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강이 곁을 내어주는 길
소양강이 곁을 내어주는 길
  • 신은정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2.06.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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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소양강 둘레길 3코스

인제를 유유히 흐르는 소양강을 따라 생명이 숨쉬고, 자연이 자라난다. 이 푸른 광경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소양강 둘레길 3코스를 따라 걸었다.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 ‘소양강 처녀’ 가사 중

작곡가 반야월은 ‘소양강 처녀’의 노랫말에 조각배를 타고 소양강을 흐르며 느낀 인상을 담았다고 한다. 인제에 방문하자마자 소양강에서 만난 감정을 가사에 담고자 했던 마음을 이해했다. 저 너른 소양강에 닿으면 무엇이든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조각배도 없는 상황에 어떻게 소양강에 가장 가까이 닿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인제군이 열심히 닦아놓은 소양강 둘레길을 발견했다.


인제 소양강 둘레길은 소양강의 상류지역에 만든 둘레길로, 3코스로 나누어져 있다. 1코스는 살구미마을에서 시작해 돌탑과 들꽃을 만날 수 있는 정겨운 코스로 총 8.5km를 걷는 길이다. 산을 넘어가는 하늘길과 강변을 따라 걷는 내린길로 구간이 나누어져 있고, 하늘길과 내린길을 연이어 걸으면 원점회귀가 가능하다. 2코스는 가장 완만한 코스로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길이며 총 9km다. 38대교부터 시작해 전망대, 충혼비, 이정표를 지나 소류정에 도착한다.
이번에 선택한 3코스는 총 4.9km의 길로 소양강변을 끼고 걸어 소양강을 가장 가까이에서 오래 감상할 수 있다. 가끔 길이 다소 험한 편이라 트레킹 장비를 갖추고 가는 것이 좋다. 3코스는 자유수호희생자위령탑공원에서 시작해 전망대, 용바위쉼터, 바람골, 병풍폭포바위를 거쳐 군축교로 향한다. 하지만 이번 트레킹은 색다르게 감상해 보고 싶어 군축교에서부터 오르기로 마음을 먹는다.

인제대교 옆을 지키는 군축교에 도착했다. 군축교에 올라 바라보는 소양강의 모습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차로 볼 수 없는, 두 다리로 닿아야만 볼 수 있는 소양강의 숨겨진 풍경이 궁금해 서둘러 3코스로 향한다. 군축교의 끝에서 비밀스러운 소양강 둘레길 3코스의 입구에 도착했다. 안내판에는 도착점이라고 되어있지만, 나에게는 시작점이다. 안내되어 있는 코스를 다시 한번 살핀 뒤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한다.
군축교에서부터 오르기 시작하면 첫 구간은 다소 험한 길이다. 지난 계절에 떨어진 낙엽이 길을 푹 덮어놓는 바람에 이 길이 맞나 하고 잠시 확신을 잃게 되는 순간도 있지만, 고개를 돌리면 함께 가는 듯한 소양강이 맞다고 대답해 주니 조심조심 한 걸음씩 디뎌본다. 마치 원시림을 걷는 듯이 이리저리 솟은 나무들이 뜨거운 햇빛을 가려준다. 자연이 그대로 있는 구간이 라 나무들이 시야를 가리고 곳곳에서 나타나는 벤치가 잠시 쉬었다 가라고 유혹하지만, 용바위쉼터가 있는 용소까지 가면 탁 트인 풍경을 볼 수 있다 해서 이 길을 묵묵히 오른다. 3코스의 첫 목적지인 병풍폭포바위를 만났지만 시원하게 흐르는 물줄기는 만나지 못했다. 또르르 떨어지는 물소리를 등지고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오르락내리락하는 험한 구간을 견디다가 들꽃이 푸르게 펼쳐진 평지를 만나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3코스 군축교에서 바람골까지는 마치 개척되지 않은 길을 걷는 듯, 나만 아는 비밀의 공간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너무 유명해서 사람들이 붐비는 트레킹 코스가 싫다면 이곳에 숨어들어와 보길 추천한다.
다듬어진 길이 등장하면 환호가 나온다. 시야를 가리던 울창한 나무의 간격이 점차 넓어지고, 그 사이로 소양강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인내의 구간에서 참고 걸어온 만큼 보상해 주는 듯 용소와 용바위쉼터의 풍경은 가히 절경이다. 용소龍沼라는 이름은 용이 있는 곳이라 해서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용소 부근에서 부정한 짓을 하면 용이 노해 비를 내리게 한다고 믿었고, 가뭄이 계속되면 이곳에서 제를 올렸다고 한다.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곳에서 한없이 소양강을 내려다본다. 갈수기라 평소보다 더 드러난 바닥이 마치 해변의 백사장 같아 초록빛을 머금은 소양강과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험난했던 시작보다 편해진 길을 따라서 산책하듯 3코스의 후반전을 걸어본다. 오솔길을 지나서 3코스의 끝에 다다르자, 아쉬운 마음을 안고 인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로 발길을 옮겼다. 흘렸던 땀들을 깨끗이 씻어주는 바람이 얼굴에 닿는다. 인제를 관통하는 소양강은 발아래에서 유유히 흐르고 있다.
소양강 위를 떠가지는 못했지만, 자연을 밟으며 소양강과 같은 길을 흘러 마지막 목적지인 자유수호희생자위령탑 공원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한국전쟁에서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자유수호희생자위령탑과 더불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헌신한 이들을 기리기 위한 참전유공자기념탑 등이 모여 있다. 바로 옆 살구미교 아래에는 소양강 인제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군민들도 보인다.
3코스를 다 걷고 나니 다른 코스도 궁금해진다.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물든다는 소양강 둘레길의 다른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다음 인제 여행을 계획하며, 얕아진 소양강이 얼른 더 차오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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