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를 잇는 길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길
  • 고아라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1.03.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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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헌책방거리

동대문역에서 지상으로 나와 청계천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진귀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인천이나 부산에서 볼 수 있는 헌책방 골목이 물길을 따라 죽 늘어서 있다. 작은 바람이 불 때마다 오래된 종이 냄새가 은은하게 물 건너 오는, 청계천 헌책방거리다.

1960년대 청계천 일대는 노점 식으로 운영되던 헌책방들이 한데 모여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돈이 없어 책을 사기 어려웠던 이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채워주고, 절판돼 구할 수 없던 책을 보물찾기 하듯 발견할 수 있던 곳이었다. 반세기 동안 시민들의 추억과 지식으로 쌓아 올린 헌책방은 청계천 복개 공사가 진행 되면서 살 길을 찾아 평화 시장 1층으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지금의 청계천 헌책방거리가 형성됐다.

1960~1970년대에는 200개가 넘는 서점이 있었지만 현재는 20여 개의 서점만이 헌책방거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근현대적 시민 생활 모습이 남아있는 이 거리를 보존하기 위해 2013년 서울시미래유산으로 선정하고 깔끔한 한글 간판으로 교체했다. 새롭게 단장한 청계천 헌책방거리는 과거를 추억하기 위한 어르신과 겪어본 적 없는 시대를 흥미롭게 여기는 젊은이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청계천 헌책방거리의 서점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보기 힘든 다양한 풍경과 재미를 품고 있다. 1~2평 남짓한 공간에 사람 한 명이 앉을 자리를 제외하고 천장까지 책이 쌓여있다. 웬만한 열정이 아니고서는 원하는 책을 찾기 힘들 정도다. 천장이 높은 곳은 사다리까지 갖추고 있다.

좁은 공간을 버티지 못한 헌책들은 서점 밖으로 나와 입구까지 가득 쌓여있다. 그럼에도 헌책의 매력에 푹 빠진 이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물 찾기에 여념이 없다. 운이 좋으면 일반 서점에서는 보기 힘든 절판된 신간부터 추억을 소환하는 옛 서적까지 만날 수 있다. 필요한 책이 없어도 수십 년은 거뜬히 넘긴 옛 서점들을 감상하기 위해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헌 책이 사방을 감싸고 있으니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시간 여행을 떠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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