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 ③ 닭실마을 산책
봉화 - ③ 닭실마을 산책
  • 글·김경선 기자 |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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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과 암탉이 알을 품은 명당…전통문화 간직하며 안동 권씨 집성촌 형성

안동에 가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예로부터 봉화는 안동과 더불어 대표적인 양반의 고장이었다. 특히 500년 가까이 한 자리를 지키며 전통을 이어온 닭실마을은 물과 산, 가옥이 어우러져 한국적인 미를 보여준다. 비단결 같은 산과 물이 어우러진 포근한 어미닭의 품속. 21세기에도 여전히 전통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는 닭실마을을 걸어봤다.

▲ 소담스러운 종택에서 만난 충재 권벌 선생의 18대손 권종목 씨.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의 마을. ‘황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이란 의미의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은 딱 닭실마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담해 보이는 포근한 암탉의 산세와 크고 넓은 품을 가진 수탉의 산세가 둘러싼 마을은 개울과 평지를 품어 사람이 살기 좋은 명당을 만들었다. 더할 나위 없이 아늑한 이 지역을 가리켜 조선의 지리학자 이중환(李重煥, 1690~1756)은 경주의 양동마을, 안동의 내앞마을, 풍산의 하회마을과 더불어 삼남의 4대 길지로 꼽았다.

봉화군 유곡리에 위치한 닭실마을은 490여 년 전 충재 권벌(沖齋 權木發, 1478~ 1548) 선생이 일으킨 마을로 지금도 선생의 후손인 안동 권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고풍스러운 한옥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닭실마을은 주위를 둘러싼 산세가 높지도 험하지도 않으며 아담하고 부드러워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는 형국이다.

마을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지금의 마을 입구 대신 석천계곡 하류에서 계곡을 1.5km 정도 거슬러 올라야한다. 취재진은 권벌 선생의 19대손인 권용철(38) 씨와 함께 옛 마을 입구인 석천계곡과 내성천이 만나는 삼계교에서 계곡을 거슬러 올랐다. 삼계교 인근은 현재 수해복구작업이 진행중이라 다소 산만했지만, 공사 구간을 지나면서 완만한 계곡 왼쪽으로 오랜 세월 갈고 닦인 옛길이 뚜렷이 드러났다.

▲ 마을 앞을 지나는 철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닭실마을의 기를 꺾고자 철도와 도로가 마을 앞을 지나도록 만들었다.
예로부터 명당터로 알려진 닭실마을에서 의병대장과 독립투사가 많이 나오자 일본인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마을의 풍수를 해치는 작업을 했습니다. 현재 마을 입구를 지나는 도로와 철도는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수탉의 모가지를 자르기 위해 낸 것이죠.”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춘양으로 이어지는 신작로를 내며 굳이 길을 돌려 닭실마을을 지나게 만들었다. 풍수학에서 보면 닭과 상극을 이루는 동물은 뱀과 지네. 닭실마을을 지나는 도로는 뱀을, 철도는 지네를 상징해 닭의 기를 꺾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만행에도 불구하고 닭실마을은 여전히 명당이다. 오랜 세월 동안 큰 난이나 자연재해가 거의 없는 마을은 평화로운 기운이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작은 연못 속 바위섬, 청암정

▲ 거북의 등껍질을 닮았다는 바위 위에 지어진 청암정. 자연과 인공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정자다.
여유롭고 고즈넉한 계곡길을 따라 15분 정도 올라가니 석천정(石泉亭) 일대다. 큼직한 너럭바위를 유유히 흐르는 계류가 아름답고, 푸른 숲이 풍요로웠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이 지점에 석천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복원공사가 한창인 석천정은 철골로 덮여 아쉽게도 본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석천정의 진짜 매력은 정자와 자연의 조화로움이다.

옛길은 석천정 앞에서 물길을 건넜다. 큼직한 바위가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돌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은 나무를 엮어 간이 다리를 만들었다. “석천정이야말로 마을의 진짜 입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면 석천계곡이 몸을 크게 틀면서 마을이 모습을 드러내죠.”

석천계곡을 크게 휘돌아 드러나는 마을의 전경은 배산임수 지형 그대로였다. 마을 가장 서쪽에는 권벌 선생의 종택과 청암정이 보이고, 동쪽으로 이어지는 가옥들은 잠시 시대를 잊고 과거로 돌아간 듯 옛 정취가 완연했다. 마을 앞에 펼쳐진 논과 밭의 푸르름도 풍요로움을 더해준다.

마을로 들어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청암정(靑巖亭)이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 영화 ‘음란서생’ 등을 통해 명소로 알려진 청암정은 충재 권벌 선생이 지은 정자다. 일찍이 과거에 합격해 사간원, 사헌부 등을 거쳐 예조참판까지 지낸 선생이 기묘사화(1519년)에 연루돼 파직된 후 닭실마을에 거처를 마련하고 청암정을 지었다.

