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풍경 속을 거닐다
사색의 풍경 속을 거닐다
  • 조혜원 | 조혜원
  • 승인 2021.09.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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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 여행

정약용의 유배지, 남도 답사 1번지 강진. 멀고 먼 유배지에서 다산은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권의 책을 집필했다. 강진의 풍경 속을 걷다 보면 절로 문학적 감수성이 짙어진다.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월출산, 그 산줄기 아래 자라는 야생 차, 끝없이 펼쳐지는 풍족한 논, 거칠지 않은 바다와 갯벌, 강줄기를 품은 땅. 그 풍경 속을 거닐면 싶은 사색에 빠질 수 있다.

강진은 정약용의 유배지로 유명하지만, 일제강점기 어둠의 시기에 순수 문학인 시문학파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무엇이 많은 문인들로 하여금 시를 짓고 글을 쓰게 했을까.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의 첫 장소도 강진이다. 어디서든 고개를 돌리면 볼 수 있는 웅장한 월출산, 풍족한 곡식과 바다에서 나는 것들로 차려지는 푸짐한 밥상, 고려청자, 하멜표류기의 흔적, 곳곳에 남아있는 문학의 향기까지. 강진은 일주일을 머물러도 부족할 만큼 품고 있는 이야기가 많다. 정약용의 흔적만 따라가도 강진의 주요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생각, 용모, 언어, 동작이 올바른 이가 사는 집
사의재

사의재는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 와서 처음 4년간 지내던 곳이다. 강진읍 동문 밖에서 동문매반가라는 주막을 운영하는 주모가 주막 바깥채 방 한 칸을 내어주었고, 정약용은 그 방을 ‘생각, 용모, 언어, 동작이 올바른 이가 사는 집’이라는 뜻의 사의재라 이름 짓고, 몸과 마음을 새로이 다잡고 교육과 학문 연구에 헌신하기로 다짐했다.

“어찌 그냥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시지 않겠는가?” 하는 주모 할머니의 이야기를 받아들여 직접 편찬한 <아학편>을 주 교재로 제자를 가르치고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사의재는 강진군에서 주막을 당시 모습처럼 재현하고 바로 옆에 한옥체험관도 지어놓았다. 한옥체험관에서 숙박을 할 수 있으며, 주막에선 정약용이 즐겨먹던 아욱국도 맛볼 수 있다. 참고로 사의재 주막은 시골밥상과 막걸리가 유명하다.


산 깊은 곳에서 피어난 학문의 의지
다산초당

정약용은 사의재에서 4년을 보내고 외가인 해남 윤 씨 일가가 마련해 준 초당으로 거처를 옮긴다. 울창한 숲,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산중에 고즈넉한 산정이 자리한다. 초당이 자리 잡은 만덕산은 산기슭에 차 밭이 많이 있어 차가 많은 산이라는 뜻의 다산이라 불렸다. 차를 즐겨 마시고, 차 밭이 많은 곳에 사는 선생이라 하여 강진 사람들이 정약용을 다산 선생이라 불렀다고 한다.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길, 풀리지 않는 생각의 실타래처럼 굵고 구불구불한 소나무 뿌리가 서로 얽히고 설켜 땅 위로 드러나있다. 시인 정호승이 이 길을 걸으며 ‘모든 길의 뿌리가 된다’고 시를 지은 뿌리의 길이다. 정약용은 이곳에서 머물며 다산학단이라 불리는 18명의 제자를 기르고,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서 ‘목민심서’, 형법에 관한 책 ‘흠흠신서’ 국가와 사회에 대한 개혁원 식을 제시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체로 다산초당이란 현판을 걸고, 작은 연못을 만들고 차를 덖어 마시며 강진의 아름다운 풍광을 시로 지어 읊었다. 산 중에 꼭꼭 숨어 있는 쓸쓸한 산정이 아니라 선비가 꿈꾸는 이상적인 학문의 장이었다.

