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무암 협곡에서 건져 올린 여름 추억
현무암 협곡에서 건져 올린 여름 추억
  • 글 ·김경선 기자 | 사진 ·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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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TRAVEL 철원 한탄강 | ③ 한탄강 래프팅

▲ 한탄강은 물살이 다소 얌전하기는 하지만, 물이 불어나면 무서운 급류가 속속 나타난다. 고무보트가 전복하는 일도 잦다.

직탕폭포에서 군탄교까지 구간 선택 가능…고석정 둘러보는 승일교~순담코스 인기

내린천에는 급류가 있고 동강에는 뼝대가 있다. 그리고 한탄강에는 협곡이 있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수려한 협곡을 지나다 보면 단아한 수묵 담채화가 끝없이 펼쳐진다. 이 아름다운 풍광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래프팅만한 것이 없다. 굽이치는 협곡과 혼연일체가 되어 떠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수묵화의 한 장면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취재협조·철원관광레저 033-455-1111

▲ 래프팅 시작 전 “하나 둘 셋, 파이팅!”
때 늦은 폭염이 전국을 뒤덮더니 여름의 절정이 지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길어진 여름,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식혀줄 물놀이가 절실하다. 여름철 가장 인기 있는 레포츠는 뭐니 뭐니 해도 래프팅이다. 하얀 포말이 넘실대는 급류를 헤쳐 나가다 보면 짜릿한 스릴에 더위는 씻은 듯 사라진다.

한탄강은 ‘래프팅의 요람’이다. 지금이야 전국 곳곳에서 흔히 즐기는 래프팅이라지만 한탄강은 1980년대 초반부터 래프팅을 시작했다. ‘래프팅의 요람’ 답게 빼어난 절경과 스릴 넘치는 급류를 자랑하는 한탄강은 내린천이나 동강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무엇보다 강변의 아름다움은 한탄강 래프팅의 핵심이다. 용암이 훑고 지나간 자리는 평지를 깎아 한탄강을 만들었다. 자, 시선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기기묘묘한 한탄강 현무암 협곡의 아름다움 속으로 떠나보자.

유쾌·상쾌·통쾌한 급류 체험
일부 마니아들만 한탄강에서 래프팅을 즐기던 20여 년 전에는 고무보트가 흘러가는 곳이 코스였다고 한다. 특별한 규제도 없고 아는 이도 드물었던 시기다.

검은 바위가 쭉쭉 뻗은 협곡지대를 거침없이 흘러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래프팅 코스가 정해져 있다. 불미스러운 안전사고를 방지하고 수질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한탄강에서 래프팅이 허가된 구간은 직탕폭포에서 군탄교까지다.

▲ 래프팅을 하면 아이도 어른도 모두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모두 하나가 되어 물길을 헤쳐 나갔다.

보통 직탕폭포~승일교, 승일교~순담계곡, 순담계곡~군탄교 이렇게 3개 코스로 나눠 래프팅을 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구간은 순담계곡에서 군탄교까지 약 7km 구간이다. 한탄강에서 래프팅이 상업화되면서 가장 처음 생겼다. 하지만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코스는 승일교~순담계곡 코스다. 한탄강 협곡지대의 핵심절경인 고석정을 지나는 이 코스는 빼어난 풍광과 짜릿한 급류가 어우러져 래프팅 내내 수려한 풍경을 가슴에 품을 수 있다.

수면 위에서 바라보는 고석정의 풍광을 놓칠 수 없어 승일교~순담계곡 코스를 선택했다. 12명이 한 조를 이뤄 승일교 다리 밑에 배를 띄웠다. 승일교는 1948년 철원이 북한 땅이었을 때 만들기 시작해 6·25전쟁 후 남한이 철원을 차지하고 나서야 완성됐다.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간직이라도 한 듯 새로 생긴 한탄대교 옆에 서있는 승일교는 현재 도보 통행만 가능하다.

“바로 앞에 첫 번째 급류가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래프팅이 금지된 구간이기도 합니다. 제가 일러주는 대로 패들링하지 않으면 보트가 전복합니다. 다들 정신 바짝 차리세요.”

간단히 준비운동을 마치고 고무보트에 몸을 싣자마자 교관의 계속된 주의에 함께 탄 사람들의 표정이 일순간 어두워졌다. 아직 몸도 제대로 풀리지 않았는데 벌써 급류라니. 물줄기가 떨어지는 소리는 멀리서도 오싹했다.

▲ 잠시 두려움을 잊고 과감하게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5m 높이의 바위 위에서 물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

앞선 보트들이 하나둘 내려가기 시작했다. “꺅~” 비명 소리가 계곡을 울렸다. 긴장으로 온몸이 쭈뼛거렸다.

“양현 앞으로!”

“하나 둘, 하나 둘”

있는 힘껏 노를 저였다. 12명이 한 몸이 되어 거친 물살을 헤쳤다.

“좌현 하나, 우현 하나!”

순간, 고무보트가 공중으로 붕 뜨나 싶더니 들썩거리며 급류 속을 파고들었다. 사방에서 물이 튀기고 보트가 기우뚱거렸다. ‘이대로 뒤집히나?’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배가 급류 한가운데서 바위에 걸렸다.

