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자연 속 피어난 예술
청정 자연 속 피어난 예술
  • 고아라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2.06.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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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문학 기행

인제의 모든 풍경은 시의 한 소절을 떠오르게 한다. 인제에서 나고 자란 문학인들이 남긴 작품들, 그 흔적을 따라 문학 기행을 시작해 본다.

박인환 문학관
인제산촌민속박물관과 나란히 위치한 박인환 문학관은 2012년에 설립됐다. 한국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손꼽히는 박인환 시인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으로, 그가 11세 때 서울로 이주하기 전까지 살았던 생가터에 세워졌다. 박인환 시인은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 유명한 시를 남긴 후 1956년 31세에 심장마비로 요절해 많은 이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해방 후 대학교를 중퇴하고 서울에서 단돈 5만 원으로 시인 오장환이 운영하던 서점을 인수해 <마리서사>를 열었다. 마리서사에는 문인들의 작품과 문예지, 화집 등이 갖추어져 있어 시인과 소설가들이 자주 찾는 아지트였다. 조병화, 배인철 등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인들도 제집처럼 드나들며 문학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또한 마리서사는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이 일어나게 된 발상지기도 하다.

박인환 문학관은 시인의 유작이나 유품을 연대별로 전시해 놓은 일반 문학관과 달리 역사적 문화 및 명소를 경험해 볼 수 있도록 꾸민 것이 특징이다. 특히 문학관 1층에는 박인환 시인이 스무 살 무렵 서울 종로에 세운 마리서사를 비롯해 그가 자주 찾던 주막과 위스키 바, 늘 거닐던 거리 등이 현장감 있게 재현돼 있다. 박인환 문학관으로 이어지는 거리는 ‘박인환 거리’를 조성해 그가 남긴 시와 조형물을 감상하며 산책도 즐길 수 있다. 특히 건물 출입구에 세워진 박인환 시인 동상이 눈길을 끈다. 코트를 걸치고 넥타이를 휘날리는 모습에 만년필을 쥔 손과 시상을 떠올리는 듯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매주 월요일과 추석 당일, 공휴일 다음 날은 휴관이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관람료는 무료이니 부담 없이 방문해 보자.
강원 인제군 인제읍 인제로156번길 50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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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초 서예관
근현대 한국 서예 역사상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는 여초 김응현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곳. 여초는 ‘처음과 같다’는 의미로, 한결같이 글씨 수련에 전념했던 김응현 선생에게 꼭 맞는 호다. 그는 사고로 오른손을 다친 후 왼손으로 쓴 작품을 모아 전시를 열기도 했다.

ⓒ한국관광공사

여초서예관을 방문하면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외관에 먼저 압도된다.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할 정도로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고 있으며 <2012 올해의 건축 BEST 7>에 선정되기도 했다. 여초서예관을 설계한 건축가는 김응현 선생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고상하고 순결한 느낌이 외관에 잘 녹아들 수 있도록 지었다. 주변에 소나무 숲을 조성했으며 바깥 건물은 지면에서부터 한 층 띄워 올렸다. 전시시설이 지면에서 분리되면서 생겨난 빈 공간에 자연경관을 끌어들여 마치 자연과 건축물이 하나처럼 어우러지도록 한 것. 안쪽 야외공간에는 얕은 연못을 조성했는데, 건물 외벽에 새겨진 김응현 선생의 작품이 고스란히 비춰 거대한 작품처럼 보인다. 이처럼 고고한 자연의 숨결과 어우러지는 조화는 건물 내부까지 이어진다. 통유리창을 통해 연못과 소나무가 펼쳐져 자연 속에서 전시를 관람하는 듯한 기분이다.

ⓒ한국관광공사

전시공간으로 들어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여초생애관>이다. 여초 선생의 작품 활동에 쓰인 다양한 서화 용구를 비롯해 안경, 돋보기, 담뱃대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유품들이 반듯하게 진열돼 있다. 이곳에서는 여초 김응현 선생의 강의하던 육성이 흘러나와 생생한 관람을 즐길 수 있다. 2층에 올라서면 여초 김응현 선생의 작품 133점이 전시된 <여초 작품관>이 등장한다. 근현대 한국 서단 최고 대가의 명품 글씨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기획 전시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다양한 주제의 전시도 종종 열린다. 진행 중인 기획 전시는 방문 전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과 명절에 휴관하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강원 인제군 북면 만해로 154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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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마을
만해마을이라고 하여 작은 시골 동네를 떠올렸다면 깜짝 놀랄 것. ‘마을’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거대하고 세련된 건축물이 가득하다. ‘불교문화와 현대 문화가 어우러진 복합문화 단지’라는 설명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다. 만해마을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불교 대선사, 시인, 민족운동가로 활동한 한용운 선생을 기리고 그의 불교사상과 높은 문학 혼을 계승하기 위해 만든 복합문화 단지다. 사찰인 만해사를 중심으로 만해 문학 박물관과 숙박이 가능한 문인의 집, 만해 학교, 심우장들이 모여있다. 그중에서도 만해 문학 박물관은 만해마을을 방문했다면 꼭 들러야 하는 명소다. 입구를 지키고 선 흉상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만해 한용운 선생의 삶과 <님의 침묵> 등 다양한 작품 등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1층 상설전시실은 만해 선생의 친필 서예 및 작품집을 비롯해 생애까지 총망라한다. 전시 공간은 모던하면서도 아늑하게 꾸며져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다. 박물관 밖을 나서면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 연못이 나타난다. 연못 주변으로 벤치가 마련돼 있어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며 잠시 쉬어가기 좋다.

ⓒ한국관광공사

문인의 집은 문인들을 위한 숙소이자 집필실이다. 속세를 벗어나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서 창작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2013년부터는 일반일에게도 개방돼 누구나 예약을 통해 숙박을 할 수 있다. 총 47개 객실을 갖추고 있으며 사찰음식이 준비된 식당도 마련돼 있다. 강 쪽을 향하고 있는 객실에서는 북천과 내설악의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져 특히 인기가 많다. 로비와 복도 등 공용 공간에는 각종 문인과 만해대상 수상자들의 작품이 걸려 있어 전시를 관람하는 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꼭 숙소에 머물지 않더라도 북카페, 산책로, 광장 등 편의시설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어 내설악의 자연환경 속에서 마음 편히 쉬어갈 수 있다.
강원 인제군 북면 만해로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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