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트래블러의 선택
골목 트래블러의 선택
  • 박신영 기자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21.03.15 0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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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서울숲2길

한국의 브루클린, 성수동의 시작
한국의 브루클린이라 불리는 성수동. 붉은 벽돌 건물, 낡고 허름한 창고, 을씨년스러운 폐공장이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장이나 스타트업 기업의 본사로 변하더니 어느새 분위기 있는 맛집과 카페 거리로 거듭났다. 도시의 변화를 발빠르게 직감한 MZ 세대들은 성수동으로 몰려들었고 이들은 성수동의 발전을 가속화했다. 국내 도시 재생의 성공 사례로 가장 먼저 성수동이 물망에 오르는가 하면 성수동을 변화시킨 젊은 예술가들의 인터뷰와 콘텐츠가 미디어에 도배됐다.

성수동 카페 거리에 가 본 사람들은 골목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보기 힘든 대형 창고에 빈티지한 감성 카페가 자리하고, 아기자기한 소품숍과 주인장의 취향을 담은 독립 서점이 한데 모여 있으니. 문화와 예술에 목마른 젊은이들은 성수동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성수동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 닥친 건 2014년부터다. 공간, 오브제, 디자인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하는 디자인 기획 컴퍼니 ‘아틀리에 에크리튜’의 김재원 대표가 공장형 카페 ‘자그마치’와 문화공간이자 카페인 ‘오르에르’ 열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이후 김 대표는 라이프스타일 숍 ‘W×D×H’, 큐레이션 문구점 ‘POINT OF VIEW’를 연이어 기획하면서 성수동의 분위기를 바꾸어 나갔다. 동시에 소셜 벤처 기업들이 성수동에 둥지를 틀었다. 사회혁신가를 지원하는 비영리기관인 ‘루트임팩트’와 소셜 벤처 투자 기업 ‘소풍벤처스’가 성수동에서 태어났다.

문화 예술가와 젊은 기업가들이 만든 공간은 급속도로 젊은 세대에게 파고들었다. 성수동에 가면 왠지 모르게 문화를 이끌거나 유행을 주도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성수동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성수동의 자유로움과 예술적인 분위기에 매료돼 자신의 취향을 담은 카페와 맛집을 오픈했는데, 상점들은 하나같이 독특하거나 이색적이었다. 폐공장과 창고로 가득했던, 단순히 한물간 도시로 치부됐던 성수동은 그렇게 한국의 브루클린이 됐다.

골목의 팽창과 확산, 서울숲2길
골목은 시간이 지나면서 팽창하고 확산한다. 마치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데 성수동 카페 거리의 패턴을 이어받은 건 뚝섬역 인근 서울숲2길이다.

에디터는 이미 2018년 8월 서울숲2길을 방문했었다. 현재는 뚝섬사거리 헤이그라운드에 있지만 당시 서울숲2길 중심에 위치한 제로웨이스트숍 ‘더피커’ 취재차였다. 2018년 서울숲2길은 그저 주택가였다. 연식이 오래된 개인 주택이 끊임없이 이어지거나 낙후된 저층 아파트가 자리한 곳이었다. 지금이야 제로웨이스트숍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에 거의 볼 수 없는 상점이었기 때문에 ‘더피커’가 유동인구가 적은 서울숲2길에 위치한 것을 알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물론 ‘더피커’가 위치한 주택 자체만 봐도 상당히 잘 꾸며져 있었지만 과연 이렇게 후미진 골목까지 사람들이 찾아올까 의문도 들었다. 그러나 웬걸 서울숲2길은 2년 6개월 만에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골목이 되었다.

성수동에 거주하는 지인은 “성수동 카페 거리가 공장형이라면 서울숲2길은 주택을 개조해 아기자기하고 유니크한 상점이 많아. 사람이 바글바글하지 않고 볼거리가 많은 곳은 서울숲2길이지”라고 서울숲2길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지인의 말처럼 서울숲2길은 입구부터 파스텔톤 상점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소품숍, 베이커리, 카페, 맛집, 안경점 등 무엇 하나 단조롭지 않다.

