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책방
세상을 바꾸는 책방
  • 고아라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22.02.0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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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아 '물결서사' 대표 & 시인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해방 직후 백범 김구 선생님이 남긴 말이다. 나와 타인을 행복하게 하고 삶을 풍요롭게 살찌우며 세상까지 바꾼다는 문화의 힘이란 대체 무엇일까? 성매매 집결지였던 선미촌에 자리 잡은 책방, <물결서사>에서 그 답을 찾은 것만 같다.

Q 소개 부탁합니다
A 안녕하세요. 시인이자 <물결서사>의 대표 임주아입니다. 물결서사는 전주에 뿌리를 둔 청년 예술가들로 이뤄진 ‘물왕멀팀’이 운영하는 책방이에요. 소설가와 시인, 극작가뿐만 아니라 비보이, 성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6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Q 물결서사라는 이름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A 이 공간의 기능이 단순히 책방이라는 것에 국한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책방’이라는 뜻도 포함하면서 중의적인 의미를 품고 싶었어요. 선미촌의 주소가 물왕멀인데, 물이 맑은 곳이라는 뜻이에요. 성매매 집결지라고 해서 지역을 외면하고 피하기보다 이곳이 지나온 시간과 이야기를 창작물로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물왕멀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이국적이면서도 터질듯한 느낌도 마음에 들었고요. 다만 발음이 어려워 가독성이 떨어지다 보니 물의 이미지를 살려 ‘물결’이라는 말로 짓게 됐습니다. ‘서사’는 책 파는 가게라는 뜻의 옛말인데, 사실대로 기록한다는 뜻도 있고, 이야기라는 의미도 있어서 좋았어요.

Q 선미촌에 자리를 잡은 이유가 궁금해요
A 전주시가 도시재생사업인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선미촌을 예술 마을로 가꾸기 위해 건물들을 사들였어요. 이곳이 예술가들과 만나 어떤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까 생각하며 책방에 대한 기획서를 냈고, 그렇게 선미촌의 첫 문화공간인 물결서사가 문을 열게 됐습니다. ‘옛 성매매 업소 건물을 개조한 책방’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싶었다기 보다 선미촌에서의 이 낯선 화두를 라는 작은 책방이 던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봤어요. 성매매 업소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골목을 깊숙이 걸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책방이거든요. 지나가다 우연히 들르기 힘든, 용기가 필요한 위치죠. ‘성매매 집결지’라는 완력이 너무 강해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니 긍정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전주의 핫플레이스인 한옥마을이나 객리단길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선미촌이라는 위치 자체가 주는 무게와 의미가 있고. 이곳에서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Q 그렇다면 벌써 목적을 이룬 것 같네요
A 오랜 세월 고립된 동네에 젊은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책방이 들어서니 타지 사람들은 물론, 주민분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부터 기자, 출판업자, 건축가, 도시재생 관련 공무원, 여성 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응원을 보내주기도 했고요. 어떻게 찾아오셨냐는 물음에 ‘선미촌을 검색해 보니 물결서사가 제일 먼저 보였다’는 대답을 들었을 땐 무척 기뻤어요. 도심 속 외딴섬이라 불렸던 선미촌이 책방과 예술인이라는 매개로 변화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성매매 집결지에서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 어떤 접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고민했으니까요. 하지만 아쉬움도 커요. 처음에 우리는 성매매 업소 구성원들이 업종을 전환해 공존하길 바랐거든요. 처음엔 전주시도 그런 계획이 있었고, 실제 업종 전환한 사례도 생겼지만 오래가진 못했어요. 말처럼 쉽지 않은 과정이고 긴 시간이 필요한 여정인 만큼 더 열린 자세와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이제 선미촌 성매매 업소가 모두 폐쇄 단계에 접어들었는데 그 사실과 상징을 넘어, 사이사이 소외된 사람들은 없는지 돌아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곳을 떠난 사람과 여기에 있는 사람 모두의 삶을 위해 계속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물결서사가 처음 오픈했을 때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A ‘책방’이라는 공간 자체를 신기해하셨어요. 어떻게 보면 ‘책방’이라는 개념도 새로 생긴 것이나 다름없어요. 일종의 신조어이기도 하고요. 주인이 선별한(큐레이션한) 책을 판매하고 종종 재미있는 일도 꾸미는 동네의 작은 서점을 ‘책방’이라고 부르잖아요. 어쨌든 책을 파는 곳인지, 빌려주는 곳인지, 동네 사랑방인지 헷갈려 하셨던 것 같아요. (웃음) 그러던 중 물결서사의 운영진인 조현상 성악가가 이곳에서 데뷔 무대를 갖게 됐어요. 가족들만 모여도 성공적이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동네 주민들이 많이 보러 와주셨습니다. 그 이후부터 책을 사러 오시거나 책방 안에 있는 공유책방에 책을 기부하는 등 다양하게 물결서사를 찾아오고 계세요.

