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캉스 WITH 별 헤는 밤
호캉스 WITH 별 헤는 밤
  • 박신영 기자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21.10.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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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파크로쉬 리조트앤웰니스

옥상에 완벽한 어둠이 찾아왔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어 휴대폰 조명을 켜자 옆에서 쓴소리가 들렸다. “플래시 끄고 하늘을 봐” 순간 멈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반짝거리는 별 하나가 어느새 수백 개로 늘어나더니 하늘에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그냥 쉬고 싶어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갈피를 잡지 못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자주 내린 비만큼 축축했던 고민과 날씨만큼 뜨거웠던 백신 전쟁 덕분에 체력이 바닥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간절하다.

사진출처 정선 파크로쉬 리조트앤웰니스
사진출처 정선 파크로쉬 리조트앤웰니스

한국의 우수한 고속도로 시스템도 닿지 않는 정선. 서울에서 자동차로 3시간 30분이나 걸린 탓에 벌써 온몸엔 피로가 가득하다. 곧바로 객실로 달려가 푹신한 침대에 누워 한동안 몸을 늘어뜨렸다. 잠이 들 찰나 휴대폰에서 시끄러운 벨 소리가 울렸다. 지금 자면 정말 꿀잠인데 휴대폰은 내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사진출처 정선 파크로쉬 리조트앤웰니스

잠은 달아나 버린 지 오래고 짜증 수치는 60%를 넘어갔다. 이대로 있다간 휴식이고 뭐고 없을 거 같아 커튼을 젖혔다. 푸른색으로 물든 능선들이 마치 부채처럼 켜켜이 이어졌고 위쪽으로는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것이 진짜 강원도의 모습일까. 땅에서 바라본 모습과 공중에서 바라본 풍경이 판이한 건 당연하지만 감정이 이토록 배가 될 줄은 몰랐다. 이 순간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고 싶어 침대 옆에 마련된 블루투스 스피커에 휴대폰을 연결하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틀었다. 미니 냉장고에 준비된 건강 음료를 들이켜며 통유리창 앞 소파에 몸을 기댔다. 시각과 청각 그리고 미각이 이상하리만큼 편해졌다. 머리를 가득 채우던 사소한 걱정거리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디지털 다이어트
2층에 다양한 책과 잡지를 모아 놓은 라이브러리가 있다는 안내서를 읽고 곧바로 향했다. 책장에는 치유, 힐링, 명상 관련 에세이와 해외 디자인 잡지들이 큐레이팅 되어 있었다. 정선에 위치한 호텔답게 정선 여행 에세이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책장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잡고 소파에 앉았다. 독서하기에 조금 어두컴컴했지만 소파마다 개인 독서등이 달려 나만의 아지트에 들어앉은 기분이다. 주변 분위기도 아늑했다. 고개를 들면 통유리창으로 자연이 보였고, 고개를 돌리면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잔잔히 흐르는 음악은 독서에 더욱 집중하게 했고 약간 퀴퀴한 책 냄새는 마음에 안정을 주었다. 괜스레 이 순간을 깨고 싶지 않아 휴대폰을 완전히 꺼버렸다. 호텔에 있는 동안은 디지털 다이어트를 해 볼 작정이다.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지만 뭐 어떠한가.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어떻게든 연락이 되겠지.

햇살이 주황빛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오후 5시쯤이 아닐까. 지루해진 책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더니 글라스하우스가 보였다. 생긴 모습은 산장인데 통유리로 만들어져 이색적이었다. 살짝 열린 문으로는 매력적인 음악이 흘러나왔다. 간판에 ‘세계 탑 3 콘서트홀에 설치된 메이어 사운드 스피커로 음악을 감상해 보세요’라고 쓰인 문구가 이곳의 역할을 알려줬다. 음악 감상에 도움을 주는 푹신한 소파 여럿과 아름다운 식물도 곳곳에 배치됐다. 무엇보다 주황빛 햇살이 사방에 설치된 통유리창으로 들어와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음악 감상도 그렇지만 그저 이곳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얻는 기분이다.

밖은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야외 가든에서 배드민턴과 캐치볼을 하거나 글라스하우스 앞에 설치된 화로에서 모닥불을 바라보는 사람이 하나둘 등장했다. 능선 위에 태양 끄트머리만 겨우 걸려 있을 때쯤 갑자기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온몸이 오소소 떨려왔다. 9월 초순밖에 안 됐는데 정선은 벌써 완연한 가을인 것 같다. 모닥불에 앉아 잠시 손과 발을 녹이고 주변을 둘러봤다.

아까 머물던 글라스하우스는 완벽히 다른 모습이었다. 통유리창으로 보이던 푸른 산세는 사라지고 주황빛 조명으로 물든 내부가 선명히 보였다. 얼핏 해외에서나 볼 법한 산장처럼, 또는 바닷가 근처의 아름다운 여느 카페처럼 보였다. 초록빛 조명이 감싼 모닥불 주변은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초록 마녀를 연상시켰다.

