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의 술, 우리의 술
명인의 술, 우리의 술
  • 신은정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2.02.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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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천 조정형 '전주이강주' 명인

일제강점기 시절 시행된 주세령으로 우리의 전통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렇게 끊어졌던 전통주 문화에 숨을 불어넣고, 가문의 술이자 전주의 술인 이강주를 대중화한 이가 <전주이강주> 고천 조정형 명인이다.

배와 생강이 들어간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이강주梨薑酒. 조선시대부터 전라도와 황해도에서 제조되었던 이강주는 우리나라의 3대 명주 중 하나다. 이강주는 쌀을 이용해 만든 증류식 전통 소주에 배와 생강, 계피, 울금, 벌꿀을 넣어 만들기 때문에 독특한 향과 맛이 살아있다.
소주공장에서 25년을 근무하면서 전통주에 눈을 뜬 조정형 명인은 사라진 전통주를 다시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조정형 명인은 전통주 제조자로서 향토무형문화재로 인정받게 되고, 그의 가문에 6대째 내려오던 가양주인 이강주는 그의 손을 타고 1990년 다시 세상을 만났다. 이후 1996년에는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9호로 선정됐다.
설을 맞아 이강주 출고가 한창인 <전주이강주> 본사. 코를 간지럽히는 달큼한 술 냄새가 먼저 맞이한다. 이곳에서 전주의 술, 이강주를 대중화한 고천 조정형 명인을 만났다.

Q 알고 보니 우리나라 전통주의 종류가 정말 다양하더라고요
A 우리나라는 조선시대부터 양반집 가정마다 직접 술을 빚어서 먹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통주의 종류가 엄청 다양해요. 그만큼 한국인에게 술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기도 했고요. 중국이나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땅은 넓지만 전통주의 종류는 우리나라보다 적어요. 일부 사람들만 술을 빚을 수 있게 독점했기 때문이죠.

Q 오래전부터 전주가 이강주의 명산지였어요
A 원재료가 전주에서 나기 때문에 이 고장에서 이강주를 빚었고, 자연스럽게 명산지가 됐습니다. 이강주를 빚을 때 배, 생강, 계피, 울금이 들어가는데 전라도와 황해도의 배가 진상품이었고, 완주 봉동 생강도 유명했어요. 울금은 중국 황실에서 요리할 때 신경안정제로 조금씩 넣었던 재료였는데, 한국 왕실에서도 사용했습니다. 때문에 당시에 일반 농가에서는 재배를 못했었고, 전주 경기전에서 울금을 키웠어요. 그래서 울금도 전주 진상품이 됐고요. 이강주는 숙취가 없고 뒤가 깨끗하기로 유명한데, 울금이 그 역할을 합니다. 울금을 쓰는 술은 이강주밖에 없어요.

Q 조정형 명인의 가문에 6대째 내려오는 가양주가 이강주였어요
A 5대째 할아버지가 전주에서 부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군수죠. 그때는 집에서 다양한 행사를 했어요. 손님이 오시면 집에서 빚은 술인 이강주를 대접했습니다. 아버지도 문인으로 벼슬을 했기 때문에 당시에도 술을 빚었고요.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주세법, 주세령 때문에 이강주를 밀주로 만들었는데, 그래도 벼슬하는 사람 집에서 술을 빚는 것은 봐주는 문화가 있었어요. 하지만 밀주였기 때문에 저는 대학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가문의 가양주가 이강주인지는 몰랐습니다.

