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하는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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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신영 기자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1.03.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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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개항로

인천 근현대역사 140년. 한 세기가 훌쩍 넘는 시간동안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은 개항로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저문 개항로
1883년, 인천이 열렸다. 수많은 외국인과 물자를 실은 함선들이 제물포항(現 인천항)에 매섭게 몰려들었고 조선인들은 신문물의 홍수에서 허우적거렸다. 그 사이 제물포항에서 숭의동을 거쳐 서울 영등포를 연결하는 개항로도 빠르게 변화했다. 1888년 국내 최초 호텔인 대불호텔이 외국인들의 여관으로 자리매김했으며 1895년 국내 최초의 실내 극장인 애관극장이 문을 열면서 제물포항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다.

그러나 1899년 국내 최초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개항로는 쇠락의 길을 걷는다. 제물포항에서 경인선을 타면 고작 1시간 40분 만에 노량진에 당도했던 것. 외국인들은 굳이 개항로에 머물지 않아도 서울에 갈 수 있었기에 개항로에서의 상업 활동을 점점 줄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개항로를 거치는 사람들은 많았고 예부터 개항로에 살았던 조선인들도 여전히 거주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활성화된 거리를 유지했다.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길을 개항로라고 통칭했지만 사실은 개항로 사이에 싸리재, 배다리, 신포동, 경동사거리 등 다양한 골목이 존재한다. 각 골목은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의 특색을 지녔는데 그중 신포동에서 배다리를 연결하는 싸리재 골목의 역사가 흥미롭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싸리재는 서울 명동 못지않게 외국의 명품들이 전시되는 곳이었다. 덩달아 예비부부들이 혼수를 장만하는 웨딩 골목, 보석상, 한복집, 가구 거리, 맞춤옷 전문점 등이 생겨났고 싸리재 근처 배다리에 이불시장이 형성 되면서 대규모 골목 상권을 이루었다.

그러나 싸리재의 영광은 1974년 국내 최초 지하철인 1호선이 개통되면서 점점 흐려졌다.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길이 더욱 빨라진 것. 인천 사람들이 서울에서 상업 활동하기 쉬워지자 싸리재의 상권과 경제권이 서울로 넘어갔다. 텅 빈 상점이 하나둘 늘어나고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과거의 영광은 한순간에 무색해졌고, 그 흔적은 방치된 낡은 건물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싸리재에 남은 사람들은 그 시절 호황을 겪은 노포 주인장들뿐이었다.

개항로 프로젝트 이창길 대표

싸리재 제3의 전성기를 도모하는 개항로 프로젝트
옛날엔 번성했지만 지금은 죽어버린 싸리재가 변화의 시동을 걸고 있다. 3~4년 전부터 젊은 도시 재생가들로 이루어진 개항로 프로젝트가 싸리재의 건물들을 사들이더니 멋진 식당과 카페로 재탄생시키고 거리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하는 개항로 프로젝트 이창길 대표의 일문일답이다.

Q. 개항로 프로젝트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A.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런던의 테이트 모던을 보고 인천이 생각났다. 테이트 모던이 위치한 지역은 과거엔 부둣가이자 항구로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갤러리, 카페, 호텔로 바뀌었다. 인천도 마찬가지다. 인천은 수많은 컨테이너가 설치돼 바다 도시임에도 바다를 느낄 수 없는 도시지만 런던의 테이트 모던처럼 큰 가능성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그중 개항로는 더 거대한 기회를 가졌다. 싸리재 메인 도로를 중심으로 퍼진 무수히 많은 골목에 재미 있는 게 참 많다. 서울 을지로나 종로도 마찬가지겠지만, 그곳은 개발의 바람이 불어 낡은 건물과 노포들이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인천은 갯벌을 메꾸면서 발전된 도시라 근현대 건물이 대부분 보전됐다. 일본식, 서양식, 일제식과 한국식이 혼재한 건물 등 쉽게 보지 못하는 가옥이 많다. 오래된 노포와 이국적이고 빈티지한 건물을 가진 개항로가 기회의 골목이라고 생각했다.

Q. 개항로에서 어떤 일을 했나?
A.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건물을 사들여 밥집, 카페, 갤러리, 술집 등 총 14개의 상점을 오픈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상점만 오픈한다고 해서 매력적인 골목으로 변할까 의심이 들었다. 워낙 복제가 쉬운 세상이다 보니 어떻게 하면 개항로만의 매력을 살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노포 주인어른들에게 집중했다. 싸리재에만 40년 이상 된 노포가 60개 이상이다. 노포와 개항로 프로젝트가 컬래버레이션을 하면 싸리재의 지역성을 살리면서 거리의 변화를 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천 싸리재와 노포의 자료를 찾기 시작했는데, 웬걸 자료가 전무했다. 한국의 근현대를 담은 노포 자료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직접 노포 주인어른을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는 등 자료를 수집했고 그것들을 모아 SNS에 홍보했다.

