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국내 여행지 6
문학 속 국내 여행지 6
  • 고아라 | 아웃도어DB
  • 승인 2021.09.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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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진심인 당신을 위해

사진이나 언론에는 담기지 못했던 삶의 애환들.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풍경이 펼쳐지는 소설 속 국내 여행지를 모았다.

서울 청계천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1938년 출간된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책을 멀리하는 사람도 익숙한 우리나라 대표 단편소설이다. 구보 씨가 하루 동안 서울 시내를 배회하며 겪은 일을 바탕으로 하는데, 그의 의식과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알고있던 서울이 아닌 생경한 도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 속에서 구보 씨는 어느 여름날 집을 나와 천변 길 광교를 향해 걸어가며 상념에빠 져든다. 천변 길이 바로 지금의 청계천이다. 종로구와 중구 사이를 가로질러 왕십리까지 이어지는 청계천은 총 10.84km 길이로 22개의 교각이 있다. 이중 광통교가 구보 씨가 향했던 천변 길 광교다. 소설의 배경이 된 시대는 일제강점기로, 대대적인 하천 정비 작업이 이뤄졌고 주변에는 근대 건물이 세워졌다. 천변 길을 걷던 구보 씨는 1987년 철거된 백화점, 화신상회와 일제 수탈의 도구였던 조선은행, 조선호텔, 소곡동 등 청계천 일대 곳곳을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온다. 이후 청계천은 한동안 고가도로가 되어 종로구에서 성동구까지 차들이 오갔으나 2005년 복원 사업으로 인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역사와 그만큼 쌓여온 다양한 사연을 만날 수 있어 시민들은 물론 관광객도 즐겨 찾는다.


전남 순천만습지
〈무진기행〉

1964년 소설가 김승옥은 23살의 나이에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인 <무진기행>을 발표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서울로 상경했다가 실패를 맛본 후 무진으로 귀향하는데, 이때 무진에서 겪은 2박 3일간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작품 속에서 무진은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동시에 탈일상을 대표하는 상징 매체다. 그만큼 무진의 아름답고 오묘한 자연 풍경이 자세하게 묘사돼 있어 실제 없는 도시지만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여행하듯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무진기행의 무진은 김승옥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순천시를 모티브로 한다. 특히 순천만습지에 가면 무진 속 평온하고도 몽환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힐링 여행지’로 손꼽히는 이곳은 160만 평에 달하는 갈대밭과 690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갯벌로 이뤄져 있어 전혀 다른 세계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겨울이면 흑두루미, 재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검은머리물떼새 등 희귀한 철새들이 찾아와 신비로움을 더한다. 순천만습지 주변에는 문학작품 속 배경에 등장하거나 문학계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한 명소들이 가득하다. 박완서 작가가 ‘봄꽃보다 아름답다’ 한 개펄이 있는 와온해변, 정호승의 <선암사>에 등장하는 선암사, 법정 스님이 <무소유>를 집필한 송광사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사진출처 한국관광공사
사진출처 한국관광공사

경남 하동 최참판댁
〈토지〉

경상남도 하동군 평사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대하소설 〈토지〉에는 “축축이 젖은 모래는 여인네 살갗처럼 부드러웠다. 섬진강의 모래는 순백색이며 가루같이 부드러웠다.”, “섬진강과 해란강이 왜 다를까 하고 생각한다. 아름답기론 섬진강 편이다. 조촐한 여자같이, 청아한 소복의 과부같이, 백사는 또 얼마나 청결하였는가.” 등 하동의 풍경이 자주 묘사된다.

사진출처 한국관광공사
사진출처 한국관광공사

무려 26년에 걸쳐 집필된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사실 평사리와 아무런 연고도 없었다. 작품을 구상한 후 배경을 찾아 떠났다가 동양화를 닮은 아름다운 섬진강의 풍경과 늠름한 지리산, 넓은 들판을 보고 평사리를 낙점했다고 알려져 있다.