“청암정은 거북을 닮은 바위 위에 지어졌습니다. 거북이 등껍질 위에 정자를 세우고 그 주위에 인공연못을 만들어 운치를 더했죠. 연못을 건너는 저 돌다리는 500년 전 그대로에요.” 몇 그루의 고목이 물속에 잠겨있는 청암정은 우거진 나무와 고즈넉한 정자가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매력이 돋보였다. 돌다리를 건너 정자에 올라서니 자연과 인공의 완벽한 조화가 더욱 도드라지게 느껴졌다. 너른 들, 민가 사이에 세워진 정자지만 청암정에 오르니 자연에 푹 파묻힌 느낌이다.

1만 점 유물 보유한 충재박물관

▲ 권벌 선생의 종택. 솟을대문 너머로 정갈한 종택이 자리한다.
청암정 옆 종택에는 충재 선생의 17대손부터 20대손까지 4대가 살고 있다. 5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종택을 지키며 살아온 안동 권씨 일가의 전통에 대한 애정이 새삼 존경스러운 순간이다. 솟을대문을 지나 종택으로 들어서니 대문 바로 앞으로 사랑채가 있고, 그 뒤로 ‘ㅁ’자 형태의 안채가 반듯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충재종택은 1940년 마을에 큰 화재가 났을 때 불탔고 현재의 집은 1948년에 다시 지어졌다고 했다.

“충재 선조께서 관직에서 파직된 후 이곳에 터를 잡고 1520년에 종택을 지었습니다. 원래 고향은 안동 북후면 도촌이었지만 모친의 묘소가 있는 유곡 닭실에 터를 잡으셨죠. 과거에 유곡리 지역은 행정구역 상 안동에 속해있었습니다.” 권용철 씨의 안내로 종택 뒤편의 충재박물관에 들어섰다. 크지 않은 사립박물관이지만 보안만큼은 철저했다.

“가문에서 내려오는 조선시대 유물만 1만점 정도 됩니다. 웬만한 공립박물관보다 많은 유물을 보유하고 있죠.” 500여 년간 선조 대대로 지켜온 유물이 4000여 점에 자손들이 기증한 유물도 수천 점에 달한다. 전국의 명가 종택들이 많은 유물을 도난당한 반면, 안동 권씨 일가는 안전하게 유물을 보관해 지금에 이른 것이다. 보물 제261호인 충재일기, 보물 제262호인 근사록, 보물 제896호인 전적, 보물 제901호인 유묵 등 충재 선생과 관련된 유물들이 대부분이다.

박물관을 나와 산책하듯 마을을 거닐어 봤다. 마을 구석구석을 가로지르는 좁다란 길을 따르니 높지 않은 담 너머에서 뜰 안 촌로의 소박한 일상이 전해진다. 가지런히 걸려있는 손때 묻은 농기구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대, 처마 밑에 앉아 감자를 다듬는 할머니까지, 어느 하나 정겹지 않은 것이 없다.

아파트며 맨션이 가득한 도시에서 벗어나 고즈넉한 한옥마을을 걸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게 바로 오랜 친구처럼 아늑한 전통가옥의 매력이 아닐까.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황톳빛 담장에 내려앉자 닭실마을은 시나브로 고요 속으로 접어들었다.

닭실마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 있는 닭실마을은 조선 중종 때 문신인 충재 권벌(1478~1548) 선생의 유적이 남아있는 전통마을로 지금까지 500여 년간 안동 권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수려한 정자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청암정과 석천정, 조선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 충재박물관 등의 볼거리가 있다.

‘금빛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금계포란형)’의 전형적인 풍수를 보여주는 닭실마을은 예로부터 명당 중의 명당으로 여겨졌다. 암탉과 수탉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형국은 석천계곡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는 옛길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현재의 마을 입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마을의 풍수를 해치고자 도로를 낸 후 생긴 것이다. 원래의 마을 입구는 석천계곡과 내성천이 만나는 915번 지방도의 삼계교다.

삼계교에서 석천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석천정이다. 현재 복원공사가 한창이라 고즈넉한 멋을 느낄 수는 없지만 너럭바위를 따라 흐르는 계류와 숲이 어우러진 석천정 일대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일품이다. 석천정을 지나면 계곡이 크게 몸을 틀고 닭실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담한 어미닭의 산세와 크고 넓은 아비닭의 품이 감싼 마을은 아늑하고 평화로운 모습 그대로다. 마을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권벌 선생 종택과 청암정을 둘러보고 종택 뒤편의 충재박물관도 들러볼만 하다. 보물을 비롯한 충재 후손 일가의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충재박물관에서는 1일 서당체험을 비롯해 한과만들기 체험 등 각종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전 예약 후 체험할 수 있다. 충재박물관(권용철) 011-9361-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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