Q <물결서사>는 일반 서점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에요
A 일반 서점은 종류별로 수많은 책이 진열돼 있지만 책을 골라주진 않아요. 온라인 서점은 검색을 통해 취향에 맞는 책도 찾을 수 있고 다양한 할인 혜택이 많지만 정작 책을 만져볼 수 없으니 책을 사기 전에 느낄 수 있는 상상력이 한정적이고요. 동네 책방인 물결서사는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는 없는 서비스와 콘텐츠가 있어요. 문학과 디자인, 미술, 음악, 연극, 춤 등 각자 영역에서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하는 젊은 책방지기들이 책을 추천해 주기도 하고, 공연·소모임·작가와의 만남·창작 워크숍 등 크고 작은 예술 프로젝트도 열립니다. 그저 공간을 즐기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거예요. 옛 건물을 최대한 살려 개조했기 때문에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거든요. 오래된 건물이 주는 편안함과 비밀 아지트 같은 아늑함 덕분에 물결서사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Q 책방을 운영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A 처음에는 초기 자본이 거의 없어 운영진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책을 사들였어요. 물결서사가 이름을 알리게 된 후에는 감사하게도 사비를 모아야 할 일은 줄었지만 여전히 수익을 내긴 어려웠죠. 설상가상으로 코로나가 터지면서 손님이 확연히 줄었어요. 공들여 기획한 작가와의 만남이나 정기적으로 진행하던 워크숍도 줄줄이 취소됐고요. 도서관에 책을 납품하거나 예약 도서를 판매해 책방을 운영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혹독한 서점 자영업자의 삶을 느끼고 있죠. 하지만 지금까지는 수익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이곳에 정주하는 것을 목표로 둔 것이라 더 달려올 수 있었어요. 이제는 이곳이 하나의 브랜드가 됐고, 정말 실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또 최선을 다해야죠.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방을 운영하게 하는 원동력이 있다면
A 많은 사람이 창업을 하는 이유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학교를 졸업한 후 잡지사와 대학 홍보실에서 일했지만 ‘시’에 대한 갈증을 품고 있었어요.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기도 했고요. 물결서사의 운영진이 된 후 처음 1년은 회사일과 병행했지만 감사하게도 물결서사를 좋게 봐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곳이 많아 인터뷰 요청이나 방송 출연 제의가 끊이지 않았어요. 너무 바쁜 일정 탓에 한 가지 일을 결정해야 할 순간이 찾아왔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여기에 있다’는 생각에 물결서사를 선택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한 일이었지만, 저질러야만 결정되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일반 서점과 다르게 공연, 전시, 클래스 등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라는 점도 좋아요. 주민들을 위한 곳이기도 하지만 운영진을 비롯한 전주의 많은 예술가들에게도 이야기할 장을 열어주거든요. 시인인 저는 물결서사의 연재 서비스를 통해 시를 발표하고, 성악가는 마을 주민들 앞에서 데뷔 무대를 펼치며, 화가는 그림을 그려 복도에 전시하는 것처럼요.

Q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됩니다
A 수익이 창출되면서 마을에 도움이 되고, 의미도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고민 끝에 온라인 스토어를 열기로 했고, 그 창구를 통해 좋은 기획들을 해보려고요. 상반기에는 책방 2층에 마련된 작은 공간도 오픈해요. 이 ‘독방’은 세상과 떨어져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 홀로 조용히 책을 읽거나 글 쓸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장소예요. ‘한 사람을 위한 공간’인 만큼 하루에 딱 한 사람만 예약할 수 있도록 운영할 예정입니다. 3월부터는 메일링 서비스로 제공되는 연재도 시작하려 해요. 이라는 이름인데, 원래 선미촌과 책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기 위해 연재하던 SNS 채널이었어요. 이제 메일링서비스로 바꿔 새로운 길을 모색해보려고요. ‘물왕멀296’은 책방 주소를 딴 이름이고, ‘봐라’는 말 그대로 보라, 봐 달라는 거에요. 이를 통해 각자 다른 예술 분야에 있는 6명의 운영진이 매주 돌아가면서 창작물을 선보이고 동네 얘기도 곁들이려 해요. 이 작품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게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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