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가장 멀지만 가장 닮은 ‘나’
[위드 코로나] 가장 멀지만 가장 닮은 ‘나’
  • 고아라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1.12.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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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우 시인&작사가

바이러스가 강제한 변화된 사회. 불안과 공포,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찾아가는 세상의 이야기를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세상은 어떻게 변화했고, 또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5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주>

온 세상을 물들일 듯 기세 좋게 익어가던 단풍이 빗줄기를 따라 힘없이 낙하하던 초겨울, 그 미묘한 기분을 이기지 못하고 펜을 꺼내든 구현우 시인을 만났다.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구현우라는 이름으로 시를 쓰고, 구태우라는 이름으로 노랫말을 짓고 있습니다. 2014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면서 시인으로 등단했어요. 2020년에 문학동네시인선 134번으로 첫 시집 『나의 9월은 너의 3월』을 출간했고요. 작사가로는 2015년에 Super Junior D&E의 <Breaking Up>으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레드벨벳 <Oh Boy>, <Love Is The Way>, 샤이니 <Drive>, 프로미스나인 <We Go>, 블락비바스타즈 <Easy>, 웬디 <Why Can’t You Love Me>, 루나 <Breathe>, Kriz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V.O.S <나의 멜로디>, NCT127 <Love On The Floor> 등을 작업했습니다.

작년에 첫 시집을 냈어요. 그 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첫 시집을 낸 이후에도 변함 없이 문예지, 일반 잡지 등에 시나 산문을 발표했어요. 감사하게도 시집, 산문집 등을 내자는 출판사 분들이 있어서 몇 권의 책이 계약되었고요. 대학교, 실용음악학원, 문화센터와 같은 곳에서 정기적인 강의를 하고 또 불러주시는 다양한 곳에서 특강을 하기도 해요. 여러 엔터테인먼트 및 아티스트와 새로운 곡도 작업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시집의 제목 <나의 9월은 너의 3월>이 인상깊어요.
3월과 9월은 봄과 가을을 체감하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고 새 학기가 열리는 시즌이기도 하죠. 시집 제목은 김민정 시인이 지어줬어요. <나의 9월은 너의 3월>은 「선유도」란 시에 포함된 구절이에요. 저는 이 구절이 책 제목으로 올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김민정 시인이 제시한 제목을 보니, 시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밀도와 너무 잘 어울리더라고요. 해설에서 강동호 평론가가 짚었듯 감정의 어긋남이나 시차가 제 첫 시집 시편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TMI지만 제가 9월에 태어나서 제목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도 있습니다.

시인과 작사가, 두 개의 직업을 각각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모든 일의 시작은 중학교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하면서부터에요. 저는 베이스를 연주했는데, 기존 곡들을 카피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자작곡을 쓰고 싶어지더라고요. 우리의 이야기와 색깔이담기면 좋겠다는 욕망이 생겼어요. 비트를 잡고, 베이스 라인을 만들고, 기타 및 건반 사운드와 보컬 멜로디까지는 어느 정도 완성했는데 아무리 애써도 가사가 안 써지는 거예요. 카페에서 8시간을 씨름했는데 두 줄도 못 채웠어요. 그때 ‘음유시인’이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가사와 시가 비슷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다만 막막했거든요. 그때까진 교과서에 있는 시 밖에 몰랐으니까요. 그 길로 서점에 가서 시집 한 권을 꺼내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읽는 내내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려운 와중에도 어떤 문장, 어떤 단어는 마음에 남았어요. 그렇게 나도 한 번 써 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시에 빠져들었죠. ‘시 자체가 좋아서 쓰는 사람’이 이긴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썼어요. 하루에 한 편씩, 꾸준히요. 사실 2014년에 등단에 실패하면 시인이 되는 건 포기하려고 했어요. 등단과 무관하게 무슨 일을 하든 읽고 쓰는 건 그만두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거든요. 운이 좋아서 그 해에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작사는 시와 별개로 음악을 계속 하고 싶어서 공부했어요. 그 시기에 작사 학원이 생겨 학원에 다니면서 가사를 썼습니다. 마찬가지로 운이 좋아 2015년에 곡을 발매하며 데뷔할 수 있었죠.