Q. 노포와 어떤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나?
A. 개항로통닭 간판이 대표적이다. 개항로의 자료를 수집하던 시절, 담배 피우는 곳으로 유명한 뒷골목을 지나가는데 한쪽 벽에 ‘불조심’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골목과는 어울리지 않게 디자인이 감각적이었다. 수소문해 글자를 적은 사람을 찾았더니 개항로 페인트 가게 주인어른이었다. 수십 년 전에 이곳은 애관극장을 필두로 19개의 극장이 영화 산업을 주름잡던 곳이었다. 그러나 극장 간판을 제작했던 주인어른은 최민수 주연의 영화 <리허설> 포스터를 마지막으로 페인트 가게 주인장으로 직업을 바꿨다. 그걸 알게 되고 개항로통닭의 간판 제작을 부탁했다. 개항로통닭 간판이 SNS를 타고 알려지자 페인트 주인장도 덩달아 간판 제작 일을 다시 맡게 됐다. 목간판을 제작하는 전원공예사 주인어른과도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 개항로 프로젝트, 카페 라이트하우스, 개항로고깃집의 간판은 전부 80대 주인어른이 정성스레 쓴 목간판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SNS에 홍보하자 전원공예사 주인어른도 일감이 늘었다. 개항로 프로젝트는 지속해서 노포와 상생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개항로 프로젝트가 오픈한 상점들이 잘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자체로 중요한 자원인 노포가 유지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할 예정이다.

Q. 싸리재 노포의 가치가 궁금하다.
A. 싸리재는 한국 근현대사를 담았다. 1944년 오픈한 삼강설렁탕은 당시 매일 쌀 한 가마니씩 국밥을 판매하던 국밥집이다. 1968년 오픈한 태원잔치국수는 과거에 24시간 풀가동하며 국수를 뽑았던 제면소였고 지금도 직접 뽑은 면으로 잔치국수를 판매한다. 국내에서 올댓재즈와 야누스 다음으로 오래된 재즈클럽인 버텀라인도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약 80년 전 사람들과 지금의 우리는 똑같은 삼강설렁탕 국밥을 먹고 있으며, 약 50년간 저렴한 가격으로 국수를 내던 태원잔치국수는 아직도 맛집으로 불린다. 버텀라인은1983년 오픈 후 주인장이 수없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재즈의 성지로 재즈애호가들을 불러 모은다. 이외에도 47년 역사를 간직한 술집인 대전집, 60년 된 전병과자 가게인 신포과자점 등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노포 주인장의 기술력은 당연하고 노포에서 만들어진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들은 세계 어딜 가도 찾을 수 없는 귀중한 자원이다.

Q. 개항로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A. 없다. 개항로에 남아 계속해서 상점을 운영하고 노포를 홍보할 예정이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지금처럼 해나갈 것이다. 아주 멀리 보면, 그러니까 100년 후의 개항로의 모습을 그려보곤 한다. 영국에 살 때 딱 하나 부러운 게 있었다. 영국 친구들이 거리에서 “여긴 300년 된 집이야. 과거에 ~했던 집이야”라고 했던 말들이 부러웠다. 개항로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미래에 후배들이 와서 “여기 개항로 프로젝트가 산부인과를 개조해서 카페 했던 곳이래. 야, 촌빨 날리지 않냐? 이곳은 거둬내고, 저곳은 남겨서 그대로 쓰자”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산부인과, 카페, 그다음엔 어떤 콘텐츠가 될지 모르겠지만 쓸 만한 공간과 자원은 보존해서 개항로만의 역사를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인천 맥주 '개항로'
개항로 프로젝트가 인천의 지역 맥주인 개항로를 출시했다. 강서, 달서, 해운대, 제주 심지어 대동강 맥주도 출시되는데 대도시인 인천에 지역 맥주가 없어 개항로 프로젝트가 직접 나선 것이다.

개항로 맥주는 맛과 디자인이 투박하다. 다양한 풍미를 지닌 에일 위주의 수제 맥주와 달리 전 세대가 편히 즐길 수 있는 라거다. 개항로 프로젝트의 이창길 대표에 의하면, 개항로 맥주는 카스와 테라보다 조금 더 풍미와 효모 맛을 낸다. 맥주병 디자인은 아재 냄새를 물씬 풍긴다. 330ml로 제작되는 일반 수제 맥주병과 달리 500ml면서 옛날 사이다병과 비슷한 모양이다. 맥주병에 새겨진 ‘개항로’라는 글자는 목간판 노포인 전원공예사 주인장이 제작했고, 맥주 홍보 모델은 페인트 가게 주인장이 맡았다. 우리 집 아빠와 할아버지도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개항로 맥주는 개항로 프로젝트가 운영하는 상점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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