 이제 단 3개의 봉우리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비극이 발생한 것일까.

고미영 씨는 스포츠클라이밍을 벗어나 고산등반에 전력을 다한 지 만 3년도 안 된다. 하지만 그는 2006년 10월 초오유를 시작으로 2009년 6월 다울라기리 등정까지 무려 10개의 8000m급 봉우리를 올랐다. 고산 전문 산악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강행군이었다.

이는 같은 여성으로서 14좌 스타트를 먼저 끊은 오은선(43, 블랙야크) 씨와 함께 둘 중 누가 ‘최초의 14좌 완등 여성 산악인이 될 것인가’라는 산악계의 큰 이슈거리로 떠올랐다. 직간접적으로 둘은 서로 14좌 완등을 위한 경쟁을 했고, 이는 엄청난 속도로 진행됐다.

두 여성 산악인의 14좌 완등이 초읽기에 들어서자 소속사들의 경쟁도 뜨거워졌다. <블랙야크>와 <코오롱스포츠>는 임직원을 파견해 두 여성 산악인을 응원했다.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홍보 마케팅도 이어졌다. 입산료만 해도 적어도 수천만 원, 경비까지 합쳐 전체적으로 몇 억 원이 필요한 원정등반임을 감안해 본다면 실로 엄청난 지원이 그 둘에게 쏟아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고미영 씨는 낭가파르밧에서 14좌 등정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업체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무리한 14좌 경쟁
우리는 그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14좌’, ‘최초’라는 수식어가 강하게 작용하는 국내 산악계의 흐름이 서로에게 무리한 경쟁을 이끈 건 아닌지 아쉽다. 더불어 산악계에서는 후원사들의 직간접적인 관여도 지적하고 있다. 아무리 전폭적인 후원을 받더라도 등반은 오로지 본인의 의지임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매번 등반할 때마다 후원사를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 그가 추락사하게 됐는지에 관해서도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국내 내로라하는 고산 전문 산악인들조차 “현장에 없던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원정대가 사고 경위에 대해 설명하는 게 가장 현명하다”며 이에 대해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

2년 전 에베레스트 등정을 마치고 한창 14좌의 꿈을 키우던 그가 사석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산은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산이 나를 받아주는 것이다”라며 겸손한 자세로 다시 등반길에 올랐던 고미영 씨.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속도 경쟁에 휘말리며 히말라야에 혼을 남기고 돌아와야 했다.

고미영 씨의 시신은 7월16일 김재수 등반대장 등 7명으로 구성된 구조대에 의해 베이스캠프로 옮겨진 후 현지에서 운구절차 등을 거쳐 7월19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장례식은 서울 국립의료원에서 대한산악연맹장으로 치러졌다.

발인이 끝난 후 시신을 화장해 절반은 전북 부안에 있는 선산에, 나머지 절반은 14좌 등반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벌였던 오은선 씨에게 전해져 고인이 오르지 못한 3개의 8000m급 봉우리에 뿌려진다고 한다. 살아생전 항상 호쾌한 웃음을 보여주던 여장부 고미영. 진심으로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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