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이상일
사진가 이상일
  • 글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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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므니, 나의 어머니

이상일.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시절이었다. 쪼글쪼글한 할머니 사진과 함께 <으므니> 라고 적힌 책을 통해서. 본능적으로 <으므니>가 그의 어머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어쩐지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쓴 것 같은 그 세 글자는 어둡고 꺼슬한 흑백이미지와 함께 무게를 가늠할 수 없게 다가왔다.

울먹임을 애써 참으며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어머니’의 느낌이랄까. 열세 살부터 시작돼 서른이 되기까지 이상일의 소년기와 청년기를 관통했던 삶은 고독과 절망 그리고 생존의 위협이 전부였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먹기 전보다 먹은 후가 더 허기진 황야의 이리처럼 대구와 부산의 뒷골목을 헤매던 그는 군대를 제대하면서 어머니의 품으로 귀환한다. 이는 곧 세상으로의 귀환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두 손에 카메라를 들고 어머니를 찍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야 간신히 볼 수 있던 어머니였다. 가난이 싫고 가난을 물려줬다고 더 미워하던 어머니였다. 동시에 어서 빨리 자라 어머니를 고생에서 해방시키고 싶었다. 오늘하루 땟거리 걱정 없이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이십년 가까이 보지 못했던 어머니는 보고 또 보아도 그리웠다. 어쩌면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그는 끊임없이 어머니를 필름에 새긴다.

세상과 그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이자 이 넓은 세상에서 그의 여윈 몸을 뉘일 품인 어머니는 <어머니>(1990)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서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것에 대한 반성은 <망월동>(1993)으로 새겨졌다. 그는 사건사고 현장 대신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 어떤 기교도 없이 세상에 발가벗겨진 채로 고백하는 그의 사진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어머니>는 이상일 개인의 어머니가 아니라 우리들, 대한민국의 어머니로 확장되어 <으므니>(1995)로 이어진다.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살과 함께 주름의 깊이만큼 처진 젖가슴을 드러낸 포트레이트는 우리 어머니들의 감내하는, 인내하는 삶을 오롯이 보여준다.

모유 수유라는 생물학적인 이유와 더불어 긴긴 세월 남편과 자식 걱정에 마음고생이 더해진 가슴. 가슴이 처진 것은 중력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터뷰 내 깊은 들숨으로 담배를 빨아들이는 그에게 “담배를 많이 태우시냐”고 묻자 “담배는 호흡으로 내뱉는 것이고, 사진은 이미지롤 내뱉는 것이니 같은 것”이라는 애연가다운 답이 돌아온다. 그 말 끝에 문득 신동엽 시인의 <담배연기처럼>이 떠오른다.

(…) 들길에 떠가는 / 담배 연기처럼 /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 위해주고 싶은 가족들은 / 많이 있었지만 / 어쩐 일인지 / 멀리 놓고 생각만 하다 / 말았네 // (…) // 언제이던가 / 이 들길 지나갈 길손이여 / 그대의 소맷 속 /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 아퍼 못 다한 /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 가벼운 눈인사나 / 보내다오

언젠가 그의 사진이 세상에 상처받고 외로워하는 이들의 소맷 속을 드나들며 위로하는 바람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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