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커 오세진 인터뷰
하이커 오세진 인터뷰
  • 박신영 기자 | 사진제공 오세진
  • 승인 2021.06.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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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주는 따뜻한 위로

소통이라는 주제로 다섯 권의 책을 집필한 오세진 씨. 나, 타인, 내 몸과의 소통을 통해 나를 찾는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는 자연과도 소통한다. 자연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그녀의 하이킹 라이프가 궁금하다.

작가, 트레일 러너, 힐링 프로듀서, 아웃도어 크리에이터라고 알려졌어요.
모든 수식어가 전부 다른 단어 같지만 결국 모두 제가 만들어가는 삶의 모습이에요.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오세진은 글과 말로 세상을 만나고 소통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자연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사람이기도 하고 경험을 사는 것에 관심이 많은 행동주의자이자 경험주의자라고도 알아주셨으면 해요.

‘자연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나’는 어떤 의미인가요?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가식과 의식을 걸치고 살았다고 생각해요. 내가 나를 정의하지 않아도 타인이 ‘작가’ 또는 ‘강연가’라는 굴레에 저를 집어넣고 판단하려는 모습도 많이 봐 왔어요. 때때로 ‘작가가 왜 저렇지?’, ‘강연하는 사람이 저렇게 해도 괜찮아?’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산에서는 오로지 내 마음에 집중하고 내 생각과 기분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 외에 그 어떤 생각들도 개입하지 않더라고요. 산에서는 그 무엇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순수한 나를 만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제 모든 SNS 채널에 ‘자연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나’라고 저를 소개합니다.

산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을 거 같아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세 번의 교통사고를 겪었어요. 광역버스 후미를 들이받아서 큰 충격이 있었고, 경부고속도로에서 후방 추돌 사고가 있었죠. 심신이 회복되려고 하면 연이어 사고가 터져서 정신이 없었어요. 수시로 통증이 몰려와 일상생활을 못 할 정도로 힘들던 시기였어요. 그러던 중 달리기와 등산을 만나 무너진 몸과 마음을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덕분에(?) 산에 더욱더 빠지게 됐습니다. 오래전부터 저는 책으로 독자를 만나고 대중 강연을 통해 청중과 소통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고 계획된 강연과 책 관련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됐어요. 어느새 일정표는 텅 비게 되고 그렇게 1년이 지나버렸습니다. 갑자기 붕 떠버린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할 때마다 산을 찾았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일주일에 4일을 산에서 보내고 있더군요. 복잡한 생각을 풀고 모난 마음을 다스리기에 산만큼 좋은 곳은 없는 것 같아요.

그동안 다녔던 많은 산 중에 포토존 성지로 떠오를 것 같은 산이 있다면요.
산에 다니기 시작한 후배에게 산에 왜 가냐고 물었더니 “인증샷 찍으러 가요”라고 답하더군요. 그 대답이 너무 귀여웠어요. 목적이 무엇이든 산에 간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 같아요. 처음엔 사진 찍으러 가지만 언젠가 자연스레 산에 정이 들고 일상에서 자연을 가까이하는 사람이 될 테니까요.

아무튼 포토존 성지라고 하면 세 개의 산을 꼽고 싶어요. 먼저 충북 제천의 작은 동산을 추천해요. 15분의 산행으로 청풍호반 조망터가 나오거든요. 앞으로는 탁 트인 청풍호수 뷰와 뒤로는 아름다운 소나무 군락지가 예술이에요. 두 번째는 강원도 설악산 신선대 코스가 좋아요. 신선대 코스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오를 수 있고 속초와 고성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거든요. 병풍처럼 늘어선 울산바위도 마주할 수 있고요. 마지막으로는 서울 북한산 비봉 코스나 숨은벽 코스를 추천해요. 서울 중심에 있어 접근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코뿔소 바위, 오리 바위, 토끼 바위 등 귀여운 포토존이 자리해요.