두 가지 직업이 전혀 다른 분야처럼 느껴지는데, 따로 작업하시나요?
그런 질문을 자주 듣는데, 제 대답은 늘 “시는 문학이고 가사는 음악이다”예요. 이름을 두 개 쓰는 이유도 나름 각각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고요. 시는 형식, 내용, 문체도 자유로운반면 작사는 아티스트, 장르, 곡 분위기, 자수 등 지켜야 하는 틀 안에서 자유로워야 해요. 작업 방식도 매우 달라요. 시를 쓸 때는 걸으면서 노트에 손으로 써요. 또 술을 한 모금이라도 입에 대면 시를 쓰지 않아요. 반대로 작사할 때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해요. 작사라는 일은 음악이다 보니 아무래도 장비가 필요하거든요. 트랙을 분석하고 아이디어를 얻기 전까지는 스케치만 합니다. 비슷한 점이 있다면 언어로 전달한다는 것 정도에요. 산문보다 함축적이라는 부분도 말할 수 있겠네요.

주로 영감은 어디서 받나요?
책, 음악, 그림, 영화 등의 간접 경험에서 많이 얻어요. 직접 경험한 이야기와 감정을 녹여낼 때도 있죠. 친구들이나 지인들 얘기를 참고하기도 합니다. 가장 많은 영감은 일상에서 오는 것 같아요. 산책하면서 보는 풍경, 커피와 조각 케이크의 맛, 비가 내린 사거리의 냄새 이런 것들이요.

코로나를 겪으며 사람들의 관심이 밖에서 안으로 옮겨갔어요. 이를테면 세상의 볼거리와 즐길 거리에서 ‘나’에게 관심이 옮겨 간거죠. 시집 <나의 9월은 너의 3월> 속에는 유독 이 시대에 울림을 주는 구절이 많은 것 같아요.
마음이 힘들 때면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까? 저 사람은 나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시집 속 ‘나의 방은 한 명 이상의 외로움이 있다’라던가, ‘너는 가을옷이 필요하구나 나는 봄옷을 생각하면서 양화대교를 건너고 있어’와 같은 문장들도 그런 기분에서 출발한 문장들이었어요. ‘나만 이렇게 힘들어?’ 같은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 ‘각자의 아픔이 있으니너와 나는 서로에게 서로가 될 수 있다’라는 마음이었던 거예요. 메시지라고 하면 좀 거창한 것 같아서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제 시에서 한 문장을 전해 볼게요. 작년 문학 잡지 <릿터Littor>에 발표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신은 더 작은 디테일에 있다」는 작품인데 마지막 문장은 이래요. “나쁜 시력으로도 나는 미래를 조금 볼 줄 안다/너를 보면 볼수록/눈앞이 흐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일견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말인데, 오히려 저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 문장을 썼어요. ‘너’와 ‘나’의 미래가 슬프리란 예감이 아니라 ‘너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 될 수 있다―우리만이 우리를 위로할 수 있다’는 예감이었어요. 당장, 행복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더 불행해지지 않기를. 그런 바람으로 시를 쓰고 있어요.

작가님의 시는 차분하고 이성적인데, 다 읽고 나면 감성이 뒤이어 몰려와요.
정확히 보셨어요. 저는 시를 쓸 때 담백한 문장을 지향합니다. 감정에 매몰돼서 나온 문장보다는 건조한 말이 누군가의 가슴을 콕 찌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전자의 방식도 독자로선 좋아하지만 제가 쓸 때는 다르다는 의미에요. 시의 서사 속에서, 이미지 속에서, 담담한 (척하는) 말 속에서 조금씩 감정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어차피 감정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게 아니니까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2022년에는 시집 한 권, 산문집 한 권을 낼 거예요. 물론 계획대로 된다면요.(웃음) 곡 작업은 꾸준히 하고 또 하는 거라 따로 큰 계획은 없는데 더 다양한 노래를 쓰고 싶고 나아가 전국민이 아는 노래를 쓰고 싶어요. 그리고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렇고, 기자님도 그렇고, 이 인터뷰를 보는 모든 분들이 그렇기를요. 오늘 좋은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시로, 음악으로, 어디서든 우리 자주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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