사진출처 정선 파크로쉬 리조트앤웰니스

이토록 아름다운 별이라면
서울에서는 고개를 들어봐도 온통 까만 도화지뿐이다. 간혹 빛나는 별을 발견하면 “저건 인공위성이야”라는 아쉬운 소리를 들었는데. 정선에서는 별자리 앱으로 하늘을 더듬거려 볼 만큼 수많은 별이 쏟아진다. 루프탑에 마련된 빈백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더니 광활한 우주 속을 어슬렁거리는 배낭 여행객이 된 것 같다.

간혹 떨어지는 별똥별에 소원을 빌어보기도 하고 별자리를 찾아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려 보면 눈이 어둠에 완벽히 순응하는 순간이 온다. 그때 설렘은 두려움으로 변한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우주 속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항성들. 그리고 그 항성 주위를 뱅글뱅글 도는 수만 개의 행성. 지금 우리가 보는 작은 점, 별은 어쩌면 태양보다 큰 존재일 수 있다. 가늠조차 되지 않은 우주에서 인간이라는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의 존재일까. 아마도 먼지보다도 못한 크기의 미물일 수도 있겠지. 우주가 탄생한 지 140억 년이라고 하는데 100년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의 삶이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사진출처 정선 파크로쉬 리조트앤웰니스

미국의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은 그의 저서인 <창백한 푸른 점>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중략)…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중략)…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 있는 너무나도 작은 무대이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려고 했던 역사 속의 수많은 정복자들이 보여준 피의 역사를 생각해보라. 이 작은 점의 한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구분할 수 없는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잔혹함을 생각해 보라. …(중략)… 우리가 사는 이곳은 암흑 속 외로운 얼룩일 뿐이다. …(중략)…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히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살다 보면 짜증나는 일의 연속이다. 사소한 문제들. 예를 들면,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는 것부터 인간관계에서의 트러블과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들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힌다. ‘나는 왜 이럴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하는 걸까?’와 같은 생각을 하다 보면 살아가는 것 자체가 형벌로 느껴지기도 한다. 지쳐버린 마음과 버티지 못하는 몸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우리는 존재 이유를 잃고 방황한다. 그럴 때마다 밤하늘을 바라보면 어떤 위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칼 세이건이 말했던 것처럼 이 광활한 우주 속 티끌에 불과한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걱정하는 것들도 아주 작은 먼지에 불과한 것 같다. 이토록 아름다운 별이라면 머릿속을 괴롭히던 문젯거리가 어느새 별것 아닌 것으로 느껴지고 불안했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블루 스톤 인 더 풀
알람도 울리지 않았는데 눈이 떠졌다. 기지개를 켜고 커튼을 열어젖혔더니 신비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푸른 능선 아래로 짙은 안개가 내려앉았고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는 중이었다.
1층에 있는 아웃도어 스파로 나가자 어마어마한 새벽 추위에 몸이 절로 오그라들었다. 그냥 들어갈까 생각했지만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어 그대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은 온천탕만큼 뜨겁지 않았고 물의 깊이가 80cm밖에 되지 않아 수영이 불가했지만 나 홀로 스파를 즐기기엔 적당했다.

수영장 바닥에 깔린 작품도 멋스러웠다.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설치미술가 리차드 우즈의 ‘블루 스톤’이라는 작품이었는데 패턴이 독창적이고 개성 넘쳤다. 스파를 하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랄까.

풍경도 만족스러웠다. 그새 시간이 지났는지 안개는 흐릿해지고 쨍쨍한 태양이 산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와 냄새도 잠든 정신을 기분 좋게 깨웠다. 조금 춥다 싶어 가운을 뒤집어쓰고 선베드에 앉아 차를 마셨는데 뜨거운 차가 목을 타고 내장 하나하나를 따뜻하게 데우는 기분이 꽤나 짜릿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찾아 떠난 파크로쉬 리조트앤웰니스. 돌이켜보면 목적과 달리 꽤나 많은 활동을 한 거 같아 아이러니하다. 그래도 분명한 건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불편한 걱정을 단 한순간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닥친 상황 그대로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쉬었다. 피곤하면 푹신한 침대에서 잠을 청하고, 심심하면 라이브러리에서 책을 읽거나 글라스하우스에서 음악을 감상했다. 움직이고 싶으면 스파를 했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었고 밤에는 별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 가끔은 고민 따위 던져버리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널브러지는 게 행복인 것 같다.

파크 키친 조식 뷔페
파크로쉬 리조트앤웰니스 조식이 그렇게 훌륭하다고 하는데 과연 진짜였다. 곤드레 나물 비빔밥과 초당 순두부 등 강원도의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맛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벌집 꿀, 각종 과일, 건강한 음료, 다양한 빵과 치즈 등 웰니스 음식도 취향에 맞게 즐길 수 있다.

07:00~10:00

3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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