지도를 펴고 서울숲2길 골목 상권을 확인해 보니 마치 생선 뼈와 같았다. 메인 거리인 서울숲2길을 중심으로 서울숲4길이 양옆으로 뻗어져 있고 서울숲과 바로 연결된다. 메인 거리엔 독특한 상점들이 도로 양옆으로 쭉 늘어져 있는 데, 대부분 주택을 개조해 규모가 작고 아기자기하다. 상점마다 각자의 특색을 담은 파사드façade(건물 출입구가 있는 정면)를 설치하고 간판을 걸어 놓아 걷는 내내 눈이 즐겁다. 종종 상점을 배경으로 개인 또는 단체 촬영하는 사람들이 보이는가 하면 삼삼오오 짝을 이루고 서울숲2길을 투어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특정한 상점을 방문한다기보다 골목 자체의 분위기를 만끽하려는 골목 트래블러가 대부분이다.

더욱 프라이빗하고 개성 넘치는 상점을 보고 싶은 사람들은 서울숲4길로 빠진다. 서울숲4길은 개인 주택과 이색 상점이 어우러졌다. 간판이 없는 상점이 많아 이곳이 개인 주택인지 상점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난감한 순간에 빠지기도 하는데, 이 또한 골목의 매력이 아닐까. 서울숲4길에서는 카페와 맛집 외에도 출판사, 테일러숍, 옷가게, 스튜디오 등 다양한 분야의 공간이 자리해 메인 거리와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가게가 많아 ‘나만 알고 있는 보석 같은 공간’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골목의 생존과 젠트리피케이션
어떤 골목이 인기를 얻게 되면 5년을 넘기기 쉽지 않다. 몇 년 전만 해도 ‘~리단길’이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리단길은 거의 없다. 삼청동과 압구정 로데오의 명성은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유행은 너무나도 빨리 변하고 골목은 유행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성수동도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지금이야 이색적인 골목으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언젠가 이 골목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잊힐 수 있다고 우려된다.

그러나 성수동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걱정은 뒤로 미뤄둬도 될 것 같다. 성동구는 2015년 전국 최초로 「서울특별시 성동구 지역공동체 상호협력 및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성수1가 2동 656, 668, 685번지 일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뚝섬 주변 지역 지구 단위 계획을 수립해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신규 입점을 제한하고 있다. 단, 건물주, 임차인, 직능단체장, 지역활동가 등 총 20명의 일대 주민으로 구성된 상호협력주민협의체 심의에서 동의를 얻은 경우 예외적으로 입점이 가능하다. 즉, 골목 고유의 색깔을 획일적으로 바꾸는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입점을 제한함으로써 상권을 보호한다. 또한 정부에서 개정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시행령」에 의한 임대료 인상률 상한선인 5% 이하로 임대료를 안정화해 주민의 상생을 돕는다.

이외에도 젠트리피케이션 피해로 내몰렸거나 내몰릴 우려가 있는 임차인들이 장기간 안심하고 장사할 수 있도록 안심상가도 운영하고 있다. 안심상가는 주변 시세의 70~90% 수준의 임대료로 최대 5년간 장사할 수 있는 곳이다. 성동구는 임대료 상승으로 불안한 청년 창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성수동에 뿌리를 내리고 꾸준히 발전할 수 있도록 지역 공동체를 형성한 셈이다.

누구도 개성 넘치는 골목이 획일화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내가 즐겨 찾던 골목에서 내가 좋아하는 상점이 사라질 때마다 아쉬움을 넘어 배신감이 들었던 적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나만의 상점과 우리의 골목을 지키기 위해 상생 도모하는 성동구와 주민들. 성수동 골목의 1년 뒤, 5년 후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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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주민 2021-03-15 19:02:14
주민은 살기 힘들다..
서울숲 옆의 분위기 있는
고유의 감성이 있는 조용한 주택가였는데
밀려드는 인파와 차들로 몸살이다..
젊은 상생기업과 공방들은 다 떠나고
우후죽순 카페와 햄버거 돈까스 라멘집만 판치고
인스타관종들이 거리를 누빈다..
특색없는 제2의 가로수길, 청담동으로 바뀌어갈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