극한 체험으로 알려진 250km 고비사막 레이스도 다녀왔어요.
내 두 다리를 동력 삼아 사막을 걸어보고 싶었어요. 물론 아주 오랫동안 ‘사막에서 별 보기’라는 막연한 로망도 있었고요. ‘레이스를 완주하면 인생이 달라지겠지’라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질 거야’라는 특별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니고 그저 마음이 시켜서 고비사막으로 떠났어요. 그런데 자연은 역시 쉽게 곁을 내주지 않더군요. 250km를 완주하는 동안 발에 물집은 물론 염증이 생겨 한 걸음 나아가기도 힘들었어요. 45℃의 찌는 듯한 더위에 끝이 안 보이는 길과 절뚝거리는 다리까지.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몸이 힘든 것도 그렇지만 이 멋진 순간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는 게 속상했던 모양이에요. 한두 방울씩 흐르던 눈물이 어느새 통곡으로 변하더라고요. 그때 앞서 걷던 이탈리아 알폰소 할아버지가 다가와 어깨를 토닥여줬어요. “나는 영어를 못 하지만 원한다면 함께 걸어가 줄게”라면서요. 그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죠. 알폰소 할아버지의 응원과 독려를 받으며 무사히 체크포인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달리기든 걷기든 등산이든 누군가와 함께할 때 그 의미가 확장되는 거 같아요. 제 다섯 번째 책인 <달리기가 나에게 알려준 것들>에서도 언급했지만 ‘running is with’라고 생각해요.

고비사막 레이스를 통해 장비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을 것 같아요.
장비는 사람 고유의 형태와 체취가 입혀지는 순간 기능이 200% 발휘된다고 생각해요. 즉, 몸에서 흘린 땀과 익숙함을 통해 장비와 내가 하나가 됐을 때 최고의 장비빨을 경험할 수 있어요.

사막에서의 장비빨은 경량이에요. 식수를 제외하고 열아홉 끼의 식량, 침낭, 매트, 식기 등 6박 7일 동안 사용되는 짐을 짊어지고 달려야 하므로 가벼운 게 최고죠. 그중 가장 중요한 장비를 꼽자면 단연 등산화고요. 고비사막에 가기 전에 등산화 관련 정보를 많이 찾아봤어요. ‘발이 퉁퉁 부어서 신발이 들어가지 않는다’, ‘레이스 중간에 신발을 칼로 찢어서 넓혔다’는 글을 많이 봤죠. 그래서 애초에 반 치수 큰 등산화를 준비했는데 그게 화근이었어요. 등산화 안에서 발이 이리저리 놀며 물집을 만들었고 레이스 내내 발목을 잡았으니까요. 다 경험 부족이죠. 그래도 내 발에 맞는 등산화를 준비해야겠다는 건 확실히 알게 됐으니까 좋은 추억이라 생각해요.

대자연을 만난 소감도 남다를 것 같아요.
일주일을 휴대폰과 와이파이 없이 살았지만 그 안에 더 좋은 연결이 있었어요. 오롯이 자신과의 연결, 타인과의 연결, 대자연과의 연결이 가능했죠. 힘들어 죽을 것 같아도 다음날 멀쩡하게 뛰어나가는 각국의 선수들과 저는 대자연의 품에서 엄청난 힐링을 하고 온 셈이에요. 고통의 끝에 맛보는 아름다운 자연과 연결되면서 아주 많은 에너지를 받은 것 같아요.

달리기, 등산, 고비사막 레이스 등 끝없이 도전하는 이유가 뭐예요?
저는 빠르거나 강한 주자가 아니에요. 그런데 200m 달리기도 힘들었던 제가 어느새 산을 달리고 100km를 뛰게 됐어요. 멀리 가거나 잘 뛰어야 한다기보다 마음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에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달리면 좋고 산에서는 행복해지니까 자연으로 계속 향하는 것 아닐까요?

세진 씨 일상이 궁금하다면 유튜브 채널 ‘자연에빠지다’를 보면 되죠?
지금까지는 나의 행복만을 추구하면서 살았어요. 성취하고 목표지향적인 삶이요. 그런데 이제는 타인과 함께 좋은 것들을 나누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유튜브 채널 ‘자연에빠지다’도 오픈했고요. 자연에서 받은 좋은 영향과 생각을 영상 에세이처럼 공유하고 있어요. 자연에 가고픈 마음은 있지만 몸이 불편하거나 산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거든요. 비록 자연에서 직접 느끼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영상을 보면서 자연의 이로움을 전달받는다는 구독자들이 많아요. ‘늘 그리워하던 곳의 모습을 영상으로 봐서 힘이 된다’던가 ‘20년 전에 아버지와 오른 산인데 그 추억을 떠오르게 해줘서 고맙다’, ‘사고로 몸이 불편해서 산에 갈 수가 없는데 이렇게 영상으로나마 봐서 좋다’ 등의 댓글이 자주 달리는 것을 보고 앞으로도 꾸준히 산행 영상을 올릴 계획이에요.

인스타그램 healing.jin
유튜브 자연에빠지다
저서 <호모 코어밸리우스>, <커뮤니데아>, <몸이 답이다>, <자유롭게 이탈해도 괜찮아>, <달리기가 나에게 알려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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