하늘 끝 한 모퉁이란 뜻의 천일각을 지나 왼편으로 난 산길을 따라가면 천년고찰 백련사가 나온다. 야생차 군락지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 숲이 이어져 30~40분 정도 가볍게 산행 하기좋다.


천년고찰에서 이어간 우정
백련사

백련사는 정약용의 유배생활 동안 벗이자 스승이며 제자였던 혜장 스님 머물던 사찰이다. 다산에게 차를 알려준 이도 혜장 스님이다. 백련사에는 약 1만 6천여 평에 수령 100~300년의 천연기념물 동백나무 고목 1500여 그루가 울창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어 봄이면 붉은 동백이 터널을 만드는 장관이 펼쳐진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누각인 만경루의 네모난 창밖으로 화려한 백일홍과 구강포 앞바다가 일렁인다. 이곳에서 스님들은 수행을 하고, 템플스테이 수련, 우리 음악 듣기 등의 문화행사 공간으로 활용한다. 누각을 지나면 대웅전이다. 빛은 바랬지만 여전히 화려한 단청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울창한 숲속 비밀의 정원
백운동 별서정원

월하리 차밭 끝자락에 백운동 원림이 있다. 한낮에도 어두울 만큼 울창한 숲을 지나면 별안간 환해지면서 비밀의 정원 같은 별서정원이 나타난다. 별서정원은 조선 중기 선비 이담로가 지은 정원으로, 우리나라 전통 원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호남의 3대 정원으로 꼽힌다. 조선 중기 선비들의 은거문화를 알 수 있는 곳으로 꼭꼭 숨겨져 있다가 정약용이 남긴 화첩이 발견되며 재조명 받았다.

정약용이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 등반 후 하룻밤 머물고 아름다운 풍광에 반해 12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꼽아 초의 선사에게 백운동 도로 그리게 하고, 정약용이 시를 써 백운첩을 만들었다. 주차장에서 정원으로 가는 길, 울창한 동백나무가 터널을 만들고, 정원 마당에 인공 연못에는 사계절 꽃이 핀다. 담 너머에는 울창한 대나무 숲이 바람결에 파도 소리를 낸다. 대나무 숲을 지나 월출산 방향으로 걸으면 이한영 생가에 닿는다.


목민심서를 먹는 마을
강진책빵

강진의 특산물인 귀리와 쌀, 녹차로 만든 건강한 간식 강진책빵. 작은 동네 책방 같아 보이는 곳에 들어가면 책 모양의 상자 속에 귀리 맛 목민심서, 코코아맛 경세유표, 커피 맛 흠흠신서, 녹차 맛 강진책방이 들어있다. 우리 땅에서 자란 우리 밀로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아 아이들 간식으로 딱이다. 달지 않은 팥이 알차게 들어있어 우유나 커피와 궁합이 좋다.


다산이 즐겨 마시던 차
백운옥판차

우리나라 최초 녹차 상표이자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차의 정체성을 지킨 백운옥판차. 이 차의 유래는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를 끝내고 돌아가며 제자들과 다산 계를 맺으며 시작됐다. 다산 계는 스승인 다산에게 해마다 차를 만들어 1년 간 공부한 글과 함께 보내기로 한 약속으로, 가장 어린 제자였던 이 시험과 그의 자손은 100년 이상 그 약속을 지켰다. 그러던 중 일제강점기에 우리 차가 일본 차로 둔갑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백운옥판차’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차상표를 만들어 우리 차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지켰다.

월출산 옥판봉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월남 사지 자락에 있는 이한영 차 문화원에 가면 백운옥판차를 체험할 수 있다. 바로 옆이 이한영 생가다. 현재는 이한영의 고 손녀이자 이한영 전통차 문화원의 이현정 원장이 차를 만들고 우리 차 이야기를 들려주며 차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떡차 만들기 체험, 차 피크닉 세트 대여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백운옥판차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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