Q 전북대학교에서 발효학을 공부하고, 목포 삼학소주로 시작해 주류업계에서 25년을 일한 것이 처음부터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니었다고요. 그럼 전통주를 만들기로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A 학교를 졸업하고 소주공장에서 공장장을 하면서 우리 술을 찾기 위해 연구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당시에는 전통주를 제조하지 못하게 법으로 막고 있었기 때문에, 25년 동안 여러 소주 회사의 공장장을 하면서 만든 술들의 원료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어요. 위스키 원액, 희석식 소주 모두 마찬가지로요. ‘이건 아니다’ 싶어 우리 전통주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죠. 연구실의 반을 전통주 조사에 할애했어요. 그러다 결국 사표를 내고 전통주를 만드는 현장을 돌면서 전통주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와중에 다시 제주도에서 공장장으로 근무하게 됐는데, 오전에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전통주 만들기에 몰두했어요. 그렇게 제주도에서 일하는 3년 동안 100여 가지의 전통주를 빚어냈습니다. 그 내용을 이라는 책으로 한 번 정리했어요. 첫 번째로 낸 책이죠.

Q 실제로 이강주를 만들기까지 어떤 어려운 점이 있었나요
A 어려운 일이 참 많았습니다. 정부에서 88올림픽을 개최할 때 우리 전통주를 소개하고자 했고, 전통주 제조자를 찾아 향토무형문화재로 지정했죠. 그렇게 1987년도에 제가 전주이강주로 전라북도 향토무형문화재로 선정됐지만, 당장 이강주를 생산하지는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소주 공장 외에는 술을 못 만들게 하고 있었어요. 법을 바꾸려면 국회로 가야 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주협회의 반대도 있었어요. 전통주가 나오면 소주 공장의 매출이 줄어들 것 같으니 전통주 생산을 반대하더라고요. 그래서 공청회도 열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죠. 무수한 노력 끝에 1990년에 처음으로 이강주를 생산할 수 있게 됐어요. 문화재로 선정되고 술을 만들기까지, 그 3년 동안 정말 고생 많이 했죠. 그런데 막상 생산을 시작하려고 하니 돈도 없었어요. 그때 신세계백화점에서 8천만 원을 선금으로 주고 술을 만들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 돈을 가지고 이 본사 공장을 사고 전주이강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Q 지금은 해외에서도 이강주를 많이 찾는다고 들었어요
A 현재 국내에는 이강주 마니아층이 많이 형성되어 있어요. 찾으시는 분들은 계속 이강주를 찾죠. 지금은 여유 있는 대로 유럽, 영국이나 네덜란드로도 수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한국 문화가 세계에 많이 알려지니까 덩달아서 이강주의 인기도 함께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Q 그럼 전주이강주도 세계 명주가 될 수 있을까요
A 일본 정종에 얽힌 일화가 있어요. 한 공장장이 잘못 만들어 버려야 할 술을 항아리에 넣어서 재속에다 묻어놓고 도망을 갔는데, 술이 담긴 항아리를 나중에 열어보니 맛과 향이 좋아서 명주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계 명주가 되려면 숙성주가 있어야 합니다. 술은 숙성될수록 향이 짙어지면서, 가치가 높아지니까요. 우리 전통주는 다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숙성주가 없어요. 생산할 수 있게 된 지도 30년이 조금 넘었으니까요. 외국 술은 오랜 역사가 있어서 몇 십 년, 백 년이 넘게 숙성된 명주가 많죠. 이강주로 조금씩 숙성주를 만들고 있기는 한데, 그것이 세계 명주가 될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봐야 압니다. 몇 십 년은 지나야 하니, 내가 맛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웃음)

Q 그동안 연구했던 전통주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찾아야 할 우리의 술>, <우리 땅에서 익은 우리 술> 등에 이어 최근에는 <전통주 비법과 명인의 술> 저서도 출간하셨어요.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A 새로운 형태의 술을 만들고자 하는데, 바로 전주이강주를 가루로 만든 분말주입니다. 아직 판매하고 있지는 않아요. 전주이강주 분말주는 주류로 특허를 냈지만,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식품첨가물로 요리할 때 풍미를 올리는 용도로 쓸 수 있고, 낚시나 등산을 갈 때 간편하게 휴대하면서 음료에 타서 섭취할 수도 있죠. 이 분말주를 대중에게 선보이는 것이 현재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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