“하나, 둘, 셋! 하면 다 같이 앉은 채로 뛰세요. 이대로 있다가는 맨 몸으로 급류를 내려가야 해요.”

교관의 얼굴에 긴장이 역력한 것을 보니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잔뜩 긴장한 사람들은 구령에 맞춰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뛰기를 반복하는 사이에도 배는 꿈쩍하지 않았다. 바로 아래에는 1m 높이의 여울이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보다 못한 교관이 급류 속으로 뛰어들어 배를 끌어당겼다. 배가 서서히 움직이며 급류 속으로 다시 휘말려 들어갔다.

“모두 안으로 숙이세요!”

교관의 다급한 목소리에 사람들이 일제히 보트 속으로 몸을 수그렸다. ‘철썩철썩’ 소리를 내며 수면과 보트가 거칠게 부딪히더니 잠시 후 잔잔한 수면에 안착했다.

“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뒤돌아 다른 보트들을 보니 급류의 충격을 이기지 못한 몇몇 사람들이 보트에서 튕겨져 나와 급류에 휩쓸리고 있었다. 위험한 구간이라는 교관의 이야기가 그저 겁주기 위한 말은 아니었다. 무사히 내려왔다는 안도감과 아찔한 쾌감에 사람들의 얼굴이 상기됐다.

▲ 잔잔한 수면 위에서 두 보트가 만났다. 서로 물을 튀기며 동심에 젖어본다.

임꺽정이 반한 협곡 절경, 고석정
한차례 폭풍이 지나자 물길이 잔잔해졌다. 몇 대의 고무보트가 조용한 수면을 가르는 사이 사람들은 물속에 뛰어들어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수면 위에서 바라보는 강은 또 다른 분위기다. 한탄강 줄기 따라 펼쳐진 거대한 현무암 협곡지대는 수직 주상절리로 수려함을 뽐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내려가니 어느새 고석정이다.

▲ 수려한 협곡 위를 줄지어 떠내려가는 고무보트. 한탄강 래프팅의 매력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협곡이다.
어떤 산수화가 이보다 아름다울까? 조각 같은 강변 기암절벽 사이에 우뚝 솟은 고석바위는 고석정의 절경을 더욱 빛냈다.

고석바위에서 숨어 살던 임꺽정이 관군의 추격에 꺽지가 되어 한탄강으로 도망갔다는 전설 때문인지 고석정 일대는 더욱 깊고 푸르러 보인다. 보트에 탄 사람들도 한 마디씩 감탄의 말을 내뱉었다.

전국 어느 강에서 이런 웅장한 협곡 지대를 만날 수 있을까?

보트는 굽이친 강줄기를 크게 돌았다. 새로운 풍경이 또 다시 펼쳐졌다. 강은 계속 잔잔했다. 교관이 잠시 보트를 강변에 세웠다. 다이빙 포인트다.

“이곳은 수심이 깊어서 어떤 자세로 뛰어도 위험하지 않아요.”

5m 정도 높이의 바위 위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옥빛 물속으로 과감하게 뛰어드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고 해맑다. 편안한 친구 같은 한탄강은 도심의 생활에 찌든 사람들에게 포근한 품을 한없이 내어주었다.

▲ 군탄교 밑에서 준비운동중인 사람들.

한탄강과 대교천 합수구간, 최대 난코스
“이제 최대 난코스만 남았습니다. 이 구간은 보트가 자주 전복되고 사고가 잦아서 위험하죠. 보통 보트만 따로 떠내려 보내고 사람들은 강변을 따라 걸어 내려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만큼 조심해야 합니다. 정신 바짝 차리세요.”

첫 번째 급류의 아찔함을 서서히 잊어갈 무렵 최대 난코스가 다가왔다. 우측에서 내려오는 대교천과 한탄강이 합수하는 지점에는 뚝 떨어지는 여울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잠시 가벼운 급류를 지났다. 앞선 팀들 대부분이 보트를 강변에 세웠다. 강변을 따라 걸어 내려가는 팀들이었다.

“양현 앞으로! 세게, 더 세게!”

긴장한 사람들의 패들링이 세차졌다.

구령에 맞춰 힘차게 노를 젓는 사이 보트가 급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혹시나 떨어질까 보트에 발을 더욱 단단하게 밀어 넣었다.

“모두 앞으로 숙이세요!”

‘풀썩~’ 보트가 하늘을 향해 힘껏 머리를 들어 올리더니 붕 날아 수면에 부딪혔다. 보트 속으로 세찬 물보라가 쏟아졌다. 공포의 비명 소리 대신 환호 소리가 한탄강에 가득 울렸다. 우리는 무사히 내려왔다는 뿌듯함에 일제히 노를 들고 파이팅을 외쳤다. 12명의 타인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 한탄강 절경의 백미 고석정.

마지막 급류를 지나 순담계곡으로 들어가는 사이 강은 내내 잠잠했다. 관군을 피해 몸을 숨겼던 임꺽정조차 이 아름다운 풍광에 자신의 처지를 잠시 잊지는 않았을까?

푸른 숲과 기암절벽의 환상적인 조화 속에서 한탄강은 다시 한 번 자태를 뽐냈다. 우리는 천천히 푸른 꿈을 저으며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한껏 충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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