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산책로, 나리분지 숲길
신들의 산책로, 나리분지 숲길
  • 고아라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2.07.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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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나리분지 숲길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이라는 나리분지 숲길.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원시림과 지천에 흐드러진 야생화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울릉도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된다.


울릉도 유일의 평지라 알려진 나리분지는 화산 폭발로 태초의 울릉도가 생겨날 당시 분화구에 화산재가 평평하게 쌓이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땅이 척박해 농사를 짓기 힘들었던 개척민들은 주변에 널린 섬말나리의 뿌리를 캐 먹으며 배고픔을 달랬다. 이 마을이 ‘나리’라 불리게 된 이유다. 높은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사람의 발길이 드물었던 나리분지의 마을은 자연스레 고립되었다. 모순적이게도 그 덕분에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이 형성되었고 이를 구경하기 위해 관광객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천혜의 자연 속을 거닐며 힐링을 즐길 수 있는 숲길이 여기, 나리분지에 숨어있다.
나리분지 숲길의 시작점은 당연히 나리분지다. 천부면에서 출발하는 아담한 버스가 나리분지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이다. 몰려드는 관광객에 비해 버스가 너무 작은 것 아닌가 싶겠지만, 길을 달리다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길이 좁고 경사가 가팔라 웬만한 버스는 낑낑대기 십상이다. 15분가량 곡예를 넘듯 달리다 보면 탁 트인 평지가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나리분지 숲길은 입구에서 시작해 알봉 분지를 거쳐 신령수에 이르는 트레킹 코스로 길이는 약 2km다. 비교적 거리가 짧고 경사가 평탄해 여유롭게 산책하듯 돌아볼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하늘 높이 자란 너도밤나무에 둘러싸이게 된다. 바깥세상과 차단된 듯 고요해 온전한 힐링을 누릴 수 있는 길이다. 너도밤나무가 내어준 시원한 그늘 아래 콧노래를 부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겨본다. 초여름의 햇살도 파고들지 못할 만큼 울창해 괜스레 든든해진다. 울릉도에는 유독 너도밤나무가 많은데, 그 이유에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울릉도에 처음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할 때 산신령이 나타나 밤나무 100그루를 심지 않으면 큰 화를 입게 될 것이라 말했다. 섬사람들 은 열심히 밤나무를 심었지만 마지막 한 그루를 채우지 못했다. 밤나무의 숫자를 세어 본 산신령이 99개인 것을 확인하고 벌을 내리려 하자 옆에 있던 작은 나무가 급히 ‘나도 밤나무!’라 외쳤다. 이에 산신령이 ‘너도 밤나무냐?’고 되물었다고. 그 후로 이 나무는 너도밤나무라 불리게 됐다. 나무 이름의 귀여운 유래를 떠올리며 싱글벙글 숲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탁 트인 원시림이 펼쳐진다. 오랜 기간 인간의 간섭도, 재해도 없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성인봉 원시림이다. 정돈되지 않은 자연의 맨얼굴은 어디선가 공룡이 튀어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다. 생경한 풍경에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걸음을 옮긴다.


신령수를 향해 걷는 내내 이름 모를 낯선 꽃과 나무들이 길을 안내한다. 각종 양치식물들, 섬단풍나무, 우산고로쇠, 큰두루미꽃, 윤판나물아재비 등 평소 보기 힘든 식물이 가득하다. 안내판에 표기된 이름과 사진을 실물과 매치해 보는 재미가 쏠쏠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다가 투박한 초가집에 시선을 빼앗긴다. 중요민속자료 제257호로 지정된 ‘울릉 나리동 투막집’이다. 투막집은 눈이 많이 내리는 울릉도의 겨울을 나기 위해 집 주위를 우데기로 둘러쌓는데, 개척 당시에 지어졌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투막집 뒤로는 나리분지 숲길의 목적지인 신령수가 자리하고 있다. 작은 동굴처럼 생긴 공간에 시원한 물줄기가 떨어지는 모습이 신성하게 느껴진다. 목을 축이기 위해 약수를 받아 들이켜니 짜릿한 차가움이 숲길을 오르느라 뜨거워진 몸 구석구석 퍼진다. 내친김에 신령수 앞에 마련된 족욕탕에도 발을 담가 본다. 트레킹 내내 볼거리가 많아 미처 느끼지 못했던 피로감이 단숨에 풀린다.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청량감에 머리까지 맑아지는 기분이다.
울릉도를 방문하기 전 ‘울릉도에 가면 눈으로만 보지 말고 꼭 걸어봐라’고 했던 울릉도 여행 경험자들의 조언이 문득 스친다. 그저 바라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지만 직접 울릉도의 속살을 누비고 나니 진짜 울릉도를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거칠고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그 안은 한없이 여리고 순수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어느 여행지를 방문해도 겉과 속의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특히 울릉도를 여행한다면, 어디든 꼭 걸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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