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웃도어 역사
한국의 아웃도어 역사
  • 김경선 | 아웃도어DB
  • 승인 2021.06.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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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한국에서 ‘아웃도어’를 모르는 이가 없겠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생소한 단어였다. 아웃도어OUTDOOR란 야외에서 즐기는 다양한 활동을 통칭하는 말로 한국에서는 주로 등산이나 캠핑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아웃도어는 먹고 살기 힘든 저개발국가보다 선진국에서 더 활발하게 꽃을 피웠다. 그런 면에서 짧은 시기에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룩한 한국은 아웃도어 발전도 드라마틱했다.

한국의 아웃도어가 시작한 시기는 언제일까.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온 나라가 폐허가 된 시기에 국민들은 반강제적으로 비박에 내몰렸다. 유럽과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가 꽃을 피우고, 옆 나라 일본에서는 1950년 안나푸르나, 1953년 에베레스트, 1956년 마나슬루 등반에 성공했지만 한국은 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눈앞에 생존을 걱정해야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민들은 주한미군의 버려진 군화를 고쳐 등산화를 만들고 군복으로 아웃도어 의류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의 등산 장비는 미군이 야전에서 사용하던 군수품을 개조해 만든 텐트와 배낭, 침낭, 군화 등이었고, 이러한 구제 물품은 주로 남대문시장에서 유통됐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은 아웃도어 산업 여명기에 들어선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하고 산업화로 인해 소득이 증가하면서 여가생활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높아졌다. 이 시기에 토종 등산 장비 브랜드가 생겨난다. 국내 최초의 등산용품점은 1970년 종로에 문을 연 설우상사로 한국산 등산용 팬츠를 처음으로 출시한다. 이후 1973년 동진산악(現 블랙야크)이 문을 열면서 본격적인 토종 아웃도어 브랜드의 면모를 갖춰간다. 그 뒤를 이어 1977년에는 故 고상돈 대원이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하면서 등산 붐이 일었다. 대학 산악동아리는 물론 일반인 산악회가 생겨나면서 동대문에 장비점 골목이 생겨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1980년대에는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전국의 산과 계곡에서 텐트를 치고 취식을 하는 휴가객이 늘어나는 등 캠핑 시장이 급격하게 커졌다. 그러나 자연보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산과 강, 계곡 등지에서 무분별한 취식 행위로 인한 오염이 발생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1990년대의 아웃도어 시장은 환경오염에 대한 이슈가 대두되면서 자연보호에 관한 인식이 생겨났다. 당시 여행 산업이 인기를 끌면서 등산에 국한됐던 아웃도어 시장은 2000년대 중반까지 잠시 숨을 고른다. 이후 주5일제 시행과 국민 소득의 증대 등으로 2010년대 초반까지 아웃도어 시장은 전에 없던 부흥기를 맞이한다. 등산복이 국민 의류로 사랑받으면서 아웃도어 브랜드 매출은 매년 신기록을 갱신했고, 국내 브랜드는 물론 해외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에 진출하며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했다. 끝을 모르던 아웃도어 붐은 2015년을 정점으로 다시 숨고르기에 접어들었다. 우후죽순 늘어난 아웃도어 브랜드 중 경쟁력 없는 브랜드는 자연스럽게 퇴출되었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발맞춰 내실을 다지는 시기를 거친다.

주춤하던 아웃도어 시장이 2020년 코로나19의 발발로 다시금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캠핑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중장년층 일색의 아웃도어 시장에 젊은 층이 진입하면서 새로운 트렌드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아웃도어 는 취미의 일환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젊은 세대들이 유입되며 한국의 아웃도어 산업은 지금 한 단계 도약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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