<토지>에서 자연 풍경을 제외하고는 모두 허구의 공간이지만 이후 최참판댁을 비롯한 한옥 여러 채와 읍내 장터 등이 세워져 소설 속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게 됐다. 평사리에서는 모든 길이 최참판댁으로 이어진다. 이후에는 평사리문학관, 농촌문화예술체험관, 전통문화전시체험관 등이 들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기 시작했다. 한편 <토지>가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평사리에 세트장까지 조성돼 손꼽히는 국내 여행 명소로 거듭났다.


사진출처 한국관광공사
사진출처 한국관광공사

인천 만석동&차이나 타운
〈괭이부리말 아이들〉

2001년 MBC <느낌표-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의 선정도서로 소개되면서 국민 소설로 자리 잡은 김중미 작가의 <괭이부리말아이들>은 인천의 한 달동네를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실제 1987년부터 인천 만석동의 달동네에 거주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주민들의 삶과 애환을 그려냈다. ‘괭이부리말’이라는 명칭 역시 만석동 달동네의 별칭이다. 6.25 전쟁 직후 피난민들이 모여형성된 곳으로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빈민지역이기도 하다. 작품 속 쌍둥이 자매인 숙자와 숙희는 어머니가 집을 나가 아버지와 힘겹게 살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왔을 땐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같은 마을 아이들인 동수와 동준 형제 역시 부모가 모두 집을 나가 힘겨운 삶을 살아낸다. 그럼에도 숙자와 숙희에겐 동생이 생기고, 동수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공장에서 일을 하고, 명환은 제빵 기술을 배우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만석동 근처에 자리한 인천 차이나타운은 소설의 배경인 1990년대 후반 당시 중국인 거리라 불렸다. 숙자, 숙희의 엄마가 가출했다가 돌아와 비디오 가게를 차린 곳으로, 당시 이국적인 분위기가 묘사돼 있다.


강원도 춘천 김유정문학촌
〈동백꽃〉

‘한국의 영원한 청년작가’라고 불리는 김유정은 1908년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태어나 스물아홉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봄·봄>, <동백꽃>, <산골 나그네> 등 훌륭한 소설을 다수 남겼다. 이 작품들이 탄생한 곳이자 배경이 된 장소가 바로 김유정 작가의 고향인 춘천 실레마을이다. 지금은 김유정문학촌이라 불린다. 지하철 경춘선을 이용해 김유정역에 내리면 도보 10분 거리에 김유정문학촌이 있다. 김유정 생가는 물론, 김유정기념전시관, 김유정이야기집 등이 자리해 그의 삶과 문학세계까지 면밀히 살펴볼 수 있다. 지주 집안 출신인 김유정의 생가는 크고 번듯하게 지어진 한옥인데, 지붕에 기와가 아닌 초가를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대부분의 집이 초가지붕으로 지어져 마을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심이 돋보인다.

건물은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ㅁ’자 형으로 지어졌다. 이외에도 마을 곳곳에서 작품 속 인물의 이름을 딴 상호들을 발견할 수 있어 마치 소설 속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문학 명소다.


사진출처 한국관광공사
사진출처 한국관광공사

전북 남원 노봉마을
〈혼불〉

일제시대 조선인들의 비극과 애환을 치밀하게 다뤄 한국 대표 소설 중 하나로 꼽히는 최명희의 <혼불>은 전라남도 남원을 배경으로 쓰였다. 일제 강점기인 1930~1940년대 몰락해가는 양반가 며느리 3대의 이야기를 그린 대하소설로 당시 힘겨웠던 남원 사람들의 삶은 물론, 호남 지방 특유의 풍속, 노래, 음식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 우리 풍속과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을 받고 있다.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된 남원 노봉마을에는 <혼불>을 기념하고 암으로 세상을 떠난 최명희 작가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혼불문학관이 자리한다. 특히 최명희 작가의 원고를 형상화한 디오라마가 전시돼 있어 소설 속에 들어와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주변에는 종가, 노봉서원, 청호저수지, 새암바위, 달맞이동산, 서도역 등 소설 속 마을 풍경이 그대로 펼쳐진다. 그중 폐역이 된 서도역은 영상 촬영 세트로 개조 후 이름을 알리게 됐으며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로 입소문을 타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명소로 거듭났다. 오래된 철길 양옆으로는 곧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줄지어 있어 인생샷 명소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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